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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야 - 전2권 세트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권일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10월
평점 :
품절
히가시노 게이고의 천재성은 언제나 혀를 내두르게 만듭니다.
정상적이라고 할 수 없는 다작임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일정 이상의 만족을 주는 그의 천재성은
때로는 하나의 소설로 독립해고 될 수많은 이야기를 한권의 소설로 묶어내기도 합니다.
그 대표적인 작품이 <백야행> 입니다. 이번에 영화로 개봉되서 화제가 된 책이기도 하죠.
제가 <백야행>을 읽은 건 이미 2년 전이었고 그 후 게이고의 작품을 수없이 읽었습니다.
이미 제 책장의 두 블록을 꽉 채우고도 남길 만큼 그의 작품을 읽었지만 아직도 다 읽지는 못했죠.
이번에 읽은 <환야>도 그런 남은 숙제들 중에 하나입니다. 그리고 이번에도 만족도는 기대 이상 입니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 소설이 절대로 <백야행>의 속편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독자들은 모두들 이 책을 읽으면서 감히 <백야행>의 속편이 아니라고 할 수 없습니다.
<백야행>의 지독한 팜므파탈, 그녀의 모습이 그대로 <환야>의 미후유에 반영되었기 때문이죠.
아니, 어쩌면 <환야>의 신카이가 오히려 <백야행>의 그녀의 빰을 제대로 후려친다고 할 수 있죠.
간단하게 말하면 <백야행>의 그녀가 몇 단계 업그레이드 되어 돌아왔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이런 건 금의환양이라고 할 수는 없겠죠?
소설의 전개는 <백야행>과 80%이상 닮아 있습니다.
고배 대지진의 참혹한 혼란속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미후유과 마사야.
끔찍한 혼란속에 충동적으로 사람을 죽인 마사야에게 다가온 미후유.
그녀는 살아갈 모든 것을 잃어버린 그에게 유일한 지표가 되고 그와 그녀는 환상의 파트너가 됩니다.
그녀는 그를 발판 삼아 자신의 지위를 한단계씩 높혀가고 그는 그녀가 제공한 환상에 빠져듭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을 끝까지 쫓아가는 날카로운 눈빛의 형사까지.
속고 속이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세상속에서 타인을 수단으로 생각하는 최고의 팜므파탈.
그녀의 치밀함과 냉철함, 타인을 다루고 얼르는 솜씨까지... 소름이 끼치게 만듭니다.
중간 중간에 <백야행>과의 연관성을 느끼게 해주는 부분들도 있고... 확실히 <백야행>의 속편입니다.
<백야행>의 주인공들은 어린 시절 최악의 범죄에 노출되어 앞을 볼 수 없는 삶을 살아갑니다.
제목 그대로 환한 낮을 걷고 있으나 자신의 미래를 알 수 없는 지독한 어둠에 묻혀살죠.
<환야>에서 마사야는 예상치 못한 자연재해의 혼란속에 자신의 영혼을 잃어버린 채
자신의 목적을 위해 타인을 이용하는 미후유가 제공하는 환상에 빠져 버린 채 살아갑니다.
영혼을 잃은 채 그녀의 꼭두각시가 되어버린 그의 삶은 환한 낮을 살고 있지만 결국은 환상입니다.
밤이라는 것을 알지만 환한 낮처럼 걸어가는 백야가 아닌
낮이라고 생각하지만 결국은 밤이 만든 환상인 환야에 사로잡힌 불쌍한 영혼의 이야기입니다.
'백야'의 남자 주인공이 여자주인공과 동등한 입장에서 동업자의 관계였다면
'환야'의 마사야는 미후유가 제공하는 환상을 먹고사는 그녀의 꼭두각시에 지나지 않습니다.
더 불쌍한 영혼... 가해자라고 하지만 그 누구보다 큰 피해자인 마사야의 영혼이 가엽게 느껴집니다.
<백야행>에서 두 사람의 행위가 나열될 뿐, 그들의 심리상태에 대한 묘사는 전혀 없습니다.
이 책에서는 마사야라는 주인공의 심리상태에 대한 치밀한 묘사가 스토리의 중심을 이루고 있습니다.
당연히 <백야행>보다는 상황에 대한 이해력이 훨씬 좋아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책을 다 읽고 난 뒤에 씁쓸함은 그 정도가 더 강해집니다. 오히려 몰랐으면 좋았을 텐데....
백야에서 환야를 거쳐 점점 더 발전된 게이고의 팜므파탈 캐릭터가 어떻게 발전될 지 궁금해 집니다.
소설의 결말이 그리 된 것도 어쩌면 아직도 팜므파탈의 그녀에게 휴식을 주지 않는 게이고의 매정함일 수도 있겠네요.
<백야행>이 화제의 중심이 된 지금, 함께 읽으면 정말로 좋은 소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