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청춘은 있다. 그리고 그 청춘은 누구에게나 아련한 그리움과 풋풋한 첫사랑으로 기억된다. 삶에 지치고 힘들면 우리간 기대고 쉴 수 있는 추억의 저장창고와 같은 시절이 바로 청춘이다. 이렇듯 아름답게만 기억되는 그 청춘의 시절에 우리는 언제나 행복했던가? 돌이켜보면 젊음의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던 축복받은 시절에 우리는 가장 치열한 삶을 살았던 것 같다. 고민없는 청춘은 죄인이라도 되는 듯이 치열하게 고민하고 온 몸으로 부딪치며 세상을 살아갔던 것 같다. 무모하게 부딪치고 처절하게 깨지는 것이 청춘의 특권이라고 되는 듯이 방황하고 고민했던 그 시절의 기억들. 작년에 '엄마를 부탁해'로 문학계 뿐만 아니라 우리사회 전체에 커다란 화두를 던져주었던 신경숙 작가의 신작인 이 소설은 그런 청춘에 대한 예찬인 동시에 지금 그 시절을 지나고 있는 청춘들에 대한 인생의 선배로서의 아낌없는 충고와 가슴에서 우러나는 위로로 가득찬 소설이다. 윤, 단이, 명서, 미루는 모두 상실의 아픔을 겪는다. 윤은 사랑하는 엄마와 단짝친구 단이, 마음이 통하는 친구 미루를 모두 잃는다. 단이는 자신이 사랑했던 윤을 잃는 슬픔에 겪는다. 명서는 어릴 때 부터 함께한 미루를 잃고 미루는 자신의 우상인 언니를 잃는다. 아마도 그 시절이 그런 시절인가 보다. 누구는 첫사랑에 실패한 상실감에 빠지고 누구는 사랑하는 가족을 잃는 아픔을 겪고... 그렇게 아픔을 겪고 나서야 비로소 우리는 사람을 보는 것인지도 모른다. 자신이 잃어버린 사람의 자리가 얼마나 커다란 구멍이었는지 알게 되는 과정에서 세상에 나가 우리가 접하는 모든 인연들에 대한 소중함을 배우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청춘의 상실이란 세상에 나오기 전에 미리 맞는 인간관계에 대한 예방주사와 같은 것이다. 상실감을 가질 수 밖에 없다고 하더라도 그 상실감에 자신마저 잃어서는 안된다는 윤교수의 말을 통해 작가는 청춘들에게 충고를 하고 있다. 시대의 상황이 나쁘지 않더라도 청춘은 투쟁한다. 투쟁은 청춘의 또다른 이름이다. 지금의 대학은 취업을 목적으로 하는 곳으로 변해서 그 투쟁의 강도가 줄어들고 있다고 하지만 그래도 투쟁은 계속된다. 그리고 그 투쟁의 결과는 언제나 패배이다. 사회라는 곳은 젊은 청춘들의 치기어린 투쟁으로 쉽게 변할 수 없는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괜찮다. 그렇게 깨지면서 배우는 것이 바로 삶이다. 소설속 주인공들도 각자가 생각하는 세상의 부조리와 투쟁하고 처절하게 패배한다. 그렇게 그들도 삶을 배운다. 작가는 소설을 통해 세상과 싸우다 패배하고 지친 청춘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전한다. 패배가 투쟁을 아름답지 못한 것으로 만들지는 않는다고... 청춘의 투쟁을 그 자체로 가치를 지닌 것이라고... 열심히 투쟁하며 깨지고 배우라고 말한다. 그렇게 깨지면서 자신의 모난 곳을 매끄럽게 다듬는 과정도 청춘이 준비해야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외국의 청춘소설에 열광하면서도 국내에서는 제대로 된 청춘소설이 없는 것이 아쉬워서 이 소설을 썼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 소설은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비록 '엄마를 부탁해' 처럼 사회적인 신드롬을 일으키기에는 소설의 타겟이 적다는 아쉬움이 있지만 인생의 선배로서 청춘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나 역시 이 소설을 읽어야 할 타겟이 아니기에 그런 아쉬움이 조금 남지만 내 아들이 좀 더 자라 이 소설을 읽을 나이가 되면 자신있게 권할 수 있는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