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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개 - 이외수 오감소설 '야성'편
이외수 지음 / 해냄 / 2008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절대 고독... 지독한 자유... 끔찍한 배고픔.... 그리고 예술
카페 이벤트로 [하악하악]이 당첨되서 책을 읽다가 문득 이외수의 다른 작품이 보고 싶었다.
대학교 때 누나의 권유로 읽었던 [벽오금학도]가 내가 읽은 그의 유일한 작품이었는데
그 때의 기억도 그 때의 느낌도 살아나지 않아 그의 초기작을 찾다가 [들개]를 만났다.
곧 허물어진데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폐허의 건물에서 세상에서 도망쳐 살고 있는 나.
어느날 우연히 나 만큼 문명에 회의를 느끼는 그를 만나게 되고 그와 나의 동거가 시작된다.
처음엔 나만의 공간에 침입한 불쾌한 침입자 정도였지만 그의 내면과 그의 그림을 보는 동안
서서히 그가 그리는 들개그림은 나에게 마지막 희망이 되어버리고
그 그림을 위해 모든 것을 다하며 그와의 기이한 동거를 계속하게 되는데...
아무런 희망이라고는 없는 상황에 놓인 나에게 삶의 의미는 무엇이며
그가 말하는 무의미함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이며 그가 추구하는 예술이란 무엇인가?
극과극... 인간 이외수.
이외수에 대한 평가는 극과극 이다.
어떤 이는 작가가 아니라 방송인이라고 최악의 비난을 하고
다른 이는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을 알고있는 언어의 마술사라고 한다.
나는 어떤 쪽인가? 글쎄... 그래도 긍적적인 편이다.
내가 읽은 2개의 작품에서도 극과극의 작품세계가 나타난다.
[하악하악]에서는 시종일관 입가에 미소가 사라지지 않을 정도의 발랄함과 위트가 넘친다.
그러나 [들개]에서는 시종일관 찡그린 표정을 펼 수 없는 염세주의로 가득차다.
누군가의 말처럼 과연 같은 작가의 작품인가 의문이 갈 정도이다.
그러나 두 작품 모두에 흐르는 한가지 공통점은 있었으니 바로 '문명에 대한 짜증스러움'이다.
다만 [들개]에서는 그 짜증스러움에 대한 전면적인 거부가 극단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면
[하악하악]에서는 적당히 문명을 이용하면서 살짜기 비꼬는 위트와 유머가 있다는 것이다.
과연 그 차이는 무엇인가?
혹자는 작가가 배고픔의 시간을 잊어버리고 변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나는 그 차이의 이유를 '나이듬'이라고 생각한다.
35세의 이외수 vs 62세의 이외수
누구나 한번쯤은 경험했을 가치관의 변화. 그 지독한 시간의 힘이 그를 바꾸었다.
35세의 이외수는 세상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차 있으나 자신이 그 불만을 해소할 능력이 없었기에
결국 작품 전반에 걸쳐 불만을 내뱉는 것으로 대신했다면
이제 62세가 된 이외수는 세상에 대한 불만을 해소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을 뿐 아니라
그 불만들을 좀 더 유연하게 바라보고 대처할 수 있었기에 '비꼬는' 작품이 나온 것이라 생각한다.
딱히 어느 작품이 좋고 어느 작품이 의미있다기 보다는
각각의 작품이 각각의 의미와 가치를 가진다고 생각한다.
35세의 이외수는 이랬고 62세의 이외수는 이렇다고...
나 또한 지금 읽는 [들개]의 느낌이 10년 후 다시 읽을 때 느낌과 전혀 다를 것이라는 걸 알고 있다.
예술에 대한 치열한 투쟁, 자유로움에 대한 지독한 목마름, 그리고 절대고독.
그 속에 우리 삶의 의미를 조금은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좋은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