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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부패사건에 휘말리다 - 조말생 뇌물사건의 재구성
서정민 지음 / 살림 / 2008년 3월
평점 :
절판
모두가 성군이라 칭하는 세종이 연루된 부패사건의 전말.
사극이 뜨면 주인공에 대한 다양한 역사서가 나오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 책 또한 한창 방영중인 세종에 대한 이야기를 썼다는 점에서 그런 분위기에 편승했다는 의혹을
벗어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을 선택할 때 고민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렇듯 시류에 편승해서 나오는 역사서들 치고 제대로 된 논쟁을 벌이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은 세종시대 조말생 사건을 통해서 그 시대의 법치와 오늘날의 법치를 비교함으로써
그런 우려를 불식시키는 참신한 시각을 보여주고 있다.
조말생은 세종의 부왕인 태종때부터 막대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던 인물이고
개인적으로 아버지 태종을 무서워했다고 생각하는(나 자신의 생각임) 세종으로써는
계속적으로 대우를 해야만 하는 인물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인물이 사형의 형량을 10배 가까이 능가하는 부패사건에 휘말리자
세종은 강력한 의지로 철저한 수사를 지휘하지만 그에 대한 처벌은 이해할 수 없게한다.
대간들의 계속되는 사형 주장에도 굽히지 않고 정치적 부담을 고려하면서까지
그의 목숨을 살려주었을 뿐 아니라 시간이 흐른 후 사면 -> 복권 -> 복직의 무리수를 둔다.
성군이라 일컬어지는 세종은 왜 이런 무리수를 두었던가?
작가는 그 이유를 조말생의 능력에 두고 있다.
군사적 지식과 외교적 능력, 그리고 행정적인 실무능력짜지...
철저한 신분제 사회에서 극소수의 양반들, 그중에서도 문제가 없는 양반들을 대상으로 하는
너무나도 한정된 조선의 인력 Pool에서 '조말생'이라는 인물은 개인적 부패를 이유로
버리기에는 아까운 능력을 가지고 있었고 세종은 '조말생'을 살린 것이 아니라 그의 '능력'을 살린
것이라고 이야기 한다. 그것이 세종의 실리였고 그러면서도 그의 무죄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음으로써
수사기관에서 수사한 내용을 인정하는 법치주의와의 조화를 이루었다고 한다.
그러나 난 이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
물론 한정된 인력 Pool, 돋보이는 능력, 그 시대의 국제정세를 보았을 때
조말생이라는 인물의 능력이 아까울 수 밖에 없고 세종의 선택이 옳았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사회가 돌아가기 위해서는 원칙이라는 것이 존재하고
그런 원칙이 지켜지지 않으면 그 사회는 언젠가 그 댓가를 치르게 된다.
그렇기에 정당한 수사와 정당한 재판을 거친 대간들의 요구는 마땅히 받아 들여져야만 했다.
세종 스스로 그 원칙을 버리고 대간들의 정당한 요구를 거절한 것은 분명한 잘못이다.
그 잘못을 결과를 보고 옳았다고 주장하는 것은 결국 '결과론'에 지나지 않는다.
만약 조말생이 세종의 기대에 부응하는 능력을 보이지 못했다면 과연 이런 주장을 할 수 있을까?
세종의 잘못은 분명한 잘못이다.
세종이 성군이라는 이유로 그 잘못을 합리화 하는 것은 더 큰 잘못이다.
그래서 이 책의 주장은 '동의할 수 없는 이야기'이다.
이 책의 장점은 조선의 법치를 파헤쳤다는 것에 있다.
사극의 잘못된 묘사로 인해 조선은 법 보다 양반 또는 왕의 힘으로 움직인다는 인식이 퍼져있다.
그러나 조선의 국왕은 중국의 황제들처럼 막강한 권력을 휘두른것이 아니다.
사대부가 다스리는 조선이라는 나라에서 '일등 사대부'의 한 사람 이었을 뿐이다.
그래서 언제나 사대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했다.
그렇치 않고 혼자만의 독단으로 정치를 하면 '반정'의 칼날을 피할 수 없었다.
중국이 '황제의 나라'였다면 조선은 '사대부의 나라'였던 것이다.
그래서 드라마가 묘사하는 것과는 다르게 조선은 선진적인 법제도를 가지고 있었고
그 법을 바탕으로 하는 치열한 논쟁이 있었던 사회이다.
왜곡되고 숨겨졌던 조선의 법치를 일반인들에게 이야기 한다는 점에서 이 책은 좋은 시도 이다.
그러나 역사책을 기대하고 읽은 나에게 이 책은 역사 이외의 이야기가 너무 많다.
작가가 법조계 인물이라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사서나 역사의 인용보다
법전이나 법학의 이야기가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서 교양역사서로 보기에 아쉬운이 있다.
법조인 특유의 도덕적이고 딱딱한 문체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역사서를 읽는다는 느낌 보다는 논문을 읽는 느낌이 들어서 아쉬웠다.
좋은 시도를 가진 책이지만 역사서로는 맞지 않는다는 느낌이다.
또한 그 결론마저 나 자신이 동의할 수 없는 점이 아쉽다.
왠지 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고위 공직자의 도덕성 논란에 대한
일종의 변명처럼 느껴졌다면 너무 과한 비약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