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매트릭스>의 상상이 우리에게 준 충격은 대단했습니다. 아직도 영화든, 소설이든 수많은 아류작들이 생산되고 있는 것을 보면 위쇼스키 형제의 상상력은 누구나가 한번쯤 해 보았을 질문이었다고 할 수 있죠. '내가 꿈을 꾸는 것이 실제로는 현실이고 현실이라 믿는 것이 꿈이 아닐까?' 이런 상상, 혹은 의문은 이미 고대의 아스텍 문화에서도 존재했던가 봅니다. 이 소설은 고대 아스텍의 신화적 종족 톨텍의 신화를 현대문명인 라디오와 연결한 독특한 상상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입니다. 라디오가 시공간을 초월한 매개체로 활약하는 많은 영화와 소설들과 닮아있죠. 소설은 그런 닮음에 '도시괴담'이라는 차별을 두어 신선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인터넷이 활성화 되기 전, 우리는 '천리안', '유니텔' 같은 PC 통신을 사용했죠. PC 통신을 통해 '퇴마록'을 필두로 수많은 이야기들이 퍼져 나갔습니다. 그 많은 이야기들 중에서 제가 지금도 기억하는 것 중에 '어느날 갑자기'라는 시리즈가 있었죠. 이미 소설로도 나왔고 영화로도 여러차례 만들어진 이야기. 수많은 공포영화의 소재를 제공했던 그 무섭고 소름끼지던 괴담들.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를 만났을 때 사람들이 경험하게 되는 본능적인 공포감. 이 소설에 나오는 <고스트 라디오>는 그런 공포를 공유함으로써 치유하고자는 방송이죠. <고스트 라디오>의 진행자인 호아킨은 어린 시절 사고로 부모님을 모두 잃고 그 사고에서 만난 가브리엘과 함께 죽음을 탐구하는 음악을 하는 밴드를 만듭니다. 어느날 해적방송을 시도하던 그들은 사고로 가브리엘이 죽고 호아킨은 살아납니다. 그 후 <고스트 라디오>를 진행하면서 성공의 길로 들어서는 호아킨에게 의문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처음엔 그저 혼란스러운 목소리에 그쳤던 그 목소리는 서서히 호아킨의 현실을 무너뜨리기 시작합니다. 그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요? 과연 호아킨의 진실은 무엇일까요? 이 소설의 가장 큰 장점은 읽는 동안 자신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된 듯한 착각을 느끼게 한다는 겁니다. 실제로 책을 읽는 3일 동안 내릴 정류장을 놓친 경우도 여러번 있었고 책을 읽는 동안 이야기속에 빠져있다가 책을 덮는 순간 갑자기 돌아온 현실에 낯설었던 경험도 여러번이었습니다. 지금까지 흔히 말하는 '환상문학'이라는 장르를 읽은 적이 몇 번 있었지만 환상문학의 대표적 작가라고 하는 '닐 게이먼'의 이야기마저 저에게는 그저 혼란스럽기만 했는데 이 소설은 여전히 혼란스러우면서도 저도 모르게 이야기속으로 빠져들게 만드는 매력이 있었습니다. 저에게는 생소한 경험이었고 환상문학이라는 장르에 대한 시각을 바뀌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꿈과 현실, 이승과 저승의 존재가 어지럽게 혼재되어있는 이야기 속에 청취자들이 전하는 도시괴담들이 그나마의 현실감을 유지해준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 입니다. 꿈과 현실, 이승과 저승을 넘나드는 매개체로 사용되는 라디오, 혹은 전파라는 것은 최첨단이 아니면서도 문명의 이기라고 할 수 있는, 참으로 애매한 기기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래서 그렇게 많은 소설과 영화들이 라디오를 신비한 매개체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결국 사랑하는 여인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 DJ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사랑이야기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최근에 읽은 구미권 소설 중에서 정말 특이한 느낌을 주는 신선한 소설입니다. 어지럽고 꽤나 혼란스럽지만 참으로 매력적인 이야기가 담긴 소설입니다. 사랑을 말이나 글로 표현하는 것은 꼴사나운 짓이다. 사랑을 값싼 감정으로 전락시킨다. 그건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이다. 사랑한다고 느낄 때조차. - P. 1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