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내가 죽은 집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영미 옮김 / 창해 / 200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봉인된 그녀의 기억이 깨어나면... 

7년전 헤어진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다.
자신의 어린 시절 기억을 찾기 위해 아버지가 혼자 다니던 의문의 집으로 같이 가자고 한다.
옛사랑에 대한 미련인지 그녀의 봉인된 기억에 대한 호기심인지...
무엇때문인지 알 수 없이 그녀와의 짧은 1박 2일의 여행이 시작되었다.
인적이 없는 숲 속에 오래전 버려진 것 처럼 남아있는 낡은 집.
그 곳에 시간이 멈춰버린 듯이 남아있는 한 권의 일기와 편지들.
단편적인 단서들을 쫓아 그녀의 기억으로 다가가는 여행의 끝에 기다리는 것은.... 

다시 만난 히가시노 게이고... 그의 여전한 매력. 

올 한 해 동안 나 자신도 놀랄 정도로 일본소설을 많이 읽었다.
민족적 감정선이 아직도 날카롭게 살아있기 때문에 일본의 문화를 즐기지 않는데
이제 나의 선호작가 목록에도 여러 명의 일본작가가 자리를 잡았다.
그 첫번째 계기가 되었던 작가가 바로 '히가시노 게이고'이다.
처음 그를 만난 <용의자 X의 헌신>은 나에게는 일종의 충격이었고
그의 책속에 빠지게 만들어 버린 마법의 주문 같은 것이었다.
너무 빠지는 것이 두려워서 의식적으로 그의 작품을 멀리하다가
이 작품을 통해서 다시 그를 만났다. 그리고 여전히 그의 소설은 매력적이다. 

추리소설?  

이런 소설도 추리소설이라고 할 수 있을까?
물론 범죄가 존재하고 범인과 피해자가 있고 사건을 밝히는 과정이 있지만
형사도 없고 지능적인 범죄자도 없고 복잡한 등장인물도 없다.
일종의 단막극처럼 1박 2일이라는 시간동안 한 여자의 과거로 떠나는 여행이다.
봉인된 그녀의 기억속에 여전히 살아있는 슬픈 가족사와 사건.
히가시노 게이고 특유의 슬픈 추리소설이 또 하나 탄생한 것인가?
책을 놓는 순간 그녀가 겪었을 고통, 그녀의 가족들에게 다가온 아픔에
한동안 나 역시 가슴이 아파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사소한 모든 것이 열쇠가 된다. 

이 소설의 매력은 작품 전반에 걸쳐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복선에 있다.
전혀 주목을 끌지 않는 작은 문장 하나가 나중에 커다란 실마리가 된다.
완전히 박살나 버린 도자기의 조각 조각들을 주워 모아서 원래대로 붙이는 느낌.
단편적으로 끊어져 있는 그녀의 기억과 일기와 편지의 단편적인 단서들.
일견 아무런 관련도 없을 것 같던 단서들이 모여서 하나의 진실을 드러내고 있다.
작가의 특기이면서 정통 추리소설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구성이다. 

상술이 느껴지는 씁쓸함. 

이 소설은 이미 14년 전에 발표된 소설이다.
<용의자 X의 헌신>과 <방과 후>, 최근에 영화화가 발표된 <백야행>까지...
가히 '게이고 바람'이라고 할 정도로 그의 작품이 인기를 끌면서 출판사의 상술이 느껴져 씁쓸하다.
이미 14년 전에 발표된 소설이다 보니 요즘과 맞지 않는 부분도 느껴지고
이 작품 이후에 발표된 더 재미있는 작품들도 있었기에 조금은 김이 새는 느낌이고
오래된 책을 신간으로 읽는 느낌이 그리 썩 만족스럽지는 못하다.
물론 그의 작품은 언제나 평균 이상을 하기 때문에 언제나 선택에 망설임은 없지만... 

'내가 죽은 집'의 의미는.... 

정확한 병명은 모르겠지만 일정 부분에 대해 의식적으로 기억을 못하는 병이 있다고 들었다.
괴롭거나 지우고 싶은 기억을 실제로 기억하지 못하는 병.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는 사람들도 자기가 겪은 사고의 순간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한다.
꼭 그런 사건이나 사고가 아니라도 누구나 숨기고 의식적으로 거부하는 기억은 하나씩 있을 것이다.
작가는 이 소설속 주인공을 통해서 그 아픈 기억들에 대해서 당당히 맞서라고 얘기하고 있다.
묻어두고 피한다고 해서 그 기억들은 결코 사라지거나 없었던 일이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극적인 느낌의 제목인 '엣날에 내가 죽은 집'은 그래서 결코 자극적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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