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메르 VS. 베르메르
우광훈 지음 / 민음사 / 2008년 1월
평점 :
품절


미술에는 전혀 문외한인 나. 규레이터들이나 미술평론가들이 말하는 미적기준, 걸작의 이유 등에 대해서 전혀 아는 바가 없는 나. 그저 밀레의 그림을 보면 마음의 평안을 느낄 수 있고 피카소의 그림을 보면 혼돈의 시대의 방황하는 이성을 느낄 수 있다는 정도. 그래서 어떤 그림이 좋고 나쁜지 전혀 판단할 수 없는 나이기에 책의 처음을 장식하는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작품들을 보면서도 햇볕이 따스하게 스며든 편안한 기분을 느끼며 책을 읽어 나갔다.  

책은 베르메르의 이야기가 아니라 '가브리엘 이벤스'의 일대기를 보여준다. 역시 내게는 전혀 지식이 없는 인물이기에 네이버를 이리저리 해매고 다녔으나 정보는 거의 없다. 그러다 결국 알아낸 것이 그는 작가의 상상이 만든 인물이며 '반 메헤렌'이라는 인물을 모델로 했다는 사실. 그에 대한 정보는 참 많았는데 그의 위작사건과 재판의 진행과정은 책과 거의 동일했다. 다만 그의 일생이 책과 같았는지는 알 수 없다. 궁금하다면 네이버 지식검색을 강추 !! 

가브리엘의 위작이 가능했던 건 하나의 이슈에 부화뇌동하는 미술계의 문제점과 미술을 예술이 아닌 부와 명예의 상징, 재산의 또 다른 형태로 바라보는 그 시대 자본가들의 행태가 함께 빚어낸 시대적 환경 때문이다. 가브리엘의 재판과정에서도 국가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소위 '마녀사냥'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언론이라는 매체의 잘못된 호도가 어떤 결과를 이끌어 내는 지 잘 보여주고 있다. 매국노에서 국가적 영웅으로 순식간에 변하는 모습을 보면 집단적 히스테리가 만드는 거대한 군중심리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다시 한번 느낄 수 있다. 인터넷도 없고 방송의 힘도 강하지 않았던 그 시대의 모습이 어쩌면 이리도 지금의 모습과 닮아 있는지... 오늘도 어딘가에서 익명성을 담보로 악풀과 비방을 일삼고 어느 한 사람을 마녀사냥으로 몰아세우고 아무것도 아닌 사람을 일약 스타로 만들어버리는 소위 네티즌이라는 사람들이 한번쯤은 경계로 삼아 읽어봐야 할 책이 아닌가 한다. 

한국 작가가 우리의 역사가 아닌 서양의 역사, 그것도 일반인에게 생소한 미술사학을 가지고 소설을 썼다. 제목만 보고 분명 외국작가의 작품이라 생각했는데....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소설이 나왔다는게 너무도 기쁘다. 언제나 한국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한국사람들의 이야기만 쓰던 우리 문학의 지평이 우광훈이라는 작가의 실험적 시도로 인해 세계로 넓혀지는 느낌이다. 그의 시도에 박수를 보낸다. 이야기를 풀어내는 힘도 뛰어나다. 실화를 소재로 했음에도 가상인물들을 적절히 배치함으로써 마치 책속의 인물들이 실존인물처럼 느껴지게 만들었다. 그의 성공에 함께 기뻐하고 그의 좌절에 함께 슬퍼하며 그의 고집에 안타까운 시선을 던지며 그의 분노에 공감하지는 못하나 불쌍함을 느끼는 나 자신을 보면서 작가의 능력이 뛰어남을 인정한다. 다음 작품도 반드시 읽어보고 싶다. 기대가 되는 작가이다. 

가브리엘 이벤스의 일대기이기에 그에 대한 개인적인 평가가 책에 대한 나의 서평이 될 것 같다. 그러나 그 판단이 쉽지 않다. 겉으로 드러난 가브리엘 이벤스 -즉, 반 메헤렌-은 최고의 기술을 가진 최고의 사기꾼에 불과하지만 작가가 창조한 가브리엘 이벤스는 일면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결국 그래서 두가지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우호적인 시선 - 그가 시대의 광기에 휩쓸려 사실주의와 고전주의가 종말을 고하는 1940년대가 아닌 베르메르와 동시대에 태어났다면 지금의 우리는 베르메르가 아닌 그의 이름을 외우지 않았을까? 하늘이 그에게 천재의 재능을 주었으나 시대의 불행까지 함께 주었으니 신은 그래서 공평한 것인지? 시대의 흐름을 인정하지 않고 자기만의 심미관을 고집하는 그의 모습은 일면 어리석고 답답해 보이지만 예술가의 자리는 그런 뚝심과 고집과 인내가 필요하다고 본다면 변화에 대한 그의 대처는 타당하다고 할 수 있다. 결국 그런 고집을 버리고 세상과 타협을 시도했을 때 그는 좌절했고 방황할 수 밖에 없었고 그것이 그가 세상에 대한 분노를 가지게 했다면 그의 분노 또한 이해할 수 있다. 그렇기에 마지막 법정에서 그가 완벽한 위작을 재현할 때 나 또한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꼈을지도 모른다. 우호적인 시선으로 본다면 그는 시대를 잘못타고 태어나 시대에 적응하지 못한 불행한 천재이다.

비판적인 시선 - 그에게는 하늘이 준 재능이 있었다. 또한 자신의 재능을 시대에 맞출 수 있는 기회도 있었다. 미술학교가 그 기회일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 기회를 스스로 버렸고 결국 평생 시대와의 불화에 시달려야 했다. 그것이 예술가의 기질이라 한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그에게 두번째 기회가 온 것은 파리에서의 성공이다. 그 성공은 시대의 흐름에 휩쓸리지 않고 묵묵히 버텨낸 그에게 준 선물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 성공에서 너무도 사악한 면만 취하게 된다. 성공의 달콤한 열매이다. 너무도 유혹적인 성공의 매력에 그는 세상과 타협을 시도하지만 그가 시도하는 타협은 예술적 동기에 의한 타협이 아니라 성공에 대한 세속적 동기에 대한 타협이었기에 실패할 수 밖에 없었다. 그의 그런 모습을 경계하고 충고하던 유일한 사랑마저 버린 그. 결국 그 모든 일들은 자신의 책임임을 무시한 채 세상에 대한 분노만 키우다 결국 하늘이 준 재능을 어이없게 소모해 버린 희대의 사기꾼. 비판적 시선으로 본다면 그는 죄질이 아주 나쁜 사기꾼에 지나지 않는다. 

아직도 어느것이 옳은지 알 수 없다. 여전히 내 안에서 싸우고 있는 두가지의 시선. 결국 난 두가지 모두를 나의 생각으로 받아들이려 한다. 어느 한가지 시선으로 보기에 작가가 창조한 가브리엘이라는 인물이 안쓰러워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