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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 (양장본) ㅣ 스티브 잡스
월터 아이작슨 지음, 안진환 옮김 / 민음사 / 2011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대학교 때 처음 매킨토시를 만났던 것을 기억한다.
MS-DOS로 컴퓨터를 배우던 전산학과 대학생에게 매킨토시는 꿈의 컴퓨터 였다.
초록 바탕에 노란 글씨가 대부분이던 텍스트 중심의 PC세계에서
GUI를 바탕으로 한 화려한 매킨토시는 눈을 돌아가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러나 너무 비싸고 호환이 되지 않는 폐쇄성으로 인해 그리 좋은 인상은 아니었다.
내 예상대로 개방성을 무기로 한 MS의 PC들이 매킨토시를 이기고 PC세계를 장악했다.
그렇게 나에게 애플은 이쁘지만 비싸고 폐쇄적인 이미지가 남아 있었고 부정적인 이미지였다.
처음 아이폰이 발매되었을 때에도 애플의 이미지가 남아있어 사용하지 않았지만
개발자의 호기심으로 개발을 위해 아이폰을 사용하면서 애플에 대한 이미지는 완전히 바뀌었다.
도대체 애플의 무엇이 反애플 정서의 나를 애플빠에 가깝게 만들었을까?
애플이 가진 가장 큰 무기는 누가 뭐라해도 스티브 잡스이다. 이제 그는 없지만 그의 이야기가 듣고 싶었다.
자서전이나 누구의 전기를 잘 읽지 않는 내가 그의 자서전을 읽기 까지는 고민이 많았다.
그러나 이 책은 국내에서 나온 자서전이나 전기들과는 다르게 자화자찬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자서전의 주인공인 잡스의 변명이나 자화자찬으로 일관되어 있었다면 나는 많이 실망을 했을 것이다.
잡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쓰여진 책이지만 잡스의 입장만 대변하거나 잡스의 편을 들지 않는다.
하나의 사건에 얽혀있는 수많은 사람들과 일일이 인터뷰를 해서 그 사건에 대한 입체적인 시각을 보여준다.
그런 사건들 하나 하나가 모여서 잡스의 일생을 구성하면서 그의 본질적 모습에 다가가고 있다.
그가 보여주었던 비정상적인 태도와 누구도 말릴 수 없는 강한 자신감과 추친력의 근원을 파헤친다.
애플이 지금껏 유지하고 있는 폐쇄성을 바탕으로 한 수많은 제품들에 담긴 철학을 이야기 한다.
애플이라는 회사의 DNA를 완성시킨 잡스의 세계관과 예술적 감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 책을 읽고서야 비로서 난 애플의 DNA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
그들이 끝까지 유지하고자 하는 폐쇄성과 통합된 사용자 경험의 주는 장점과 배경을 이해할 수 있었다.
어쩌면 난 그들의 철학을 한번도 이해하려 하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우리는 TV를 일일이 분해하려 하지 않지만 PC는 분해하려 한다.
누구나 자신의 PC나 스마트폰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변경하고 싶어하는 욕구가 강하다.
그러다 보니 개방성에 더 많은 손을 들어주는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탈옥의 끝은 순정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모든 개인화는 하나로 수렴된다.
어째서 PC나 스마트폰은 TV나 냉장고처럼 단순해지면 안되는 것일까?
사람들은 TV나 냉장고 처럼 PC나 스마트폰은 단순한 전자제품으로 생각하지 않을까?
잡스가 생각한 PC는 TV나 냉장고 처럼 사람들이 아무런 고민없이 사용할 수 있는 것이었다.
누구에게나 동일한 사용자 경험을 제공하고 그 모든것을 통제하고 제어하여 최고의 제품을 만드는 것.
폐쇄성을 바탕으로 한 통일성과 단순함으로 사람들에게 최고의 편안함을 제공하는 것.
그러면서 제품의 질을 최고로 만들어서 그 누구에게도 자신있게 내 놓을 수 있게 만드는 것.
그러기 위해서 스스로를 항상 채찍질하고 때로는 가혹하게 다루었던 그 치열함의 과정들.
이 책을 통해서 그 과정을 보았기 때문에 난 어쩌면 더 애플을 좋아하게 될 것 같기도 하다.
개이적인 삶에서 잡스에게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들다.
일생을 통해보면 그는 오만에 가까운 자신감으로 다른 사람들을 자신의 목표를 향해 거침없이 몰아갔고
가족에게도 좋은 남편이나 아버지가 되지 못했으며 직원들에게 좋은 상사가 되지도 못했다.
그러나 그런 성격적인 결함마저 자신이 추구하는 철학과 예술적 감성이 담긴 최고의 제품으로 승화시켜
우리의 삶에 혁신적 변화를 가져온 그의 업적은 에디슨에 버금가는 것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기까지는 그의 주변을 둘러싼 사람들의 협력이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물론 잡스는 인정하지 않겠지만...
그의 일생을 따라가는 여정은 내가 먹고사는 IT세계의 역사를 따라가는 여정이었다.
한 인간이 이렇게 많은 혁신적인 제품을 만들어 냈고 그것이 나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의 밥벌이가 되었다.
그리고 누가 뭐래도 지금의 우리 사회와 우리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래서 그의 이른 죽음이 안타깝다. 그가 심어놓은 애플의 DNA가 지속적인 혁신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잡스의 죽음으로 열풍이 분 이 책이 모두에게 재미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우리의 삶에 그가 기여한 공로를 생각해보면 누구에게나 흥미로운 주제가 될 것은 분명하다.
다만 900페이지에 가까운 두께와 커다란 판본이 주는 압박감만 이겨낼 수 있다면... 강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