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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금서
김진명 지음 / 새움 / 200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한국인으로 살아가는 우리들.
과연 '대한민국'과 '한국인'의 '한(韓)'이라는 이름의 기원은 무엇일까?
너무도 자연스레 한국인이라 말하면서 그 이름에 의문을 가진 적은 없었다.
설령 의문을 가졌다 하더라도 대한민국이라는 국호가 '대한제국'에서 유래되었고
'대한제국'이라는 이름은 '삼한의 정통을 잇는다'는 의미라는 설명에 그저 수긍하고 말았다.
그러나 작가 김진명이 밝히는 국호 '대한민국'의 비밀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다.
홀로사는 여교수가 목을 맨 채 죽음으로 발견된다.
외부 침입의 흔적도 없고 외상도 없는 상태에서 발견된 자살사건.
그러나 일반적인 자살과는 다르게 시체는 앉은 채로 목을 매고 있다.
의문을 가진 목반장은 홀로 수사에 나서게 되고
죽은 여교수의 친구인 정서를 만나면서 여교수에 죽음을 둘러싼 거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여교수와 함께 공동연구를 진행하던 역사학자 은원은 중국에서 실종된 상태이고
은원의 연구를 쫒아가던 정서는 그녀가 '대한민국'이라는 국호의 기원을 쫒고 있었음을 알게된다.
은원의 행방을 찾아 중국으로 들어간 정서에게 상상도 못할 진실이 기다리고 있는데...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있거나 조금이라도 흥미가 있는 사람이라면
수많은 교양역사서들, 그 중에서 고대사 부분에서 '이병도'라는 인물을 만나게 된다.
일제시대 '식민사관'의 대표주자로 한국의 고대사를 망쳐놓은 인물.
나라를 팔아먹은 '을사5적'보다 역사를 팔어먹은 그를 더 증오하는 학자들은 많이 있다.
물론 그가 죽기 직전에 자신의 잘못을 참회했다고는 하는 이미 때는 늦었다.
그의 가르침을 받은 수많은 제자들이 이미 기성 사학계에서 자리를 잡고 있었고
그들의 기득권을 버리고 스승의 참회에 동조한 인물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 우리의 고대사는 말 그대로 엉망진창이 되었도 아무것도 확실하지 않은 것이 되었다.
그 결과가 우리가 배우는 '단군신화'이고 그것은 그대로 우리의 고대국가에 대한 포기이다.
엄연한 실제가 존재하는 위대한 국가를 한낱 신화의 수준으로 끌어내린 만행이고
이것은 그대로 일제의 식민사관이 바라던 그 모습 그대로 이다.
요컨대 이미 나라는 독립했을지 몰라도 우리의 역사는 절대로 독립하지 못한 것이다.
김진명의 일본에 대한 원망은 수많은 그의 작품들을 통해 일관적으로 나타난다.
'황태자비 살해사건', '한반도' 등의 소설을 통해 드러낸 적의를 바탕으로 이제 그가 고대사의 복원에 나섰다.
중국의 동북공정의 틀안에서 이제는 '고구려'마저 빼앗길 위기에 처한 우리의 고대사를 위해
그는 감히 어느 역사학자도 말하지 못하는 과감한 가설을 제시하고 과학적 근거를 제시한다.
물론 소설의 내용이 100% 진실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실제로 증명된 내용만 드러낸다 해도 그 작업은 위대했다.
실제로 '단군세기'에는 오성집결의 기록이 있고 그 기록이 진실임이 과학적으로 증명되었다면
'단군세기'를 위작이라 폄하하며 한반도의 고대사를 단절시킨 지금의 역사학자들은 직무태만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왜곡과 첨작으로 아예 소설이 되어버린 사마천의 '사기'는 절대진리로 믿으면서
몇가지 석연찮은 이유로 우리의 위대한 역사서 '단군세기'를 위작이라 말하는 이들은
중국이나 일본의 학자들이 아니라 바로 우리나라의 학자들이라는 것에 가슴이 미어질 뿐이다.
김진명의 소설들은 빨리 읽힌다는 장점이 있다.
그것은 그만큼 독자의 감성을 자극하는 이야기를 흡인력인는 문체로 풀어간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자극하는 독자들의 감성이란 대개 '애국심'이라는 것으로 귀결된다.
내가 자랄 때만 하더라도 애국심은 중요한 가치가 되었지만 이제는 그 위상이 떨어진 가치이다.
세계가 하나라는 이미지에 국가에 대한 의식이 약해지며 자연히 애국심도 그 위치가 줄어든다.
구시대적인 감성이라 말할 수 있는 '애국심'을 지속적으로 자극하는 그의 작업은 그래서 때로 강한 반발을 가져온다.
그런 반발은 결국 그가 말하는 진실에 대한 의문으로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의 그런 작업들이 고맙기만 하다.
물론 '애국심'이나 '민족애'가 구시대적 가치라 하더라도 '역사'라는 것은 절대로 구시대적 가치가 아니기 때문이다.
책의 구성이 조금 허술하기는 하다.
대부분의 단서들이 우연에 의해서 발견되고 사람들과의 만남도 우연이 많기 때문이다.
특히 술자리에서 비밀을 기설하는 장면은 실소를 머금케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도 단 하루만에 책을 읽을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소설적 재미와 함께 잠시나마 생각을 할 수 있는 꺼리를 만들어 준 소설.
그래서 이 소설은 강추!!! 할 만한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