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부터 범인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그리고 독자들에게 과감히 도전장을 던진다. 자! 여기 범인이 있다. 그리고 사건이 있다. 그러니 범인의 트릭을 찾아봐라! 일본 추리작가 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작가가 바로 히가시노 게이고 입니다. <용의자 X의 헌신>에서 처음 알게 된 그의 작품이 어느새 저의 책장의 3칸을 채우고 있습니다. 수많은 다작을 하는 작가이고 매년 수많은 작품을 내는 작가이지만 언제나 작품의 질은 평균이상을 유지하는 천재적 재능을 가진 작가. 강한 질투심이 날 정도의 작품들과 전혀 예상하지 못하는 트릭으로 독자들을 우롱하는 작가. 매번 그의 트릭에 속아나고 한 번도 눈치채지 못한 채 농락을 당하면서도 언제나 그의 신작이 나오면 반드시 읽게 만드는 마력을 지닌 작가. 이번 신작 <성녀의 구제> 또한 그의 마력을 한껏 발휘하는 전형적인 게이고식의 추리소설입니다. IT업체 사장의 마시바가 어느 날 의문의 중독사 한 시체로 발견됩니다. 외부의 침입 흔적은 없고 아무런 증거도 남지 않은 현장. 딱히 살인 사건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는 사건에 수사는 시작되고 유력한 용의자는 이혼을 요구당한 그의 부인. 그러나 그녀의 알리바이는 완벽하고... 천재 물리학자 유가와의 뛰어난 활약으로 드러난 유일한 가능성은 불가능한 트릭. 그녀의 트릭을 깨뜨릴 수 있는 증거는 과연 무엇인가? <용의자 X의 헌신>에서 대학 친구이자 천재 수학자 '이시가미'와의 대결 이후 다시는 경찰의 수사에 관여하지 않기로 한 유가와. 그런 그를 수사에 끌어들인 것은 친구이자 유능한 형사인 구사나기가 용의자에게 사랑을 느낀다는 후배형사 가오루의 말입니다. 감각적 능력이 뛰어난 형사 가오루와 정석을 따르는 수사에 능한 수사관 구사나기. 2명의 형사가 각자의 추리에 따라 각자의 방식으로 수사를 해 나가는 가운데 닥터 갈릴레오 유가와는 뛰어난 논리력과 과학적 근거를 토대로 불가능한 트릭을 유추해 냅니다. 2명의 수사가 서로 다른 추리에 따라 따로 따로 이루어지는 듯 보이지만 결국 마지막에 가서는 하나의 점에서 만나는 점에서 이 소설의 구성은 탄탄합니다. 둘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유가와의 활약은 <용의자 X의 헌신>만큼 뛰어납니다. 그리고 범인인 아야네가 만들어 낸, 아니 게이고가 창조해 낸 트릭이란.... 제목에 나오는 '구제'의 의미가 밝혀지는 순간 나는 또 한번 게이고에 두손을 들고 말았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이번 소설에도 게이고는 추리소설의 형식에 사랑을 담아냈습니다. <용의자 X의 헌신>에서 마지막 이시가미의 절규에 가슴이 아파왔던 경험이 이 소설의 마지막에서 아야네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그대로 되살아났습니다. 물론 어떤 이유로든 살인이란 정당화 될 수 없다고 하지만 아야네가 미시바에게 보여준 모습은 자칫 광기로 보일 수 읽을 만큼 지독한 사랑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지독한 사랑이 배신이라는 결과를 맞이했을 때 그녀의 선택은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죽일 것인가를 고민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죽이지 않을 수 있을까 고민해야 했던 범인. 그녀의 선택이 안타깝고 그녀가 보냈을 그 긴 시간의 지독한 사랑이 무섭게 느껴집니다. 마치 영화 '미저리'를 보고 느꼈던 것과 비슷한 무서움이라고 할까요?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을 많이 읽었지만 이 소설의 사랑이 가장 지독하다는 느낌입니다. 그녀의 지독한 사랑을 만나보세요. 그리고 게이고가 던지는 두뇌게임에 도전해 보세요. 추운 날씨에도 정신없이 집중하면서 읽게 만든 정말 재미있는 추리소설 입니다. 강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