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구 - 그때 우릴 미치게 했던 야구
시게마츠 기요시 지음, 김대환 옮김 / 잇북(Itbook)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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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를 좋아하는 나는 [열구]라는 제목 하나로 이 소설을 골랐다.
물론 책의 중요한 소재는 야구, 그것도 풋풋한 고교야구이지만
이 소설은 야구에 대한 소설이 아니다. 삶과 추억과 상처에 관한 이야기이다.
지역예선에서 조차 1승이 힘들었지만 ’고시엔’이라는 꿈을 가지고 있던 시절.
너무도 순식간에 찾아온 연달은 행운으로 고시엔의 문턱까지 다다른 기적이 일어나지만
결국 마지막 무대에는 서보지도 못하고 도망치듯 대도시로 나갔던 주인공이
20년만에 고향으로 귀향하면서 자신이 도망쳤던 그 기억과 상처를 치유하는 이야기이다.

프로야구와 다른 고교야구의 묘미는 열정에 있다.
지금은 고교야구 선수들도 프로를 꿈꾸는 선수들이 많아서 옛날의 순수함은 줄어들었지만
프로야구가 탄생하기전 전 국민의 거의 유일한 오락거리였던 고교야구에는 
다리가 부러지는 한이 있어도 홈으로 슬라이딩을 하는 박노준의 열정이 있었고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한 패배에 눈물을 흘리는 그들의 순수함이 있었다.
작가가 고교야구를 소재로 택한 이유는 아마도 그런 열정과 순수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20년이라는 세월은 그 시절의 열정과 순수함 대신에 인생이라는 것을 가져다 주었다.
주인공이 귀향해서 친구들을 만나면서 그 시절을 회상하는 과정은 추억의 되새김이다.
세상살이에 힘들고 지친 나와 같은 나이대의 사람들은 누구나 한번쯤 하게되는 되새김질이다.
소설의 전반에 걸쳐 흐르는 이런 감성은 주인공과 비슷한 나이대인 나에게는 공감을 불러 일으킨다.

주인공의 추억은 아름다움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 끝이 결코 아름답지 못했기에 그는 도망쳐야했고 끝내 화해할 수 없었다.
도망쳤기 때문에 살아갈 수 있었지만 도망쳤기 때문에 온전히 추억할 수 없었던 과거와의 재회.
주인공의 귀향에는 그런 의미가 있었고 그것이 그가 고향에서 완전한 편안함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이다.
소설은 주인공이 그런 그의 과거와 정면으로 만나고 그 상처를 치유하고 화해하는 과정을 그린다.
주인공 요지의 친구인 가메나 진부, 오사무, 그리고 코쿄는 주인공의 아픈 상처이다.
요지가 그들을 재회하고 옛날의 우정을 서서히 회복하는 과정은 상처를 극복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결국 다시 대도시로 돌아갈 요지라고 하더라도 이제 그에게 고향은 더이상 상처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소설 속 요지의 아내의 문장처럼 ’돌아오기 위해서 떠나야 한다’는 진리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 역시 비슷한 상처가 있기 때문에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은 망설이고 있는데 이 책을 통해 용기를 얻었다.

소설은 또한 가족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장남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시골 사람들의 당연한 생각과 자신을 삶을 살아가려는 주인공의 갈등,
처가에 의지해 살기 보다는 독립적인 삶을 꿈꾸는 가메의 이야기나 대를 이어햐 하는 진부의 이야기,
정이 너무 많아서 때로는 귀찮고 때로는 짜증나는 관심들에 둘려쌓이는 것이 싫은 고향의 이야기.
겉으로 문제없어 보이는 주인공의 가족부터 주인공과 아버지의 어색한 갈등까지 많은 이야기가 나온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이 하나씩 풀려가면서 가족에 대한 의미를 새삼스럽게 느끼게 해준다.
자칫 딱딱해지고 어색해질 수 밖에 없는 갈등들 사이에서 주인공의 딸인 미나코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읽는 동안 따뜻함과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이런 가족의 이야기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바야흐로 야구의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 
내가 기대하는 프로야구와는 다르지만 고교야구의 풋풋함을 느낄 수 있는 좋은 소설이다.
또한 그 풋풋함만큼 아련하고 아픈 기억을 치유하는 과정을 편안하게 써내려 간 편안한 소설이다.
야구 이야기를 기대했다면 약간의 실망은 있을 수 있겠지만 누구에게나 추천할 만한 소설이다. 강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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