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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황하는 칼날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선희 옮김 / 바움 / 2008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용의자 X의 헌신], [붉은 손가락] 단 2편의 소설로 나의 호감작가 목록의 상단을 차지해 버린 히가시노 게이고.
그의 신작이 나왔다는 소식에 바로 주문했으나 그간에 쌓아 둔 책이 많아서 이제서야 읽었다.
처음 책을 받아든 느낌은 묵직. 말 그대로 묵직했다. 무려 530 페이지가 넘는 분량의 압박.
책의 크기가 작은 편이라 해도 그 두께의 압박은 무시하지 못할 정도였다.
그러나 처음 책을 편 순간부터 책을 놓는 이 순간까지 한 순간도 지루함이 없었다.
책을 다 읽고 난 지금의 심정은 그 두께마저 아쉼다는 느낌이 들 정도 이다.
히가시노 게이고 특유의 스토리텔링 능력이 독자들은 한 순간도 그의 이야기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게 만든다.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는 뛰어난 작가이다.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하나뿐인 딸과 살아가고 있는 나가미네.
어느날 불꽃놀이를 갔던 딸은 돌아오지 않고 며칠 후 살해된 시체로 강물에 떠오른다.
딸의 죽음에 슬퍼하던 그에게 전해진 한 통의 음성 메시지.
그의 딸을 죽인 범인은 2명의 미성년자이고 그 중 한명의 집의 주소가 그에게 전해진다.
긴가민가 하는 마음으로 찾아간 그 집에서 충격적인 장면이 녹화된 비디오를 보게 된다.
바로 딸의 성폭행 장면이 고스란히 담긴 비디오.
그리고 딸은 장남감 취급하며 끝내 죽음에 이르게 한 인간 쓰레기들.
충격과 분노에 휩싸인 그 순간에 범인 중 하나인 아쓰야를 마주치게 된 나가미네.
현장에서 그는 아쓰야를 잔인하게 살해하게 되고 또 다른 범인인 가이지를 추격하게 된다.
딸의 복수를 위해 범인을 쫓는 아버지와 그의 또다른 살인을 막기 위해 그를 쫓는 형사들.
그리고 나가미네에세 정보를 제공하는 미지의 인물...
우리도 그렇지만 일본의 '소년법'은 미성년자의 처벌을 제한하고 있다.
아무리 흉악한 범죄를 저질렀다 해도 '갱생'이라는 이름으로 그들의 미래를 보장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법들(우리나라를 비롯한 많은 나라에 이런 법이 있다.)이 간과하고 있는 것이 피해자의 입장이다.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가해자가 미성년자라는 이유 만으로 절대로 용서할 수는 없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건이 발생하면 처음 얼마동안은 범인을 욕하고 피해자를 위로하지만
그 짧은 기간이 지나면 범인도 잊고 피해자도 잊는다. 자신의 일이 아니기 때문에.
그러나 피해자와 그 가족들은 평생을 두고 잊을 수가 없다. 바로 자신의 일이기에.
그런 그들의 입장에서 '갱생'을 이야기 하는 대부분의 법들은 부조리에 지나지 않는다.
이 책에 나오는 나가미네의 경우도 그에게 죽은 '에마'는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이고
그런 에마를 죽인 이들은 그들이 미성년자라 해도 결코 용서할 수도 용서해서도 안되는 인간들이다.
그렇기에 책을 읽는 동안 나 역시 나가미네와 한 마음이 되어 그를 응원하게 된다. 그게 작가의 의도이다.
현대 사회에서 '법치'를 이야기하며 개인의 복수를 금지하고 있지만 그 '법치'를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말하는 법이라는 것이 피해자가 가해자 모두에게 부조리로 보여져서는 안된다는 전제이다.
피해자든 가해자는 어느 한쪽의 입장에서 '법'이라는 것의 부조리가 있다면
그 부조리로 인한 개인의 복수는 또다른 '법'이 금지한다 해도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결코 그만둘 수 없는 것이다.
국가가 나를 대신해 복수할 수 없다면(법이라는 이름으로) 나라도 복수할 수 밖에 없지 않은가?
물론 법의 취지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다. 실제로 '갱생'의 길을 가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건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고 반성하는 경우에만 가능하다.
이 책의 범인들 처럼 자신의 잘못을 절대로 시인하지 않고 '법치'라는 것을 이용하는 인간들,
그들에게 마저 관용을 베풀어야 한다고 하면 과연 그것이 부조리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모든 법에는 예외가 있고 융통성이 있다.
우리는 그 융통성이라는 것을 선한 쪽으로만 쓰려고 한다.
이제는 그 방향을 바꾸어야 한다.
아무리 법이 용서하라 하더라도 개전의 기미가 없는 이들에게는
절대로 용서하지 않는 다는 법의 융통성을 발휘해야 한다.
선한 쪽으로의 융통성이 아니라 악한 쪽으로의 융통성도 있어야 한다.
그래야 법의 맹점을 조금이나마 보안할 수 있으니까...
나가미네에게 정보를 제공해 주는 사람이 마지막 정보를 제공해 주지 않았으면 좋았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결과론의 문제겠지만. 안타까움이 묻어나는 건 어쩔 수 없다.
전작에 비해 반전의 크기도 적다. 차라리 없었어도 좋은 반전이 아니었나 싶다.
반전이 업어도 충분히 마무리가 되지 않았을까 한다. 그다지 크지 않은 반전이라면 없었어도 좋았을 것을.
이 소설의 중점을 추리에 두지 않고 사회문제에 두었기 때문에 추리의 요소가 약한 것도 아쉽다.
그러나 추리소설의 선입견을 버리고 본다면 참으로 생각을 많이하게 만드는 이야기이다.
그의 주장에 나 역시 기울어진다. 뭔가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경찰이라는 건 무엇일까? 경찰은 과연 정의의 편일까?
아니야, 경찰은 단지 법을 어긴 사람을 잡고 있을 뿐이야.
경찰이 지키려고 하는 건 시민이 아니라 법이란 말이지.
경찰은 법이 상처 입는 것을 막기 위해 죽을힘을 다해 뛰어다니고 있어.
그런데 그 법이란 게 절대적을 옳을까?
절대적으로 옳다면 왜 끊임없이 개정되고 있을까?
법은 결코 완벽하지 않네.
그 완벽하지 않은 법을 지키기 위해 왜 경찰은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걸까?
그 법을 지키기 위해 선량한 사람들의 마음을 마구 짓밟아도 되는 걸까?
- P. 5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