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경궁 동무 나를 찾아가는 징검다리 소설
배유안 지음 / 생각과느낌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정조에 대한 이야기는 수많은 소설의 소재가 되고 그의 시대는 수많은 소설의 배경이 됩니다.
그 이유는 우리 역사에서 가장 큰 아쉬움을 남긴 불우한 왕이었기 때문입니다.
조선의 왕조사에서 상상도 못했던 아비의 죽음을 지켜봐야 했던 왕이었고
왕이 된 이후에도 수많은 정적들에 둘러싸여 생명의 위협을 맞이했던 왕이었고
그래서 철저히 자신을 단련하고 잠시도 게을러질 수 없었던 철의 군주였고
그 파란만장한 인생을 49세의 젊은 낭이에 요절로 마감해야 했던 삶의 주인공이었습니다.

그런 그의 삶 때문인지 몰라도 그의 반대편에 서있던 노론세력은 역사의 죄인으로 인식됩니다.
그 중심에 있던 정순왕후 김씨와 그의 오라비 김귀주, 화완옹주와 그의 양자 정후겸.
역사의 죄인이었고 세손이었던 정조와의 정치적 싸움에서 패자로 남아있던 그들입니다.
이 소설은 그 중에서 정후겸의 시선으로 정조의 이야기를 써 내려간 소설입니다.
그를 재해석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그의 잘못을 두둔하고 그의 편을 들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그의 입장에 서서 사도세자의 죽음과 정조의 모습을 바라보며 느꼈을 절망과 질투의 기록입니다.

몰락한 양반이기에 고기잡이로 생계를 이어가야 했던 어린 정후겸이
화완옹주의 양자가 되어 궁에 들어오고 같은 또래의 세손(정조)를 만나며 싹트는 우정.
그러나 자신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하더라도 결코 세손의 기품을 따라갈 수 없다는 좌절감.
자신보다 더 나을게 없는 세손이 단지 왕족이라는 이유로 그의 위에 선다는 것에 대한 억울함.
게다가 자신 못지 않은, 오히려 자신을 뛰어넘는 재능을 가진 세손에 대한 질투심.
수많은 감정들이 섞이면서 정후겸이 정조의 대항마가 되어야만 했던 과정을 그의 시선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정조와 정후겸이 본격적인 대결을 펼치는 이야기는 생략한 채 동무에서 정적이 되어가는 과정을 그립니다.
그리고 조금이나마 정후겸의 입장에서 그 과정을 이해하려 하다 보면 그가 참으로 불쌍하게 느껴집니다.
책 속에 나오는 말처럼 그가 스스로를 다스려 정조의 정적이 아닌 영원한 친구로 남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 시대에 수많은 인재들이 그렇게 쓰러져갔던 것 처럼 어쩌면 정후겸도 시대의 희생양이었는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역시 그들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개인적으로는 비판적인건 여전합니다.

실제로 그랬을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의 패배를 깨끗이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정후겸의 모습이
서로 물어뜯기에 정신이 없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못하는 지금의 정치인들 보다 몇배는 멋있게 느껴집니다.
정조에 대한 수많은 소설들 중에서도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는 이 소설은 신선하게 느껴집니다.
패자였기에 할말을 하지 못했던 정후겸이라는 인물의 이야기를 경청해 보심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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