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블 - 전2권 - side A, side B + 일러스트 화집
박민규 지음 / 창비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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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테라]에 이어 2번째로 나온 박민규의 소설집 제목이 [더블]이다.
작가와 나이대가 비슷한지라 작가가 말하는 더블앨범에 대한 추억은 나도 가지고 있다.
누나가 돈 모아서 산 전축에 이선희, NKOB 등의 LP판을 열심히 틀어댔던 아련한 추억.
지금은 사라진 LP판에 대한 추억을 책으로 이야기하고 싶었다는 작가의 말.
더블앨범은 고사하고 '싱글앨범'이라는 이름으로 단 한 곡만 있는 앨범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최소 10여곡의 노래가 담겨있던 가수의 모든 역량이 담겨져 있던 더블앨범을 그리워 하는 나.
싱글앨범이 진정성이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지극히 상업화된 사회에서
최소 1년 이상의 긴 작업으로 완성해서 가수의 이야기를 담아냈던 더블앨범이 그립다.
작가가 18편의 단편을 [더블]이라는 소설집으로 모으면서 그런 자신의 정성을 담았다는 느낌이다.

박민규의 이야기는 세상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자들의 이야기를 담아내지 않는다.
옛날에는 어느 정도 승리했을지는 모르지만 현재는 명백한 패배를 안고 사는 사람들.
나보다 약자일수도 있도 나보다는 나은 강자일수도 있고 때로는 나일수도 있는 사람들.
그들의 사소한 일상과 그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통해서 다시금 전투에 나갈 힘을 주는 작가.
그래서 난 그의 글이 좋았고 그의 소설들이 좋았고 지금도 그의 책은 망설임 없이 구입한다.

이 소설집의 첫 단편을 읽으면서 뭔가 달라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한 남자의 추억찾기를 다룬 [근처]를 읽으면서
젊고 재기가 넘치고 상상력이 풍부하던 박민규라는 작가가 세월을 먹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등장인물도 젊고 패기로운 20,30대가 아니라 자기 나이와 비슷한 40대의 인물이었고
세상에 나가기도 전에 패배가 정해진 불우한(?) 청춘이 아니라 어느정도 승리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첫 단편이후에 여러 단편들을 읽어가면서 그는 변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축구도 잘해요], [딜도가 우리 가정을 지켜줬어요] 등의 단편들에는 여전히 기발한 상상력이 남아있고
[굿바이 제플린] 같은 단편에서는 여전히 패배한 인생들에 대한 따스한 위로가 담겨 있었다.
다만 세월을 먹으면서 그 표현이 다소 유해졌다는 느낌은 어쩔 수 없다. 그 변화가 싫지 않다.
문단의 파괴는 여전하지만 전보다 많이 줄었고 폰트의 파괴가 추가되었다.
갑자기 작아진 글씨에 눈을 찡그리며 읽어야 했지만 그래서 더 집중하며 읽을 수 있었다.
변한 듯 변하지 않은 박민규의 모습을 만날 수 있어서 더욱 반가웠던 단편집이다.

이 책의 단편들은 '끝'을 공통적인 주제로 삼고 있다.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남자의 끝, 자식에게 버림받고 아내마저 치매에 걸려 자살을 결심하는 노인의 끝,
밑도 끝도 없이 절망적인 상황에 빠진 두 남자의 끝, 자살을 결심한 남자가 한강 다리 아치에서 벌이는 끝 등.
18편의 이야기 모두가 막다른 상황, '끝'에 몰린 인생들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무언가 선택해야만 하는 절대적인 상황이지만 실제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나름 '끝'에 몰렸다고 힘들어하던 나의 짐이 조금 가벼워짐을 느낀다.
18편의 단편들을 통해서 작가는 '세상은 어차피 그런 것이다'라고 말하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누구에게나 힘겨운 짐이 있고 누구에게나 그런 짐을 지고 살아가는 삶이 있다고.
그것이 바로 삶이라고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난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느낌이 들었다.

박민규를 좋아하는 독자들에게 그가 전하는 진정성이 담긴 더블앨범 같은 선물이다. 추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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