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림무정 1
김탁환 지음 / 다산책방 / 201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대결

  백두산 호랑이 흰머리에게 아비를 잃고 동생의 왼쪽 팔 마저 잃어버린 후 7년간 흰머리를 잡기 위한 치열한 추격을 펼치는 산.  월등한 강함으로 개마고원을 지배하는 영대인 백호 흰머리. 집요하고 끈질긴 추격을 이제는 끝내야 한다는 산의 생각을 알고있는 듯 흰머리도 산과의 대결을 끝내고자 하는 의지를 보이며 한반도의 지붕인 개마고원의 혹독한 추위를 배경으로 펼치는 대결. 단순히 맹수와 사냥꾼의 대결이 아니라 자신의 모든 것을 건 처절한 대결. 산에게는 흰머리만 보이고 흰머리에게는 산만 보이는 대결. 서로가 서로만을 바라보며 정면으로 부딪치는 정면승부. 한 순간의 방심도 허용하지 않는 끝없는 긴장으로 팽팽히 날이 선 날카로운 칼날같은 대결. 조금의 실수도 허용하지 않으며 숨조차 아끼며 쉬어야 하는 숨막히는 대결. 2권, 총 800여 페이지의 두께가 무색할 정도로 지극히 정적이면서도 지극히 동적인 대결이 이어진다. 이런 소설 정말 처음이다 !!!

  사랑

  오로지 흰머리만 보면서 살아오며 어느새 호랑이의 혼을 가지게 된 남자 산. 그에게 아무런 예고도 없이 그와 흰머리 사이에 끼어든 한 여인 주홍. 사랑에 서툰, 아니 사랑의 감정을 스스로에게 허락하지 않았던 남자와 호랑이의 고독을 사랑하다 호랑이를 사랑하고 결국 호랑이의 혼을 가진 사내를 사랑할 수 밖에 없었던 여자의 뜨거운 사랑이 모든 것을 얼려버리는 개마고원의 살인적인 추위를 녹일고도 남을듯 하다. 호랑이를 죽여야 사는 남자와 호랑이를 죽일 수 없었던 여자의 간극이 서서히 좁아들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마음을 열고 감정을 나누며 서로에게 빠져드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산을 닮은 남자와 바다를 닮은 여자의 사랑. 密林無情. 밀림은 정이 없다. 죽이지 않으면 죽임을 당하는 냉혈한 승부의 세계를 그린 소설이 그들의 사랑으로 인해 나름의 균형을 잡는다. 현대를 배경으로 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숙종적이지만 않은 여성의 모습이 당당하게 그려진다. 다소 마초적인 성향의 소설이 주홍으로 인해 또 다시 나름의 균형을 가진다. 사랑은 그렇게 이 소설의 균형을 맞춘다. 아름답고 뜨겁고 순수하다. 그리고 슬프다.

  질투

  사랑이 나오니 당연히 질투가 나올 수 밖에 없다.  산과 주홍의 사이를 끼어드는 것은 일본군 소좌 히데오. 어릴때 부터 군인을 꿈꾸었고 천상 군인이었던 그에게도 낯선 감정일 수 밖에 없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가져온 여인이 바로 주홍. 그러나 주홍의 마음은 이미 산이라는 사내에게 가 있다. 해수박멸대장인 그에게 최고의 적은 흰머리이지만 어느새 주홍의 마음을 빼앗아 간 산이 그의 최고의 라이벌이자 적이 된다. 사랑의 패자에게만 찾아오는 질투의 감정은 소설에 새로운 갈등을 만들고 소설의 다른 축을 하나 더 만들어서 소설의 동력을 더욱 키워준다. 흰머리와 산의 메인대결과는 별개로 산과 히데오의 서브대결을 하나 더 만들어서 2개의 대결이 서로 맞물리면서 이야기를 더 재미있게 만든다. 물론 히데오는 산의 상대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슬픔

  산의 동생 수는 들꽃을 사랑하던 소년이었다. 어느날 그에게 닥친 재앙은 그의 왼팔을 앗아가 버리고 실의에 빠진 그는 도박에 빠져든다. 이미 들꽃을 사랑하던 소년은 사라져 버리고 점점 더 세상에 물들고 도박에 영혼을 팔고 돈에 목숨을 거는 하류인생으로 전락한다. 그의 불행이 그에게서 앗아간 것에 가슴이 아프다. 그의 절망에 함께 아파한다. 그리고 그가 겪었을 슬픔이 느껴진다. 그보다 더 큰 슬픔. 그렇게 망가져버린 동생을 바라봐야 하는 산의 슬픔. 동생의 곁에 가서 동생의 슬픔을 달래주고 동생의 상처를 보듬고 싶지만 그러기 위해서 흰머리를 먼저 잡아야만 했던 산의 슬픔. 총독의 보살핌을 받기 때문에 타인들은 주홍을 대우해 주고 총독 부부도 그녀를 아끼지만 그녀는 부모를 잃은 슬픔을 가지고 있다. 어린시절 따돌림을 받아야 했던 아픔이 남아있다. 바다를 바라보며 고독을 달래야 했던 슬픔이 있다. 소설에서 슬픔은 드러나지는 않지만 이야기를 끌고가는 힘이 된다.

  이야기

  잘 만든 영화를 보면 주인공의 시선뿐만 아니라 수많은 등장인물 각각의 시각에서 바라봐도 이야기가 살아있다. 이 소설도 산의 입장뿐만 아니라 흰머리의 시각에서 바라 본 이야기가 다르고, 주홍의 시각으로 바라 본 이야기가 다르고, 히데오의 눈으로 만드는 이야기가 다르고, 수의 이야기가 다르다. 등장인물이 많지는 않지만 각각의 인물들의 밸런스가 한쪽으로 치우치치 않기 누구의 시각으로 읽느냐에 따라 소설의 재미가 다르고 소설이 이야기가 달라진다. 작가의 능력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이야기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재미가 다양하다는 것이고 이야기의 힘이 강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야기의 힘이 강한 소설은 나에게는 최고의 소설이다.

  어느 순간은 숨조차 쉬지 못할 정도로 팽팽한 긴장감이 페이지 가득 넘쳐나고 어느 페이지에는 액션영화가 부럽지 않은 화려한 액션이 가득차다. 어느 곳에서는 아름다운 연인의 불같이 뜨거운 사랑이 있고 사랑의 패자가 보여주는 광기와 분노가 있다. 어리석은 인간을 꾸짖는 백호의 우렁한 포효가 넘치기도 하고 모든 것을 얼어붙게 만드는 상상을 초월하는 추위가 덮치기도 한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떠나서 정말로 재미있는 소설이다. 올 해 읽은 소설 중에서 단연 최고다 !!! 줄 수 있는 모든 별점을 다 주어도 아깝지 않다. 강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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