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아비춤
조정래 지음 / 문학의문학 / 201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법 앞에 만인은 평등하다'라는 명제가 진리가 아님은 새삼 말하지 않아도 되는 사실이다. 누군가는 너무 배가 고파서 몇 천원짜리 빵을 훔치다 몇년을 살고 수천억의 비자금을 조성한 대기업 총수는 '국민 경제에 이바지 한 공'으로 무죄 방면되는 세상이다. 또한 수만명의 무고한 백성을 죽인 전직 대통령은 아직도 돈이 없다면서 온갖 비열한 꼼수를 부리면서 잘 살아가도 있다. 권력과 재력에 법이란 휴지조작에 불과함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을 안다고 무엇이 달라지나? 우리는 그저 그들의 비열하고 짜증나는 놀음을 이런 저런 핑계를 들어 방관하고 있는 '허수아비'에 불과하다. 작가의 소명중에 하나가 시대정신을 일깨우는 것이라고 볼 때 조정래라는 대작가가 새삼스레 깨우치고 있는 우리시대의 모습은 부끄럽기 한이 없어 한 아이의 아버지인 내가 차마 쳐다볼 수 없는 모습이다. 작가는 이런 우리의 자화상을 일말의 동정심도 없이 아프게 까발려 놓았다.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어도 도저히 부정할 수 없는 우리의 자화상에 더욱 화가나고 답답할 수 밖에 없다.

  권력은 이미 돈의 노예가 된 지 오래이다. 소설속에 등장하는 '태봉그룹'의 모티브가 되는 '삼성'의 경영권 불법승계는 돈에 넘어간 권력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건이다. 그들이 아무리 삼성의 로비를 받지 않았다고 주장하더라도 국민들은 아무도 믿지 않는다. 법을 집행하고 법을 어기는 자들을 벌하라고 법관과 변호사를 만들어 놓았더니 오히려 그들에게 매수된 상태에서 그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온갖 법조항을 꼬아놓고 억지로 해석해서 그들의 불법을 불법이 아닌걸로 만들어 버리는 모습을 보면서 국민들의 느꼈을 허망함을 그들은 알고 있을까? 소설속의 등장인물들처럼 국민들이 '자발적 복종'을 하고 있다고 믿는 것일까? 내가 생각하기에 국민들은 자발적 복종이 아닌 '지겨운 체념'에 빠져 있는 것이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재미없는 3류 드라마에 질려버렸다고 할까? 그들의 세계는 그들의 몫이고 국민들의 삶은 그들에게 눈돌리기엔 너무 힘들지 않은가?

  언론 또한 돈의 노예가 된 지 오래이다. IT업게에서 일하다 보니 최근의 스마트폰 열풍을 피부로 느끼고 있는 입장에서 언론을 보면 이제 분노마저 나지 않을 정도이다. 삼성의 사보보다 더 친삼성적인 언론의 경우 그 정도가 심해서 역겹기까지 하다. 애플의 작은 문제는 마치 기계가 엉망인데도 팔아치우는 것처럼 확대하고 삼성의 심각한 문제는 아무것도 아닌것처럼 슬쩍지나가는 행태의 기사가 수없이 넘쳐난다. 그들이 진정 기자인가? 가슴에 손을 얹고 자신의 가족들에게 '난 정말 기자다'라고 말할 수 있는가? 그러나 문제는 그런 기사의 범람이 여론을 주도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 마눌님의 경우 애플의 아이폰은 완전히 못쓰는 기계로 인식하고 있다. 언론의 무서운 영향력을 생각해 보았을 때 그들이 돈의 노예가 되어버린 사회는 끔찍하다고 할 수 있다.

  얼마전에 읽은 베르나르베르베르의 '파라다이스'라는 단편집에 국가가 사라지고 브랜드가 지배하는 세상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한국과 미국의 전쟁이 아닌 코가콜라와 펩시의 전쟁이 일어나는 상상이다. 그 이야기를 읽으면서 엉뚱한 상상만은 아니라고 생각했었는데 지금의 우리모습은 이미 그렇게 닮아가고 있다. 이미 대한민국은 '삼성공화국'이 아닌가? 대작가가 다시 한번 일깨워 준 돈의 위력에 새삼 놀랍고 두러워진다. 내 아이가 살아갈 세상이 점점 더 돈의 노예가 된다면 내 아이의 행복은 과연 어디서 얻어야 할까?

  등장인물들에게서 인간적인 정서를 모두 빼앗아 버린 작가의 노림수가 제대로 통했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의 모습에 조금이나마 인간적인 모습이 엿보였다면 그 면을 붙잡고 동조하려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인간적인 정서가 사라지고 돈과 권력에 대한 욕망만이 남아있는 그들의 모습은 인간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그런 모습이 진정 우리사회의 현재 모습임을 잘 알고 있기에 더 큰 각성을 하게된다. 소설은 힘없는 자들의 작은 승리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시민단체와 대학교수의 순진한(?) 투쟁이 승리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작은 승리를 보여줌으로써 희망을 주기 보다는 현실에서는 그런 작은 승리조차 기대할 수 없을 정도로 이미 부끄러워진 우리의 자화상을 보여준다. 그게 더 아프다.

  연초부터 이어진 '정의란 무엇인가?'의 베스트셀러 행진이 의미하는 바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 딱딱하기 그지없는 인문서가 이렇게 장기간 베스트셀러가 된다는 것은 우리사회에서 정의가 사라졌기 때문이고 이런 사회에 대해 국민들이 환멸을 느끼고 있다는 반증이기 때문이다. 이제부터는 방관하는 '허수아비'의 자세를 버리고 적극적으로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한국문학의 대작가는 우리 사회에 '이제는 일어설 때'라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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