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림슨의 미궁
기시 유스케 지음, 김미영 옮김 / 창해 / 2009년 12월
평점 :
품절


<검은 집>이라는 소설은 내가 읽은 소설 중에서 가장 무서운 소설중의 하나입니다.
깊은 밤이 아니라 환한 낮에 읽었는데도 저절로 식은 땀이 배어나던 그 느낌.
그 이후 나에게 가장 무서운 소설을 쓰는 작가로 인식되는 작가가 '기시 유스케'입니다.
그의 신작 소설 [크림슨의 미궁]을 선물 받았을 때 그 기억이 되살아나 선입견이 생겼습니다.
그런 선입견을 가지고 읽기 시작한 소설이기에 어디서 무서운 이야기가 나올까 기대(?)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번에도 그의 소설은 무서웠지만 [검은 집]의 무서움과는 다른 무서움이었습니다.

두 소설 모두 '싸이코패스'를 다루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작가가 특별히 싸이코패스를 좋아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작가는 인간이긴 하되 인간성이 없는 그들을 통해 인간성의 가치를 강조하고 싶었나 봅니다.
인간에게 다른 모든 영장류를 지배하고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인간의 본성에 내재되어 있는 인간성의 가치임을 강조하고 싶었나 봅니다.
[검은 집]의 살인마도, 이 소설의 '식시귀'도 그 인간성이 없기 때문에 무서운 겁니다.
'기시유스케'에게 공포란 인간성을 잃어버린 인간에 의한 공포가 가장 큰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공포를 고스란히 소설에 담아냄으로써 독자에게 인간성의 가치를 깨우치게 합니다.
[검은 집]의 싸이코패스가 선천적으로 그렇게 태어난 것이라면
이 소설의 싸이코패스는 인간을 도구로 생각하는 또다른 의미의 싸이코패스에 의해
'만들어진' 싸이코패스라는 것이 차이점이라고 하겠습니다.

이 소설에서는 싸이코패스에 의한 '인간사냥'의 공포만을 그리는 소설이 아닙니다.
'만들어진' 싸이코패스라는 것을 통해 극한 상황에 처한 인간의 인간성이
얼마나 나약한 것이고 인간이란 동물이 얼마나 쉽게 인간성을 버릴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소설 속 9명의 인물들이 살아남기 위한 서바이벌게임을 벌이고 있지만
'식시귀'로 변한 인물들과 나머지 인물들의 차이가 백지 한장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치 극한 상황 대 인간성의 대결을 펼쳐놓고 누가 이기는 가를 관전하는 모습이라고 할까요?
과연 그 승자는 누가 될까요?

소설 속 악인은 물론 '식시귀'로 변한 2명이라고 하겠지만
가장 큰 악인들은 끝내 정체를 드러내지 않은 채 그들을 조종한 이들이지요.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인간을 도구로 사용하는 인간들.
그들이야 말로 최고의 악인이자 최고의 싸이코패스가 아닐까요?
더 무섭고 슬픈 사실은 그들의 존재가 결코 소설에만 그치지 않는다는 거지요.
실제로 그런 인간들이 우리와 함께 숨쉬고 있는 것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것이지요.
정말 세상은 참 무서운 곳이라는 생각이 새삼 다시 들게 되는 소설입니다.

'기시유스케'라는 작가가 아직은 추리소설 작가로 이름을 날리고 싶지는 않은 모양입니다.
소설의 전편을 통해서 추리소설의 모든 구성요소를 멋지게 만들어 놓고도
마지막까지 그 매듭을 풀어주지 않은 채 결말을 만들어냈으니까요?
충분히 추리소설로 만들어 낼 수도 있는 마지막을 강한 추측으로만 마무리 한 것은
아직은 작가가 추리소설 보다는 스릴러 작가로 남기를 바라는 희망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그러나 충분히 추리소설 작가로도 매력적인 작품을 만들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품게 합니다.

다른 모든 것을 떠나서 이 소설 숨 쉴틈이 없도록 정신없이 몰아치는 재미가 있습니다.
얼마 전에 개봉했던 우리 영화 '10억'과 비슷한 설정을 가지고 있는데다
소설이라기 보다 영화에 가까울 정도로 박진감 넘치고 긴박한 전개가 뛰어납니다.
순간 순간 위기에 처하고 아슬아슬 위기를 피해가는 주인공들을 보면서 
함께 가슴이 뛰고 함께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작가의 솜씨가 정말 뛰어납니다.
재미로 읽으셔도 절대로 후회하지 않을 소설입니다. 최고의 엔터테인먼트 소설이죠.

극한 상황에 몰린 인간들의 부끄러운 모습을 보고 싶으시다면 강력히 추천하는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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