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작가를 안 것은 [용의자 X의 헌신]이라는 작품을 통해서다. 분명 추리소설임에도 불구하고 눈물이 나게 만드는 이야기와 허를 찌르는 반전. 민족적 감정으로 일본 소설마저 거부하던 나의 편견을 멋지게 깨버렸던 작품이다. 그 작품에서 사건을 파헤쳐 나가고 마지막 반전을 이끌어내는 천재 물리학자 유가와. 탐정이나 경찰이 아닌 물리학자의 추리로 사건의 전말이 드러날 때 유가와라는 인물에 호감이 갔다. 그런 유가와를 전면에 내세운 작품이라고 해서 선택한 작품이 [탐정 갈릴레오]이다. 1. 타오르다 - 도시의 하늘을 가로지르는 가느다란 빨간실의 정체와 도깨비 불과 함께 일어난 살인사건의 전말은? 2. 옮겨붙다 - 도심의 더러운 연못에서 중학생들에 의해 발견된 알루미늄 데스마스크 드러난 살인 사건의 전말은? 3. 썩다 - 정황상 사고사가 분명한 사건의 피해자의 가슴에 나타난 썩어간 상처의 진실과 사건의 전말은? 4. 폭발하다 - 평화로운 휴양지 해변에서 일어난 의문의 폭발사건의 진실은? 5. 이탈하다 - 살인사건의 용의자가 주장하는 알리바이를 증명하는 그림. 유체이탈을 주장하는 그림의 진실은? 총 5개의 사건을 유가와의 논리적인 추론과 형사 구사나기의 추적으로 해결해 가는 이야기이다. 문득 보면 초자연적인 현상처럼 보이는 현상들이 유가와의 논리적인 추론과 물리학적인 실험으로 증명되는 과정이 생소한 물리학적 지식에 대한 거부감에도 불구하고 지적유희의 즐거움을 만끽하게 해준다. 어려운 물리학적인 내용들은 일반독자가 알기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준다. 공학부 출신의 특이한 이력을 지닌 작가의 전문적인 지식이 빛을 발하는 작품이다. 모든 사건들이 그렇듯 각각의 사건에는 인간의 삐뚤어진 심성이 들어있다.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파렴치함, 돈에 대한 삐뚤어진 욕망, 물질에 대한 무분별한 욕망... 작가는 각각의 사건들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이런 인간의 잘못된 행동들에 대한 비판을 한다. 그리고 그런 행동들이 발생하고 묵인되는 사회에 대한 비판도 한다. 그런 인간의 잘못에 대한 천벌이라는 의미로 초자연적인 현상을 끌어들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다섯개의 작품들을 보면 작가의 이후 작품들에 나왔던 기법이나 트릭들이 군데군데 보인다. 날짜를 바꾸는 트릭이나 밀실살인의 트릭 등등. 만약 이 책을 먼저 읽었다면 내가 재미있게 읽었던 그의 작품들의 신선함이 울었을지도 모르겠다. 하기야... [용의자 X의 헌신]이 이 작품의 여섯번째 이야기였다고 하니... 이 작품은 말 그대로 '엔터테인먼트'이다. 읽으면서 즐길 수 있는 작품이다. 작품의 의미나 문체의 정결함 같은 것은 잠시 접어두고 작가가 그리는 지적유희에 흠뻑 빠지면 된다. 더위가 물러가고 또 다시 책을 읽기 좋은 계절이 돌아오는 시점에 가는 여름의 아쉬움을 달래줄 만한 읽을거리로 추천할 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