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매력적인 작가. 미야베 미유키. [모방범], [낙원], [화차]에 이어 4번째로 만나는 '미미여사'의 작품이다. 다양한 장르의 소설을 쓴다는 그녀지만 우연히도 내가 읽은 소설들은 하나같이 사회성이 짙은 작품들이었고 이번 소설 [이유]도 지극히 사회적인 작품이다. 그녀의 작품은 선뜻 집어낼 수 없는 두께의 압박이 언제나 부담이 된다. 이 책 또한 그런 압박은 여전하지만 읽고나서 남는 아쉬움도 마찬가지이다. 조금 더 두꺼웠으면, 조금 더 이야기가 전개되었으면 하는 아쉬움. 사건을 따라가지 않고 인물을 따라가는 추리소설. 사건의 해결에 중점을 두지 않고 사람들의 이야기에 중점을 두는 소설. 그렇기에 언제나 두께의 압박을 주지만 절대로 지루하지 않는 매력을 지닌 소설. 엄청난 필력을 보여주는 대단한 작품들로 언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소설. 치밀한 구성과 짜릿한 반전으로 승부하는 히가시노 게이고와는 또 다른 매력을 지닌 작가. '미미여사'는 읽으면 읽으수록 매력을 느끼게 하는 참으로 매력적인 작가이다. 엽기적인 살인사건에 숨겨진 현대사회의 치부. 거품경제가 붕괴되기 직전에 분양되어 거품경제 붕괴 후 입주하기 시작한 고급 아파트. 우리로 치면 '타워 팰리스'와 비슷한 최고급 아파트에 최악의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아파트 분양회사 부장의 말대로 비싼 아파트일수록 이웃은 사라진 것인지... 아무도 그들이 누구인지 모른다. 심지어 그들이 언제 이사를 왔는지도 모른다. 살해된 4명의 신원을 밝히는 과정을 따라가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등장하고 그 사람들이 전하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전해진다. 그들의 이야기 속에는 현대와 과거를 일통하는 일본사회의 온갖 치부가 드러난다. 또한 그들의 치부라는 것이 결코 우리의 모습이 아니라고 거부할 수 없기에 그대로 우리의 치부가 된다. 그런 치부가 마냥 부끄럽지만은 아니게 만드는 것을 결국 가족의 힘이고 작가가 이 소설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도 결국 가족의 위대함이다. 수많은 이유로 인해 이미 치유할 수 없는 병에 걸려있는 현대사회를 치유할 수 있는 것도 결국 가족이라는 말로만 대신할 수 있는 끈끈한 유대감에 있음을 말하고 있다. 살인이 있고 범인은 있으나 추리는 없다.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경찰이 수사에 나서고 결국 범인을 밝혀지지만 이 소설은 추리소설이 아니다. 일단 소설은 작가가 스토리를 풀어가는 방식이 아니라 등장인물들의 인터뷰로 이어지는 르포 형식이다. 일반적인 소설에 익숙한 나로서는 생소할 수 밖에 없는 형식인데 읽으면 읽을수록 재미있는 형식이다. 작가가 인물에 대해 일방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인물의 인터뷰를 통해 독자가 짐작할 수 있게 하는 방식이다. 그래서 4명의 희생자들의 이야기는 독작의 짐작으로 판단할 수 있을 뿐이다. 뛰어난 능력을 지닌 탐정이 나오지도 않고 경찰의 수사는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660페이지에 달하는 내용 중에서 570페이지가 넘어서야 드러나는 사건의 진상. 그러나 그 진상이 그리 궁금해지지 않는 것은 소설이 사건에 대한 포커스를 맞추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소설은 살해된 피해자들을 중심으로 그들의 가족들과 주변인들을 훑어 나가면서 현대 일본사회가 가지고 있는 수많은 문제들과 그들의 얽히고 설킨 가족사와 아픔들을 따라가고 그 과정을 통해 현대와 과거를 아우르는 일본 사회의 아픔을 어루고 달래는 방대한 작업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소설은 결코 추리소설이 아니며 오히려 사회소설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결코 남의 일이 아닌 이야기. 일본의 이야기이고 소설속에 나오는 이야기일 뿐이라고 치부할 수 있다면 이 소설은 재미있다. 그러나 집이 가족의 보금자리가 아니라 투자와 허영의 대상이 되어버린 지금의 한국사회, 아빠는 회사로, 엄마는 부업으로, 아이들은 학원으로 떠밀려서 뿔뿔이 흩어진 한국의 가족, 소설에 나오는 10여년 전의 일본의 현실이 지금의 우리의 현실과 너무도 흡사하다. 그러다보니 소설은 결코 남의 이야기가 될 수 없고 그래서 난 이 소설이 무섭다. 점점 더 우울해지고 삭막해지고 박다른 구석으로 달려가고 있다고 느껴지는 우리사회의 모습을 이미 일본은 10여년 전에 겪었고 작가는 그런 일본사회에 일침을 가하는 동시에 치료제를 처방한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외국작가의 소설이 아니라 우리시대 우리작가의 소설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 고급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시각과 가난하지만 뭉쳐사는 가족들에 대한 시각은 다르다. 사회의 가치는 부유함과 명예가 아니라 가족에 있음을 보여주는 의도적이 차별이다. 인간이란 뿌리치고 싶어도 어쩔 수 없는 가족에 얽혀있음을 말하는 소설이다. 그래서 이 소설을 결국 따뜻한 소설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까지 읽었던 '미미여사'의 소설 중 단연 최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