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시황 프로젝트 - 제1회 대한민국 뉴웨이브 문학상 수상작
유광수 지음 / 김영사 / 2008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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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 낮 광화문 한 복판에서 사람의 목이 날아가는 끔찍한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범인은 자신의 모습을 숨기기는 커녕 비디오로 찍어서 방송국에 보내 자신의 범행을 알린다.
사건 해결에 나선 종로경찰서 강력 8반.
강형사는 범인으로 지목된 서준필 교수의 연구실에서 일본풍의 춘화첩을 한권 발견하게 되고
자신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그 춘화첩의 비밀로 인해
한.중.일 삼국의 비밀조직이 치열하ㅔ싸우는 전쟁의 한복판에 놓이게 된다.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하나씩 드러나는 '진시황 프로젝트'의 실체.
그리고 춘화첩을 둘러싼 한중일 삼국의 치열한 대결. 

소설은 크게 3개의 이야기로 나누어 질 수 있다.
광화문 살인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형사들의 활약을 바탕으로 하는 추리부분.
춘화첨의 비밀에서 드러나는 일제의 만행과 진시황 프로젝트로 대변되는 중국의 의식변화를 축으로 하는 역사의식.
강형사와 방형사, 그리고 채소연을 둘러싼 삼각관계를 축으로 하는 로맨스 부분.
3개의 이야기가 서로 어울리며 하나의 결말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어느 한 축으로 치우치치 않으면서 균형감 있게 이야기를 끌어가는 능력이 뛰어나다.
소설을 쓰기 위해 하루에 한편씩 영화를 본다는 작가의 이야기 처럼
이 작품은 한편의 영화 같은 이야기 구성과 빠른 전개가 긴박감을 끝까지 유지시킨다. 

현재 우리나라의 소설은 독자들과의 소통에 문제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일본 소설처럼 독특한 상상과 아기자기한 심리묘사, 미소짓게하는 유머가 있는 것도 아니고
다른 외국 소설들 처럼 환성적인 세계관이나 기가막힌 추리가 있는 것도 아니다.
전공하지 않는 내가 보기엔 별로인데 자기들의 세계에서는 문학적 감성이 뛰어나다고 하고
문체가 유려하고 인간의 심성을 그린다고 하면서 스스로가 일종의 벽을 쌓는 느낌이다.
젊은 작가들의 기발한 작품들이 나오면 독자들은 열광으로 보답하지만
그들의 세계에서는 설익은 어린 것들의 치기어린 작품으로 치부해 버리기 일쑤다.
물론 문학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사회 전체의 문제이긴 하나 그 정도가 특히 심한 곳이 문학이라는 느낌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뉴에이브 문학상'의 제정은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 한국의 작가들도 힘들게 무거운 권위주의의 껍데기를 스스로 버리고
독자들과 함께 그들이 생각하는 진흙탕 속에서 구를 용기가 필요하다. 그 시작이 이 상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제 1회 수상작인 이 작품은 물론 아쉬움이 없는 건 아니지만 나름대로 그 의의에 충실했다고 생각한다. 

책이 중간이 넘어갈 때 까지 '진시황 프로젝트'라는 것과 '춘화첩'을 둘러싼
한중일 삼국의 대결이 치열하게 그려지는데 결국은 너무 허무하게 끝나버린다.
특히 뭔가 대단한 일을 볼일 것 같던 일본의 공안 44 수장은 어이없이 사라진다.
서교수의 정체성도 문제이다. 사기꾼인지 지정한 스승인지 종잡을 수가 없다.
소설의 반전이 너무 질질 끄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다.
한번의 반전으로 끝내도 되었을 것을 두번이나 만들어 버렸다.
두번의 반전을 한번으로 묶을 수는 없었는지 하는 아쉬움이 든다.
의도였는지 모르겠지만 '송곳'의 정체를 너무 쉽게 내가 예상해 버렸다는 것도 아쉽다.
마지막의 작은 트릭이 있었지만 그 정도는 눈치 빠른 독자라면 눈치채지 않았을까?
강형사를 구하는 것이 매번 방형사라는 것도 아쉽다.
물론 그 때마다 타당한 이유가 있었다고 하지만
강형사는 너무 쉽게 위험에 빠지고 방형사는 너무 쉽게 강형사를 찾는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용두사미가 되어버린 느낌이다.
소설의 후반부에 작가가 지쳤는지
아니면 그대로 다루기엔 감당이 안되는 그 무엇이 있었는지 알수는 없지만
마지막에 가서 힘이 떨어지고 김이 새 버린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높은 점수를 받아야 한다.
서툴고 아쉽다고는 하지만 그디어 한국의 문학이 독자에게 말을 걸어오고 있다.
이 작품이 그 첫 시도였고 어느 정도 성공했기 때문이다.
나 역시 5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을 너무도 쉽게 읽어버렸다.
작가의 스토리텔링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단 한 순간도 지루함을 느끼지 못했으니 아쉬워도 즐거웠다.
이런 시도들이 점점 많아지면 언제가 독자와의 벽이 허물어지지 않을까 한다.
오래간만에 읽은 한국 소설에서 기대하지 않은 즐거움을 얻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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