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우천왕은 어느새 우리의 역사에서 사라져버린 이름이 되어버렸다. 분명히 우리 역사에서 가장 뛰어난 영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잃어버렸다. 이제는 역사의 인물이 아닌 붉은 악마의 상징으로만 남아버린 박제된 영웅. 우리의 사서에서는 사라지고 중국의 사서에서나 작은 기록의 조각으로 남은 영웅. 그나마 그 조각난 기록마저도 왜곡되어 버렸거나 우리의 사학계에서 인정하지 않는 상황. 그렇게 잊혀지고 박제된 우리의 영웅을 되살리는 일은 우리 모두의 사명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제는 되살리려 해도 되살릴 수 없는 역사 이전의 인물이기에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역사학자들은 그 작업을 포기해 버렸다 하더라도 그래도 포기할 수 없는 작업. [퇴마록]으로 한국형 판타지의 시작을 알린 작가 이우혁이 그 작업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역사로 되살릴 수 없다면 그가 가장 잘하는 판타지로 되살리고 싶다는 소망이 전해진다. 그리고 그 작업이 대단한 성공을 이루었음을 읽는 내내 알 수가 있었다. 이미 7년전에 이 소설을 읽었었다. 그 당시 9권까지 출간되었는데 9권까지 읽고 10권을 기다렸다. 그게 이미 7년전의 이야기였고 그 후에 10권을 기다리다 기억에서 점점 사라졌던 소설. 7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완결편이 나왔다는 소식에 너무도 반가웠던 것은 나만의 감정은 아닐 것이다. 작가가 왜 그 오랜 공백을 가져야 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기다림에 대한 보상은 확실하다. 총 6권, 각 권이 500페이지가 훌쩍 뛰어넘는 분량. 총 3,000여 페이지의 방대한 분량의 시리즈이지만 나 같이 출퇴근 시간에만 독서를 하고 그나마 퇴근시간에는 프로야구에 빠진 불량독자도 한 달 가까운 시간이 걸려서 완독하게 만들 만큼 확실하게 재미를 보장한다. 이우혁의 팬이 아니라도... 처음부터 끝까지 뒷 이야기가 궁금해서 미칠 정도로 독자를 매료시키는 이야기는 최고의 매력이다. 치우천왕이 한명이 아니라 이란성 쌍둥이라는 설정. 형은 머리가 좋고 동생은 힘이 좋은 최고의 콤비. 치우형제가 태산회의에 참석하는 시점에서 치우천왕이 되어 황제헌원을 탁록에서 물리치기 까지의 이야기. 전형적인 성장 소설이고 영웅담이고 대하소설인 이야기이지만 작가의 힘이 재미를 불어 넣는다. 이미 [퇴마록]과 [왜란종결자] 등의 전작을 읽었던 독자라면 이우혁 소설의 재미는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각각의 캐릭터가 살아있는 것이 재미를 극대화 시키는 매력이다. 주인공인 치우천, 치우비 형제의 캐릭터 뿐만 아니라 그를 도와주는 각 부족의 친구들의 캐릭터. 치우형제를 돕는 신시의 인물들과 그와 대립하고 갈등하는 상대 진영의 각 인물들의 캐릭터. 거기에 치우형제의 곁을 지키거나 그들을 위기에 빠뜨리기도 하는 매력적인 여인들의 캐릭터까지. 심지어 주인공이 없는 상황에서 한 권의 3분의 2를 진행시킬 정도로 캐릭터들의 개성이 살아있다. 그래서 각각의 캐릭터들을 조합하여 하나의 거대한 힘으로 이끌어 전쟁에서 승리하는 모습이 그 치열하고 처절한 전쟁의 진행과정이 긴장감 넘치고 힘있게 이어지며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역시 이야기의 힘과 재미에 있다. 작가의 공부가 많았다는 것은 각 절의 서두에 나오는 고전들의 인용문구에서도 알 수 있다. 그 많은 분량에 나오는 그 많은 인물들이 거의 대부분 역사 속에서 등장하는 인물이다. 역사서의 아주 작은 부분에 묻혀있던 인물들을 꺼내서 각각의 인물에 생명을 불어넣는 상상력. 작가의 상상력과 공부가 대단하지 않았다면 불가능 했을 거대한 작업을 해낸 작가에게 박수를 보낸다. 역사속 한줄에 불과한 탁록대전과 염황대전, 공상대전 등의 고대의 전쟁들을 멋지게 재현해 냈다. 철저한 고증에 의해 그 시대의 방식으로 재현된 전쟁이 아닌 한국적 판타지로 재현된 전쟁. 신수와 괴물이 나오고 도깨비와 귀신들이 나오고 무시무시한 주술이 난무하는 전쟁. 생생한 묘사는 독자가 전장의 한 가운데에 들어가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작가의 힘이 대단하다. 결국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일은 인간의 손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수나 주술이 난무하는 신화의 시대에서 인간의 손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인간의 시대로의 전이. 그 중심축이 되었던 치우형제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무한한 힘에 대한 믿음을 보여준다. 치우형제만의 능력이 아닌 다른 부족의 영웅들과의 연합을 통해 이루어낸 일들을 통해 오늘날도 우리 인류가 해결하지 못한 평화에 이르는 방법에 대한 나름의 제시를 하고 있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모두 다 불가능 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아주 간단한 방식을 제시하고 있다. 그 방법이 어떤 형태로 성공의 길에 이를 수 있는지도 이야기로 보여주고 한다. 그것이 메시지이다. 붉은 악마의 깃발에 갇혀있는 박제되어 버린 슬픈 영웅에 대한 환상적인 영웅신화를 만나보자. 이 책은 역사적 사실과의 연관성을 떠나서 잊혀진 우리 영웅의 찬란한 신화로 읽어야 할 책이다. 그리스/로마 신화에만 열광하지 말고 우리 영우들의 신화에 귀를 기울일 시간이다. 강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