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우영 일지매 전8권 세트 (MBC ‘돌아온 일지매’ 드라마 원작)
고우영 지음 / 애니북스 / 2004년 7월
평점 :
절판


시대가 만든 서민들의 영웅

조선의 역사를 통틀어서 가장 명분이 없던 반정인 '인조반정'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치졸한 역모를 숨기기 위해
'친명배청'이라는 껍데기를 뒤집어 쓴 그들 자신의 모순에 의해
나날이 대륙의 강자로 발전해가는 '청'에 대해 적대적일 수 밖에 없던 그들.
그렇듯 나라의 운명을 위기속에 몰아넣으면서도 자신들의 사욕에 바찐 관리들.
자신의 기득권을 위해 상대편은 무조건 제거하며 전쟁 아닌 전쟁에 빠진 그들.

민초의 삶을 보호하고 살펴야 하는 그들의 직무유기와 
불의게 정당성을 부여하는 만연한 비리의 덩어리는 서민들의 삶을 벼랑 끝으로 몰고간다.
견디다 못한 서민들은 도적으로 변하고 그로 인해 민초들의 삶은 더욱 피폐해 진다.
아무런 희망도 가질 수 없는 절망과 좌절의 시대속에 힘겹게 살아가는 민초들.
그들의 염원과 시대의 요구는 우리에게 한 사람의 영웅을 탄생하게 했으니
그의 이름이 바로 '일지매'. 


버림받은 삶을 딛고 영웅으로 다시 태어나다 !!!

일지매의 탄생은 축복하고는 거기가 먼 이야기이다.
조선의 양반이 한 순간의 취기를 이기지 못해 노비를 범하게 되고
자신의 출세에 해가 될 노비의 아이를 청계천에 버린다.
태어나자 마자 죽음의 위기에 처한 아이.
그러나 하늘의 보살핌인지 걸인 걸치와 열공스님에게 발견되어 죽음을 면한다.
아이의 생존을 알게 된 생부에 의해 다시 한번 죽음의 위기에 몰려 어쩔 수 없이 청나라로 가게된다.
양부모의 지극한 정성으로 미모와 무술실력을 겸비한 청년으로 성장한 일지매는
자신을 이용해 조선의 후방을 교란하려는 청나라 첩자의 괴임에 넘어가
생부의 나라 조선으로 돌아오지만 생부는 끝내 그를 외면한다.
저주받은 삶에 절망속에 빠진 그에게 다가온 사랑. 그리고 처절한 이별.
광기에 휩싸인 그를 다시 태어나게 만드는 열공스님의 큰 가르침과
다시 찾아온 사랑 월희와 걸치의 헌신적인 도움으로 그는 민중의 영웅으로 다시 태어난다.

대부분의 영웅담이 그렇듯 일지매의 일생도 결코 평탄하지 않다.
그 누구보다 비참한 탄생과 좌절과 분노와 광기.
자칫 폐인의 길을 걷게 될 그의 인생엔 누구보다 뛰어난 조력자들이 나타나고
결국 그들의 헌신적 도움으로 시대의 영웅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고우영 화백이 처음부터 끝까지 만들어 낸 이야기인 일지매 또한
이런 영웅들의 전형적인 이야기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닮은 듯 다른 드라마와 원작 만화

SBS에서 일지매를 드라마로 만들었을 때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물론 드라마 자체는 꼬박꼬박 챙겨보는 편이었지만 원작에 대한 궁금증은 없었다.
처음부터 원작과는 다른 전혀 새로운 이야기라고 했기 때문에 원작도 궁금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 MBC에서는 '최대한' 원작과 가깝게 정통사극으로 만든다고 하니
자연스럽게 원작에 대한 관심도 생겨나게 되었고 결국 8권의 이야기를 다 읽게 되었다.

원작이 있는 드라마들은 결국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원작을 그대로 따라가자니 원작을 읽은 시청자들이 불평을 할 것이 걱정이고
그렇다고 원작과 완전히 다르게 가자니 그 역시 원작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결국 그 둘 사이의 적절한 비중을 맞추는 것이 제작진의 가장 큰 딜레마라고 할 수 있다.
그런면에서 보았을 때 지금까지 방영된 MBC의 드라마는 적절한 비중을 지켰다고 할 수 있다.

