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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달한 인생
지현곤 지음 / 생각의나무 / 2010년 8월
평점 :
품절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 채 한 달을 다니지 못하고 척수결핵으로 반신마비가 된 사람.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에 그에게 배움의 기회는 영영 날아가 버리고
뛰어 놀 수 있었던 시절에 어른들 몰래 숨어들어가 키득거리며 읽던 만화를 생각하며
졸지에 수없이 많아져버린 시간을 때우기 위해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체계적인 교육은 꿈도 꿀 수 없었고 집안 형편으로 그에게 도움을 줄 수도 없었다.
그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지 않고 무언가 해보고 싶어서 시작했던 만화.
우연한 기회에 여기저기 공모전에서 상을 받고 서서히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고
결국은 미국 뉴욕에서의 개인 전시회까지 갖게 되면서 이제는 교과서에 실리는 작가.
요약한 그의 삶만 훑어보아도 참으로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드는 사람, 지현곤.
언젠가 뉴스에서 화제거리로 흘려가며 들었던 기억만 있고 이름도 몰랐던 사람을
이 책을 읽는 동안 오래된 친구같은 동질감을 느끼게 되었다. 참 대단한 사람이다.
카투니스트 지현곤이라는 이름은 화려해 보이지만 그의 일상을 외롭다.
40년간 한 평짜리 방안에 갇힌 채로 베란다 틈으로 보이는 달을 동경하며 사는 사람.
그 달마저 집 앞의 아파트에 가려 한달에 절반은 보지 못하는 사람.
그래서 더 달을 동경하게 된다고 말하지만 그의 삶이 너무 외로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그는 자신의 처지를 원망하거나 비관하지 않고 당당히 살아간다.
어린 시절 그에게 원망과 분노가 없을 수 없었겠지만 세월이 그를 단련시켰다.
이제는 어느 누구보다 평안한 삶을 살고 있는 그를 보면 나 자신의 욕심이 부끄러워진다.
자신의 처지를 돌파하기 위한 돌파구로 시작한 만화지만 그의 작품들은 어둡지 않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 책의 이야기들 보다 사이사이에 보이는 그의 작품들이 더 많은 이야기를 한다.
처음 책을 읽으면서 다소 실망스럽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가슴에 다가오는 울림이 있었다.
그것은 글의 형태가 아니라 그의 작품들을 통해서 가슴에서 가슴으로 전해진 것이었다.
이 사람은 역시 글쟁이가 아니라 그림쟁이라는 생각이다. 역시 세계적인 카투니스트라는 느낌이다.
백마디의 말보다 단 한 장의 그림으로 너무 많은 이야기를 전하는 능력은 쉬운 것이 아니다.
수많은 선들의 교차로 표현된 음영의 깊이만큼 40년 세월이 만들어 낸 삶의 진한 울림이
다른 소통의 수단을 통하지 않고 가슴에서 가슴으로 직접 전달되는 느낌.
원화가 아니 복사된 그림에서도 이렇게 울리는데 원화의 감동은 어떨지 상상조차 하기 힘들다.
그래서 이 책은 글보다 그림이 훨씬 더 마음에 드는 책이다.
그렇다고 글이 그리 나쁘지는 않다. 그러나 그렇게 뛰어나지도 않다. 그저 평범하다.
전문적으로 배우지도 않고 독학으로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완성했던 것처럼
글을 쓰면서도 전문적인 기교나 문학적 소양이 느껴지지는 않지만 그만의 매력이 있다.
처음에 가슴에 확 와닿는 이야기가 아니라 가랑비처럼 조금씩 젖어드는 이야기.
하나씩 글들을 읽어가다 보면 어느새 그의 삶에 공감이 가고 나 자신이 부끄러워지는 이야기.
평범함의 위대함을 여실히 보여주는 그의 글을 그래서 참 마음에 든다.
장애를 가진 화가의 동정심을 유발하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자신의 처지를 당당히 받아들이고 자신만의 세계를 확고히 완성한 한 인간의 이야기이다.
신체의 장애를 지녔지만 마음만은 나보다 훨씬 완성된 사람의 이야기이다.
거기에 가슴으로 얘기하는 카툰 작품들은 책을 읽는 사람들을 위한 보너스이다.
세상이 힘들고 자신의 처지에 불만이 많다면 이 책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강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