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왕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소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정보가 홍수를 누리는 시대에 살고있는 우리는 지금도 수많은 정보를 얻고있다.
불과 10년전만 하더라도 인터넷이라는 것은 보편화 되지 않았고 정보의 유통도 단방향이었다.
그때와 비교하면 우리는 언제 어디서라도 손쉽게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최근의 스마트폰의 열풍과 함께 점점 더 오픈된 지식의 사회로 가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점점 더 똑똑해 지고 있는가? 점점 더 많은 지식으로 현명해지고 있는가?
유감스럽게 그 대답은 부정적일수 밖에 없다. 그 원인은 무엇일까?
우리는 흐르는 강물처럼 넘치는 정보를 '검색'만 할 뿐 스스로 '사색'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사카코타로의 [마왕]은 이미 몇년전에 출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우리에게 더욱 더 필요한 소설이 되어가고 있다. 앞으로 더욱 더 그렇게 될 것 같다.

너무나 많이 생각하는 형과 너무나 적게 생각하는 아우가 어느날 초능력(?)을 가지게 된다.
혜성처럼 등장한 강력한 카리스마의 정치인은 나라를 파시즘으로 몰고가지만
그 누구도 우려보다는 기대를 하게되고 형만이 그의 행보를 우려깊게 보고 있다.
초능력이라고 하기엔 초라한 능력으로 그는 거대한 정치인에게 맞선다.
아우는 형과는 다른 초라한 초능력으로 형과는 다른 방식으로 똑같은 대상과 맞선다.

초능력자 형제와 카리스마 정치인의 대결이라 해서 판타지로 흐르지는 않을까 우려했지만
초능력이라고 하는 것이 너무나 미미해서인지 몰라도 소설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기껏해야 30미터 안에서 직접 사람을 봐야지만 자신의 생각을 타인에게 말하게 할 수 있는 능력.
10가지의 경우에서 1가지를 선택하면 100% 적중하는 능력은 초능력이 하기엔 한계가 많다.
그러니 이 형제의 투쟁은 무시무시하다기 보다는 처절하게 흐르게 된다.
형제의 초능력에 너무나도 가혹한 한계를 정한 작가의 의도는 무엇일까?
아마도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뛰어난 능력을 지닌 누군가에 의지하기 보다는
한계도 많고 약점도 많은 평범한 대다수의 사람들이 스스로 나서기를 바란 것이 아닐까?
소설 중에서 주인고의 말 중에 '옳다고 믿는 것을 끝까지 밀고 나가'면 언젠가는 변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무솔리니나 히틀러 등의 대표적인 파시즘의 선동가들은 대개 어려운 시기에 나타난다.
독일의 경우도 1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으로 대다수의 사람들이 살아가기 힘들 때 나타났다.
정상적인 논리로는 이해하기 힘든 히틀러의 논리가 대다수 독일인들에게 통했던 이유는
현실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기 보다는 무엇인가 다른 것에 책임을 넘기고 싶었던 심리를
뛰어난 선동능력으로 파고들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 시절에 비해 상대도 안될 정도의 정보의 양이 흘러가는 지금은 그런 선동이 어려울 듯 하지만
오히려 노련한 선동가라면 언제 어디서나 접할 수 있는 정보의 흐름만 살짝 바꾸어도
그 파급력은 상상을 초월할 수 있기에 그 시대보다 휠씬 쉽게 선동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는 그런 우려를 소설을 통해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너무도 쉽게 선동될 수 있음을...
이런 선동에 이끌리지 않은 방법 또한 제시한다. '검색'을 하지 말고 '사색'을 하라고....

소설을 읽으면서 나 또한 반성을 하게 된다.
스스로 많은 지식을 접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나 역시 그 정보에 대한 사색은 없었다.
어디선가 '검색'한 지식을 마치 스스로의 지식인 것 처럼 자랑하고 뻐기며 살았단 생각에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 없을 정도의 민망함을 느꼈다.
소설속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언제든지 우리에게 현실이 될 수 있는 이야기였다.
무시무시한 소설속 세상이 현실이 되지 않기 위해 지금부터라고 '사색'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주제가 무겁다고는 해도 정말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개인적으로는 '사신치바'가 좀 더 좋았다는 생각이다. 조금은 아쉬운이 남는 부분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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