부러진 용골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최고은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2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영국 북부의 가상의 섬 '솔론'제도에서 영주가 살해된다.

동방에서 찾아온 기사 '팔크 비츠존'과 그의 종사 '니콜라'.

영주의 딸 아미나의 부탁으로 영주 살해사건의 진상을 파헤친다.

 

스토리를 보면 완전한 추리 소설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

게다가 영주가 살해된 장소는 천혜의 방어막인 거센 바다가 지키는 섬.

섬 전체가 거대한 밀실이 되는 밀실 살인사건의 형태를 띤 추리소설이다.

그런데 거기에 몇가지 조건이 추가된다.

중세를 배경으로 한 가상의 세계에서는 마술과 마법이 통한다는 조건이다.

팔크의 말에 따르면 영주를 죽인 범인은 암살기사의 마술에 걸린 '미니온'이다.

즉, 실제로 살인을 지시한 사람과 살인을 저지른 사람이 다르다는 조건.

거기에 살인을 저지른 '미니온'은 자신의 행동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

가장 논리적이어야 하는 추리소설에 가장 비논리적인 마술을 결합했다.

과연 이 결합이 가능할까? 의심이 가지만 정말로 재미있는 소설로 탄생시켰다.

처음 접하는 일본작가인데 이렇게 푹 빠져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히가시노 게이고 이후 한 권의 책으로 나를 매료시킨 작가는 오래간만에 만난다.

이 작가의 다른 소설들을 읽어봐야 겠다는 강한 호기심이 생기게 만든다.

 

작가 후기에서 스스로 말했듯이 이 작가는 독자와의 지적유희를 즐긴다는 느낌이다.

몇 가지 조건을 제시한다. 거대한 밀실의 섬, 살인자가 가진 비이성적인 마술.

살인자의 미니온이 될 수 있는 인물의 제한, 사건 이외의 변수들 등의 조건들을.

그리고 독자들에게 어디 한번 맞춰보라고 도전장을 던진다. 수수께기를 풀어보라고.

난 그 수수께기 풀이에 기꺼이 동참하고 작가의 의도에 따라가지 않으려 노력한다.

추리소설을 나름 많이 읽었다고 자부하기에 중간 쯤에 범인의 정체를 눈치채지만

결국 작가가 숨기고 있는 반전의 사연을 추리해 나가는 것은 실패하고 말았다.

이렇듯 작가는 독자와의 수수께끼 놀이를 하듯 소설을 써 나가고 있다.

 

솔론을 지키기 위해 불려온 특출한 능력을 갖춘 용병들과

솔론과의 묵은 원한을 갚기 위한 저주받은 데안인들 사이의 전투는 또다른 재미이다.

추리에만 국한되지 않고 솔론과 데안인들 사이의 갈등과 싸움을 생생히 그려낸다.

전쟁소설이나 액션이 많이 들어간 소설을 써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생생하게.

게다가 솔론과 데안인들 사이의 원한에 대한 사연은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반전이었다.

거기에는 한 인간의 욕망이 있고 그 욕망이 부른 욕심이 있고 욕심이 부른 원한이 있다.

그것은 또한 인간의 사회가 돌아가는 모습이고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이기도 하다.

 

각 용병들의 이야기는 또다른 축을 이룬다.

각자가 가진 특출한 기술들은 판타지적인 측면을 더욱 강하게 부각시키고

각자가 가진 사연과 그들의 행동은 추리소설적인 측면에 단단한 논리를 제공한다.

대부분의 추리소설처럼 이 소설도 마지막에 가서야 모든 단서를 하나의 논리로 꿰어 맞추는데

그런 논리의 조합에서 각 용병들의 기술과 행동과 사연들은 씨줄과 날줄의 역할을 한다.

단 이틀간의 추적과 전투에서 흘린 그들의 작은 행동들이 단서가 되어 사건의 전말이 밝혀진다.

용병들은 하나 하나가 사건의 단서가 되고 판타지의 소재가 된다. 참으로 교묘한 전략이다.

 

판타지와 추리의 다소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 이렇게 멋진 소설이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판타지도 좋아하고 추리소설도 좋아하는 나같은 사람에게는 정말로 대박인 소설이다.

판타지와 추리에 열광하면서도 그 속에 담긴 사람의 이야기를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강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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