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스테라
박민규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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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단 한편으로 나의 시선을 사로잡아버린 박민규라는 작가.
<지구영웅전설>과 <핑퐁>을 거쳐서 그의 최신작인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까지 단숨에 읽어버리고
그의 초기 단편들의 모음집인 <카스테라>를 이제서야 읽게 되었다.
10편의 그의 초기 단편들을 모아 놓은 이 소설집은 그래서 그의 문학적 배경과 완성과정을 유추해 볼 수 있는
’박민규 소설의 종합 선물세트’라고 할 수 있다.
책의 마지막에 달려있는 무지하게 긴 작품해설을 보지 않더라도 독자 스스로 충분히 그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세상의 모든 것을 담을 수 있는 냉장고.
오리배를 타고 전세계을 여행하는 ’오리배 세계시민연합’.
9호 구름을 타고 우주로 날아가 보니 지구는 둥근것이 아니라 한마리의 개복치였다.
어느날 갑자기 대왕오징어가 서울 한 복판을 습격한다.
평온한 가을날 느닷없이 나타난 헐크호간이 나에게 헤드락을 걸어온다.
운동권 출신의 농촌운동가의 농장에 외계인이 습격한다.

언뜻 보기에 도대체 이게 무슨 말도 안되는 이야기인가?라는 생각이 든다.
마치 정신분열증 환자가 두서없이 지껄이는 논리라고는 전혀 없는 이야기 같다.
그래서 책을 읽는 내내 작가 박민규의 정신세계와 그의 상상력을 따라가는 것은 너무도 힘들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편의 이야기가 끝나고 나면 쉽게 다음 이야기로 넘어갈 수 없었다.
기발하고 황당하고 정신분열증 같은 작가의 상상력 속에 숨겨둔 
세상에 대한, 자본주의에 대한, 소외되고 무시된 사람들에 대한 작가의 날카로운 시선과
그 날카로운 시선속에 담긴 인간에 대한 애정, 그리고 힘든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에 대한 위로가
한참동안 생각할 여지를 만들어 주고 지쳐버린 내 삶에 작은 쉼표를 건네준다. 그래서 잠깐의 행복을 느낀다.
그렇게 더디게 한편씩 읽어가다 보면 어느새 10편의 이야기가 끝나버린다. 그리고 진한 아쉬움이 남는다.

’박민규 소설’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낼 정도로 독특하고 새로운 그의 문체는 여전하다.
아니, 이 소설집에 나오는 초기의 문체들이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에서 완성되었다고 해야할까?
초기부터 그의 시선을 소외되고 약한 이들에게 향해있다.
경쟁에서 자의로든 타의로든 밀려난 사람들, 혹은 겉으로 성공했으나 가슴 속엔 채무를 가진 이들.
겉으론 아무렇지도 않은 듯 살아가지만 언제든지 그런 처지에 빠질 수도 있는 지금의 우리들에 대한 시선이
이미 소외된 이들에 대한 따뜻한 애정으로 불안함과 초조함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에게 작은 위로를 준다.

그의 상상은 한계가 없었고 그의 시선은 날카로우면서 따뜻했다.
역시 박민규다. 당분간 그의 매력에서 빠져나오기 정말 힘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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