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머 씨 이야기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유혜자 옮김, 장 자끄 상뻬 그림 / 열린책들 / 1999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아무도 모르는 좀머씨
좀머씨에 대해 아는 사람은 없다.
그의 과거, 현재는 물론이고 그의 친척에 대해서도, 심지어는 정확한 이름조차 모른다.
매일 매일 수십 Km를 걸어다니는 그를 마주치지 않는 사람은 없지만
그에게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마치 일종의 장식처럼 느껴지는 존재.
그가 어디로 걸어가고 있는 것인지, 왜 그렇게 걸어가는 것인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아니, 아무도 알려고 들지 않는다.  자신과 상관없는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것이다.
좀머씨 또한 누구의 관심도 원하지 않는다.
그저 그가 걸어가는 대로 그대로 내버려 두기만을 바랄 뿐.
폭풍우치는 날에 그에게 전하는 따뜻한 도움의 손길마저
'제발 날 내버려 두라'는 뚜렷한 말로 거절하고 세상과의 소통을 거부한다.
그저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을 걸어가는 것만 바랄 뿐.
그러나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혼자 빵을 허겁지겁 삼키며 토해내는 한숨에서
아무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는 그래서 세상과의 소통을 거부하는 그의 진한 아픔이 묻어난다.
그리고 그런 아픔은 한 소년의 삶을 구하게 된다. 그가 의도했던 아니었든....

작가 본인과 너무 닮은 좀머씨
<향수>라는 단 하나의 작품으로 세상의 모든 이들을 경악하게 하고 열광하게 만든 작가.
그러나 어떠한 문학상도 거부하고 세상과의 소통도 거부하며
'제발 나 좀 이대로 내버려 달라'고 외치는 듯 행동하는 작가의 모습과 좀머씨는 너무도 닮아있다.
'당신들이 상을 준다고 해도 나는 하나도 기쁘지 않소'
'나는 그저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쓴 뿐이요. 당신들이 그 글을 좋아하든 싫어하든 난 상관없소'
'당신들이 나를 둘러싸고 시끄럽게 소란을 피우는 것을 난 원하지 않소'
자신의 생각을 통해 세상과의 소통을 원하는 대부분의 다른 작가들과는 전혀 다른 방식의 작가.
자신의 생각을 세상에 주입시키려 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이 어떻냐고 하는 물음도 없는 작가.
글을 통해서만 말하고 대답을 신경쓰지 않는 그런 작가.
그러니 우리는 그런 작가를 그대로 내버려 두어야 하지 않을까?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이 그의 작품을 보다 많이 만날 수 있는 방법이 되지 않을까?
작가의 작품이 좋다고 해서 꼭 그 작가에 대해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
그냥 그를 그대로 내버려 두어서 그의 글을 만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지 않은가?
어쩌면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서 세상에 그런 자신의 심정을 토로한 것은 아닐까?

소년의 눈을 통해 본 세상...그리고 소년의 성장통
주인공 또한 다른 사람들과 같이 좀머씨에 대해 아는 것이 없고 알려하지도 않는다.
다만 그는 좀머씨의 숨기고 싶은 아픔을 본의 아니게 옅보게 되었고
아무도 알지 못하는 좀머씨의 마지막 모습을 역시 본의 아니게 옅보게 된 것이 다를 뿐이다.
그러나 그 다른 모습이 그의 삶을 구했고 그 보답으로 그는 좀머씨의 마지막을 숨겼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좀머씨의 삶에 대해 쉽게 잊어버리게 되고 좀머씨를 기억하지 않겠지만
주인공만은, 세상의 딱 한사람 주인공만은 좀머씨를 기억하게 되었을 것이다.
작은 아픔이 밴 첫사랑과 세상에 대한 염증으로 생긴 방황을 딛고 일어설 기회는 좀머씨가 준 것이니까.
소년의 아픈 성장통 속에 좀머씨가 있었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은 물론이고 좀머씨 자신도 모르겠지만
세상은 결국 혼자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기에 그의 삶이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 것이다.
소년의 성장통 또한 혼자서 견디고 이겨낸 것이 아니라 타인의 도움을 통해 이겨낸 것이다.

작가는 소란스럽고 어지러운 세상의 관심이 꼭 좋은 것이 아님을 말하고 있다.
소통의 단절처럼 보이는 좀머씨의 모습이 오히려 새로운 소통의 방법임을 말하고 있다.
세상엔 서로 대화를 통한 소통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방송'처럼 일방적인 방향으로 이루어지는 소통 또한 있음을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자신은 그런 방식의 소통을 원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이 작가 참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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