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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 (양장) -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강명순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파리의 어느 빈민가 생선가게에서 그르누이는 태어난다.
태어나자 마자 생선창자들 사이에 버려진 그는
스스로의 울음으로 자신의 존재를 사람들에게 알리고
그의 어머니는 아동학대의 죄목으로 처형을 당하게 된다.
자신의 의지였든 아니든 자신에게 해를 끼친 사람에게
죽음을 안기며 시작된 그의 인생.
유급 유모와 수도원과 다시 유급 유모의 손을 거친 어린시절.
사람들은 냄새가 없는 그를 멀리하고 학대하지만
그르누이는 매서운 겨울을 견디어내는 누에처럼 몸을 웅크리며 살아남는다.
자신이 가지지는 못했으나 향기에 대한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그는
향수 장인의 도제가 되어 향수제조의 방법들을 배우게 되고
그 배움의 결과는 상상을 초월하는 비극을 잉태하게 된다.
워낙에 유명한 책이었고 이미 영화로도 개봉했던 베스트 셀러.
내용의 끔찍함과는 전혀 다른 이쁜 책표지가 나의 주목을 끌었지만
어찌 된 것인지 결국 내가 구입하지 못했던 책인데
서울 국제도서전에 갔더닌 중고로 4000원. 바로 구입해 버렸다.
그리고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순식간에 읽어버렸다. 강한 흡입력을 가진 책이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은 향수의 세계를 끌어낸 작가의 참신한 아이디어.
수많은 공부의 흔적이 보이는 다양한 지식들의 향연과
그 무엇보다 독자들로 하여금 잠시도 눈을 떼기 힘들게 만들었던 이야기까지.
이 작가의 책이라고는 '좀머씨 이야기' 밖에 읽은 적이 없지만 그의 문체가 너무 마음에 든다.
결코 과장하거나 흥분하지 않은 채로 객관적인 서술로 이루어진 담담한 문체이지만
그 소박하고 담담한 문체로 이루어진 이야기의 내용은 상상을 초월하고 있다.
뒷 부분이 궁금해서 참을 수 없는 호기심을 유발하는 그의 스토리텔링은 뛰어나다는 말로 부족하다.
중간 중간 다소 난해한 이야기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쉽게 읽히는 책이다.
인간의 향기를 지니지 못한 한 인간이
인간의 향기를 찾아나선 기나긴 여정.
결국 자신의 만든 인간의 향기가 진정한 인간의 향기가 아님을 알고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 밖에 없었던 불쌍한 한 인간의 슬픈 이야기이다.
잔혹한 동화같은 이야기이고 지독한 살인만의 이야기이지만
그 속에 대한 인간성에 대한 탐구는 소설을 가벼운 이야기에 머물지 않게 한다.
그르누이가 평생 찾아 해메였던 인간의 향기는 인간의 따뜻한 본성을 나타내는 것 같다.
인간 세상에서 풍기는 냄새들을 지독한 악취로 느끼게 되는 것은
이미 우리 모두가 본래의 순박함과 따뜻함은 잃어버린 채
서로가 서로를 이기려고 경쟁하고 서로를 이용할 기회를 찾아 헤매고
그러면서 우리도 모르게 우리 몸속에 배이게 된 오염된 인간의 냄새이기 때문이다.
그르누이가 소녀에서 여인으로 넘어가는 시기의 여자들만 죽인 이유도
소녀에서 여인으로 넘어가는 그 순간이 인간의 순수한 본성이 최고로 달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그런 순수한 인간성들로 만들어 낸 긍극의 향수는 결국 모두를 아담과 이브의 시절로 돌려 보냈다.
물론 그 광란의 끝에 인간은 다시 스스로의 발목에 족쇄를 채우고 말았지만.
인간의 냄새를 가지지 않은 그르누이의 모습은 오늘날 흔히 말하는 '사이코 패스'를 닮아있다.
도덕적 개념이나 죄책감은 전혀 없이 인간을 하나의 도구로 생각하는 사이코 패스.
어쩌면 그들 또한 그르누이처럼 인간의 냄새를 지니지 못한 것은 아닐까?
그렇기에 그 자신을 인간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동물의 세계에서 새끼의 몸에서 인간의 냄새가 나면 스스로 물어 죽여버리는 것처럼
그들도 자신이 가지지 못한 냄샐르 지닌 인간을 물어 죽이는 것은 아닐까?
단순한 이야기로 읽어 넘기기에는 남는 게 많은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