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코그니토 - 나라고 말하는 나는 누구인가
데이비드 이글먼 지음, 김소희 옮김, 윤승일 감수 / 쌤앤파커스 / 2011년 6월
평점 :
품절


  처음 가는 길은 왠지 낮설고 멀게만 느껴진다. 길모퉁이 하나하나에 신경쓰고 지나가는 풍경 하나하나에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 짧은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멀게만 느껴진다. 그러나 그런 낯설 길이 익숙해지고 나면 이제는 더이상 멀게 느껴지지 않는다. 무의식적으로 익숙한 길모퉁이를 돌고 새롭게 바뀐 풍경에만 가끔 눈길을 줄 뿐이다. 왜 그럴까? 그저 익숙해졌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익숙해진다'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우리가 익숙해졌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이 실제로 우리의 뇌에는 어떤 식으로 인식되는 것일까? 우리의 행동은 모두 나의 의식으로 만들어진 명령을 뇌가 지시한 형태로 만들어진 것일까? 과연 나는 나의 뇌의 주인일까? 너무나 당연한 질문을 해대는 이 책은 그러나 너무나 뜻밖의 결론을 내어놓는다.

  저자는 우리의 뇌에는 우리의 의식이 접근할 수 없는 영역이 있다고 말한다. 마치 컴퓨터 시스템의 부트섹터처럼 아무리 뛰어난 시스템(의식)도 접근할 수 없는 무엇이 있다는 것이다. 위에서 예를 든 길찾기의 경우 '익숙해진다'는 것은 우리 뇌의 이런 접근할 수 없는 영역, 흔히들 무의식이라고 부르는 영역에 서브루틴으로 새겨지는 과정이다. 일단 무의식에 서브루틴으로 새겨지면 어떤 상황에 대처했을 때 자동적으로 움직이게 된다. 일단 익숙해지면 어떤 모퉁이에서 우회전 해야 한다는 의식을 하기도 전에 이미 뇌의 신경들이 움직이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접근하지 못하는 무의식에 새겨진 수많은 서브루틴들이 하나의 결정을 내려 우리의 뇌에 전달하면 비로써 '우회전 해야 한다'는 의식의 형태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의식이 먼저가 아니라는 뜻이다. 믿어지지 않는가? 나 또한 절대로 믿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저자가 제시하는 수많은 실험들의 결과를 보면 믿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다른 예를 들어보자. '전두측두치매'라는 병이 있다고 한다. 이 질환에 걸린 사람들은 사회적 규범에 대한 인식을 하지 못한다고 한다. 가게에서 물건을 훔치고 길거리에서 옷을 벗고 모르는 사람에게 침을 뱉는 등의 반사회적 행동을 한다는 것이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사회적 규범을 인지하는 전두엽과 측두엽에 물리적 손상으로 인해 보이는 행동이라고 한다. 이 질환에 걸리기 전에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와 뛰어난 인간관계를 보여주던 사람들도 뇌의 자그마한 물리적 손상으로 인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버린 것이다. 1960년대 유명했던 미국의 살인범은 자신의 일기에 자신의 머리속에 괴물이 살고 있는 것 같다고 썼고 결국 자신의 사랑하는 가족을 끔찍하게 죽이는 살인을 저질렀고 자신은 자살을 했다. 그는 자신의 머리를 해부해 달라고 썼고 의사들이 그의 뇌를 해부한 결과 충동과 폭력을 제어하는 중요한 부분에 종양이 생겨서 압박을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이런 사례들을 보았을 때 인간의 성격 혹은 성품이라는 것이 뇌의 물리적 환경의 결과라는 결론은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과연 그런가? 그렇다면 인간의 자유의지는 무엇이며 어떻게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

  전지전능한 하느님의 창조물에서 자신의 뇌조차 제어하지 못하고 오히려 자신의 뇌 속에 접근할 수 없는 무의식의 영역에 통제를 받는 신세로 전락한 인간의 처지를 생각해보면 한숨이 나온다. 그러나 그렇다고 인간의 자유의지나 영혼의 존재는 거부되어야 하는가? 인간은 수많은 분자들의 상호작용으로 일어나는 뇌의 결정에 따르는 나약한 존재라는 유물론적 결론에 따라야만 하는가? 그에 대한 해답은 이 책에 담겨져 있다. 그 해답의 과정에서 난 인간에 대한 자부심과 희망을 발견하게 되었다. 꼭 읽어보시길....

  인간의 삶이 자신이 주어진 환경에 지대한 영향을 받는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어보았지만 그것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 책을 통해 더 자세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나의 행동 하나하나가 아이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되는지 다시한번 되새기는 계기가 되었다. 나의 아이를 위해 나의 행동에 보다 많은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지름신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가? 운전대만 잡으면 난폭해지는 자신을 제어할 수가 없는가? 매일 매일 다티어트를 결심하면서도 음식의 유혹에 넘어가고 마는가? 가끔씩 나를 잘아는 사람들도 당황할 정도로 '욱'하는 성질을 버릴 수 없는가? 나이가 들어도 철이 들지 않는 자신에 대해 고민인가? 사회적 일탈을 꿈꾸는 자신의 정신세계가 궁금한가? 그렇다면 이 책은 그 모든 이해할 수 없는 자신의 행동들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알려줄 것이다. 진정 '나'라는 존재는 무엇인지에 대한 쉽고 재미있는 해석!!! 새롭고 신기한 나의 '뇌' 속으로 기나긴 여정을 떠나보자 !!! 강추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