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 더 풀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억관 옮김 / 은행나무 / 2005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이라부 종합병원' 지하에 있는 신경과.
40대가 되어서도 엄마 품을 벗어나지 못한 하마같은 외양의 괴짜의사 이라부가 있다.
허벅지 안쪽에 'watch it'이라는 글자를 새기고 주사를 놓을 때 마다 가슴과 허벅지를 노출하는 마유미짱과 함께.
복잡한 현대 사회의 수많은 제약들에 얽매여 살아가다 치져버린 사람들이
운명에 이끌리듯 그곳에 찾아가고 엽기의사 이라부의 기상천외한 치료가 시작된다.

이번에도 역시 5명의 환자가 들어온다.
'자의식 과잉상태'(일명 공주병)에 빠진 별볼일 없는 도우미 아가씨.
아내의 외도를 보고도 한마디 말도 못하고 이혼했던 충격으로 음경경직증이 생긴 셀러리맨.
업무에 대한 스트레스로 인한 심인성 내과질환에 걸린 잡지사 직원.
휴대폰 중독에 빠져있지만 자신이 중독에 빠진 줄 모르는 철부지 고등학생.
그리고 자신의 집에 불이 날 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품고 '확인행동 과잉'에 빠진 논픽션 작가까지.

이라부의 치료는 이번에도 상식을 뛰어 넘어 버린다.
공주병 도우미를 선물로 유혹하고 도우미와 함께 탤런트 선발대회에 참가하고
음경경직증에 걸린 샐러리맨을 위해 이혼한 전처의 직장까지 찾아가고
심인성 내과질환에 빠진 잡지사 직원과 함께 한 밤중에 수영장에 무단침입을 하고
휴대폰 중독에 빠진 고등학생에게 귀찮을 정도로 문자를 보내는가 하면
논픽션 작가를 위해 이웃병원 담장 너머로 돌맹이를 던져 버리는 의사.
도저히 의사라는 직업이 가지는 윤리의식이나 지적이미지와는 담을 쌓아버린 그의 행동들.
그러나 그런 말도 안되는 그의 행동을 바라보고 함께 하는 동안에
환자들은 사회의 일원으로 지켜야 할 관습과 수많은 제한 속에서 억눌렸던 자신의 무의식을 발견하고
이미 알고 있었지만 절대로 남에게 내보이려 하지 않았던 자신의 마음속 상처를 치유하게 된다.
그러나 그 모든 치유의 과정은 스스로의 힘으로 이루어지게 되고 
이라부는 그저 그 과정에서 이해할 수 없는 인간으로 자리매김할 뿐이다.
그러나 결국 그 모든 것이 이라부의 의도였다고 생각한다면 그는 정말 '명의'임에 틀림없다.

현대 사회에서 국가의 일원으로,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무척이나 힘든 일이다.
태초의 인간은 분명 혼자였을 것이다. 인간이 무리를 지어 생활을 하면서 수많은 문제들이 발생한다.
그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인간은 수많은 제약과 규제를 만들고 스스로를 그 틀에 맞추게 된다.
그러나 그런 과정에서 인간은 자기 자신의 많은 욕구들을 억누를 수 밖에 없고 
그 억눌린 욕구들이 조금씩 삐져나오는 과정에서 우리는 '신경과'를 찾게 된다.
그러나 현대의 '신경과'라는 곳은 너무도 틀에 박힌 이론과 매뉴얼에 따른 치료만 할 뿐
환자가 지닌 가장 깊숙한 내면의 상처를 찾아내고 치유하는 데 한계가 있다.
작가가 그리고 있는 '이라부'라는 인물은 신경과의 이론으로 본다면 있을 수 없는 인간이고
실제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도 존재할 수 없는 인물이다.
작가는 그런 이라부를 통해 태초로부터 억압되어 온 인간의 수많은 욕구들을 터뜨림으로써
개인 혹은 현대 사회가 가지고 있는 수많은 스트레스의 해소를 그리고 있는 것 같다.
그렇기에 이라부의 행동들은 말이 안되고 행동 하나 하나가 대 폭소를 일으키지만
그런 상식의 파괴를 통해, 그리고 그의 행동을 보고 터뜨리는 나의 폭소로 인해
나 역시 내면의 감추었던 모습들이 치유되는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다면 이 책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며칠 전에 읽은 '공중그네'에서 너무나 많이 웃었기에 이번엔 웃음의 강도가 좀 약했다.
그만큼 이라부의 행동양식에 내가 익숙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책이 말하고자 하는 의미나 책의 가치를 논하기 전에 이 책은 재미라는 미덕이 가득 차 있다.
이라부의 치유과정을 따라가며 신나게 웃다보면 어느새 시원함을 느끼게 되는 정신건강에 좋은 책이다.
누구에게나 자신있게 일독을 권할 수 있는 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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