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은의 잭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한성례 옮김 / 씨엘북스 / 2011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게이고의 소설을 읽고나서 '다소 실망'이라는 말을 하게 되는 날이 올 줄이야 !!!
언제나 게이고의 소설은 아무 고민없이 선택했고 언제나 기대 이상의 결과였다.
그런데 이 소설은 다소 실망이다. 물론 재미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다소 아쉬울 뿐. 

찾는 사람이 줄어들어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있는 신케쓰 스키장이 개장하던 날.
슬로프에 폭탄을 설치했다는 협박 메일이 도착한다. 이유는 환경파괴.
다소 어이없는 이유이지만 협박의 신빙성을 증명할 수 있는 증거들이 나타나고
승객의 안전 보다는 스키장의 경영에 우선을 둔 경영자들은 협박범의 요구를 들어준다.
한 두 명의 인질이 아니라 스키장 전체를 인질로 삼은 희대의 협박범과의 대결이 시작된다. 

설원을 배경으로 한 범죄극의 형태를 지닌 이 소설은 이 계절에 딱 맞는 소설이다.
우리나라에도 스키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배경 자체로 이목을 끈다.
게다가 스키장 전체를 볼모로 삼은 협박이라니... 그 대범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범인의 지시에 끌려가는 경영진과는 달리 범인을 추격하는 패트롤 요원들의 활약도 재미있다.
특히나 스키나 스노보드를 타 본 적이 없는 내가 읽어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속도감은 백미다.
범인과 패트롤 요원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중간 중간에 나오면서 짜릿한 속도감을 느낄 수 있다.
스키장 경영진과 스키장에서 사고로 아내를 잃은 아빠와 아들, 스키를 즐기는 여유로운 노부부,
사고로 인한 슬로프 폐쇄로 나날이 시들어가는 인근 마을 사람들, 순수한 열정의 스키어 까지.
사건에 이런 저런 이유로 엮이게 되는 등장인물들 하나 하나가 흥미롭고 잘 짜여진 구조에 묶여있다.
게이고의 실력은 전혀 줄지 않았고 마지막에 크지는 않지만 나름 괜찮은 반전도 여전하다.
전반부의 사소한 복선들을 조합하여 마지막에 사건의 큰 그림을 완성하는 특유의 능력도 여전하다. 

그럼에도 내가 '다소 실망'이라는 말을 할 수 밖에 없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
첫번째는 스키라는 스포츠에 대한 나의 무지함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작가 스스로 만능스포츠맨이고 훌륭한 스키어이다 보니 전문용어들이 많이 보이는데 이해가 안된다.
그러니 머리속으로 장면을 그리기가 어렵고 생생함이 많이 떨어진다. 그저 글자로 보인다.
우리보다 동계스포츠와 생활스포츠가 활성화 된 일본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생생하다고 느꼈을테지만
내가 읽기에는 많이 어려웠다. 근본적인 원인은 나에게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비슷하지 않을까?
두번째는 역시 개인적인 문제이겠지만 게이고에 너무 익숙해져 버린 내가 예상을 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게이고의 소설은 사건의 키가 되는 부분을 전반부에서 알아채기 힘들었다.
그래서 마지막에 가서는 다시 앞쪽으로 돌아가서 그 부분으 다시 읽기를 여러번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이 소설은 전반부를 읽으면서 후반부에 키가 될 만한 단서들이 하나씩 보이기 시작했다.
사건의 진실과 다른 작가의 트릭도 눈에 보이는 상황이었고 마지막 반전도 어느정도 예상이 됐다.
게이고의 소설에서 내가 예측이란 걸 할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 작은 실망을 안긴다.
마지막으로 너무 착한 결말이다. 이 소설의 결말은 너무 착하고 우연이 많이 작용한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결말을 말할 수는 없지만 너무 착하게 마무리 지었다.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얘기다. 아무도 피해를 보지 않고 모두가 착하게 마무리 되는 해피엔딩.
게이고가 언제부터 이런 착한 작가가 되었는가?
[용의자 X의 헌신]에서 수학교사, [붉은 손가락]에서 아들, [백야행]의 남자 주인공까지...
어떻게든 좋은 결말로 끝내기를 바랬던 안타까운(?) 범인들은 가차없이 처벌하던 게이고였는데...
나이가 들어서 게이고의 성격이 다소 부드러워진 느낌이 든다. 그래서 결말이 너무 아쉽다. 

일본에서 영화로 만들어 진다고 한다. 영화로 만든다면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
시원한 설원을 배경으로 한 거대한 추격전 하나 만으로도 영화의 재미는 충분하지 않을까?
재미는 충분하지만 개인적으로 게이고의 매력을 반감시킨 소설이기도 하다. 다소 실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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