드라마의 등장인물과 원작의 등장인물을 비교해 보는 재미는 빠질 수 없는 재미 중에 하나이다.
지금까지 방영된 부분을 본다면 두 주인공인 일지매와 월희는 그럭저럭 무난하다 할 수 있다.
드라마의 일지매가 원작보다 조금 남성적인 매력이 더 있는 것 같고
드라마의 월희가 원작의 월희보다 조금 무거운 분위기를 보여주는 부분이 조금 아쉽기는 하다.
또 다른 주인공인 구자명과 백매의 모습은 조금 아쉽다.
구자명은 좀 더 덩치가 있는 배우였으면 좋았을 것 같고 백매는 좀 더 차가운 이미지가 있었으면 좋을 듯.
이렇게 드라마의 인물들과 원작의 인물들을 비교하다보면 드라마도 원작도 보다 재미있게 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논란의 중심이 되고 있는 '책녀'의 등장은 긍정적으로 보인다.


색이 바라지 않는 거장의 숨결

이 책은 70년대 암울한 시대에 쓰여진 책이다.
지금처럼 자유로운 표현이라는 것이 전혀 불가능했던 통제와 억압의 시대.
그래서 책 중간중간에 나오는 시대에 대한 유감과 날카로운 풍자는 그 시대 저항정신의 발로이다.
내가 아주 어릴 때 나보다 더 큰 형들이 만화방에서 이 책을 읽으며 통쾌해 하던 기억이 남아있다.
시대가 흘러 지금은 그저 웃어 넘길 수 있는 지나간 과거로 남았지만 
유쾌할 수 없었던 그 시절의 기억은 거장의 손길에서 고스란히 남아있다.

지금은 아이들의 유희가 되어 버린 '쥐잡기'
오래된 신문지의 빛바랜 사건기사가 되어버린 '연탄가스'
이제는 이름조차 알 수 없는 그 시절 유명한 가수들의 유행가 한 소절.
지금 보기엔 너무 우스운 그 시절의 조금 황당한 외래어 표기법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이제는 잊혀지거나 사라진 그 시절의 소소한 모습들이 그대로 남아 숨쉬고 있다.
내가 어릴 적에는 나의 일상의 한 부분이었던 이야기들을 다시 읽으며
그 시절의 아련한 기억속으로 떠나는 공짜 시간여행의 재미 또한 이 책의 부록이다.

All 칼라로 화려한 색감을 자랑하는 지금의 만화에 비하면
흑백의 가는 펜선으로 그려진 투박한 그림의 만화는 초라하기 그리 없는 그림들이다.
그러나 그 초라한 그림들에서 느껴지는 정겨움,
지금의 젊은 작가들이 감히 흉내낼 수 없는 거장의 날카로운 풍자와 재치있는 유머는
시간조차 결코 바래개 할 수 없는 거장의 숨결을 그대로 전해준다.


지금 다시 일지매를 그리워 한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끝없이 반복된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이 변하고 그들이 사용하는 문물들이 변하고 
그들이 살아가는 가치관이 변하고 그들의 모습이 변한다 하더라도
시간이 흘러도 반복되는 역사의 수레바퀴는 어쩔 수 없는 반복을 하고 있다.

그 반복속에 역사의 수많은 시련을 견뎌내고 당당히 우뚝 선 자랑스런 나의 나라 대한민국.
지금 다시 우리는 역사의 커다란 시련앞에 멈춰서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국민들을 이끌고 이 시련의 강을 건너야 할 위정자들은 서로의 이익에만 급급하고
'민생'이라는 것은 그들의 선거전략으로 밖에 생각하지도 않는 상황이다.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지하철역에서 노숙으로 밤을 지새고 하루에도 몇 명씩 지하철에 뛰어드는데
여의도 한 복판 섬처럼 떠? 한 것인지...

일지매가 나타났던 그 시대나 지금의 시대나 결코 다르지 않다.
오히려 무서우리 만큼 너무도 닮은 모습에 나는 다시 일지매가 그리워진다.
사람들이 영화속 슈퍼영웅에 열광하고 역사속 영웅들의 이야기를 되뇌이는 건
갈수록 힘들고 지쳐가는 현실속에서 우리 또한 그런 영웅들의 출현을 기다리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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