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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나좀 도와줘 - 노무현 고백 에세이
노무현 지음 / 새터 / 2002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내 손으로 만든 유일한 대통령.
내가 처음으로 투표권을 행사했던 대선은 김영삼을 대통령으로 만들었던 92년 대선이다.
그 당시 난 3당야합으로 후보가 된 영삼이를 싫어했고 결국 김대중을 찍었다.
그렇게 시작된 내 투표권의 시작은 결국 번번히 '죽은표', 즉, 사표가 되었다.
정계은퇴를 번복한 김대중이 싫어서 투표를 포기했던 97년의 기억.
그러는 동안 난 기성의 정치권에 염증을 느꼈고 서서히 정치를 멀리했기 시작했다.
그 놈이 그놈인 한국 정치판에서 나에게 새로운 희망을 보여준 인물은 바로 '노무현' 이었다.
5공 청문회를 통해 벼락스타가 되었던 그가 고집스런 바보 노무현이 되더니 조용히 잊혀졌다가
그해 2002년, 월드컵의 광풍처럼 몰아친 '바보 노무현'의 노란 열풍에 난 열광했고
선거 전 날 전격적으로 이뤄진 정몽준의 배신에 눈물을 흘리며
또 한번 나의 선거는 '사표'가 되었다고 생각하며 그에게 표를 던졌다.
그리고 기적과 같은 그 선거의 결과 그는 내 손으로 뽑은 유일한 대통령이 되었다.
거짓말 같은 그의 죽음. 그리고 때늦은 후회.
토요일 새벽에 정말 거짓말처럼 전해진 그의 죽음.
제발 오보이기를, 정말로 거짓말이기를 그렇게 바랬던 그의 죽음은 결국 현실이었고
500만 국민의 슬픈 추모와 수십만 시민의 눈물을 벗삼아 그는 우리의 곁을 떠났다.
그리고 어느덧 한달이 지나고 이제서야 난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이제서야 그가 남겨둔 작은 유작 하나를 접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서야 난 그를 잃은 슬픔에 가슴이 메이는 아픔을 느낀다.
그러면서도 그를 선택했던 나의 선택이 잘못되지 않았음을,
그를 선택한 것이 결코 후회가 없는 선택이었음을 다시한번 깨닫게 되었다.
드라마 같은 그의 여정. 그 속에 담긴 그의 의지.
고졸 출신으로 기적 같은 사시 합격,
잘 나가던 변화사를 집어치우고 노동자의 곁을 지킨 인권변호사로의 변신,
깨끗한 이미지로 13대 총선에서 국회로 진출,
그리고 5공 청문회에서 증인들을 쩔쩔매게 하며 국민의 속을 시원하게 해주었던 영웅,
3당야합에 반대하며 그의 정치적 스승 김영삼을 단번에 버리고 끝까지 저항했던 무모한 인물,
어느날 갑자기 의원직 사퇴서를 던지고 국회를 내던지던 철부지 정치인,
모두의 만류를 무릎쓰고 부산에서 4번 출마하여 4번 모두 낙선한 '바보 노무현',
국민들의 열광으로 권력의 최고봉에 올랐다가 비극적인 최후로 마감한 정치인 노무현.
그 어느 드라마나 영화보다 더 극적이었던 그의 삶.
시대와 화합하지 못하고 사사건건 세상과 싸웠던 그의 뚝심.
적당한 타협으로 넘어가지 못하고 자신의 신념과 맞지 않는 것은 과감히 거부했던 사람.
떠나 보내고 나서야 그를 그리워하고 잃고 나서야 그의 소중함을 다시 깨달은 나의 허무함이여.
정치인이자 남편이자 아버지이자 아들이었던 바보의 이야기.
이 책은 그가 14대 총선에 낙선한 직후 자신의 짧았던 국회의원 4년을 회고하며 써내려간 이야기 이다.
여의도에 들어갔으나 아무런 빽도 없는 힘없는 국회의원으로써 겪은 4년의 정치판.
미우나 고우나 그의 정치적 스승이었던 김영삼과 그의 정치적 동지인 김대중과의 인연.
한 여자의 남편으로 한 가정의 가장으로 살아갔던 자연인 노무현의 이야기.
그의 영원한 고향마을과 가난했던 어린시절부터 고시에 합격해 정치인으로 성장한 시점까지의 그의 인생 이야기.
내가 바라보았던 노무현과 내가 알고있던 노무현과는 다른 인간 노무현의 냄새.
이제는 다시 맡고 싶어도 맡을 수 없기에 더욱 그리운 '사람 노무현'의 냄새가 가득 담겨있는 에세이이다.
왜 이제서야 난 그의 이야기를 읽게 되었는가?
왜 이제서야 난 그의 신념을 알려고 했던 것일까?
그저 표를 던져놓고 그가 잘하기를 바라기만 했던 나의 지독한 무관심이 그를 그렇게 보내고 말았다.
검찰의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조금이나마 실망했던 나의 작은 배신이 그를 부엉이 바위에서 밀어 버렸다.
지독한 반성과 후회 속에서도 내가 그나마 위안을 삼을 수 있었던 것은
그 때 그를 위해 던졌던 나의 한 표가 나에게 던져주는 비겁한 변명 때문일 것이다.
적어도 아들이 세상을 알게될 나이가 되었을 때 난 자랑스럽게 그를 찍었다고 말할 수는 있을테니까.
나는 그때 지식이 잘못 쓰여질 때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새삼 깨달았다.
한 사회의 가치관이 거꾸로 서 있거나 가치 판단이 흔들릴 때,
잘못된 양심을 가진 사람의 지식은 어떤 도둑질이나 살인보다도 위험한 범죄인 것이다.
그와 같은 사람들이 국민을 속이는 머리를 빌려주고 이론을 제공해 주었기 때문에
전두환 씨 같은 사람이 8년간이나 독재 정권을 유지했던 것이 아니겠는가.
- P. 24
"여보, 나좀 도와줘. 나는 꿈이 있어. 나는 그 꿈을 실현하고 싶어.
정치를 하려면 미쳐야 된대. 여보 양숙 씨, 우리 같이 한 번 미쳐보자. 응?"
- P. 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