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해줘
기욤 뮈소 지음, 윤미연 옮김 / 밝은세상 / 2006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프랑스 영화나 프랑스 소설은 너무 심각하다. 예술적 가치는 뛰어날지 모르지만 재미면에서는 '정말 아니올시다'이다. 그런데 젊은 프랑스 작가 하나가 서점가에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고 한다. '기욤 뮈소'. 나에겐 생소한 작가인데 정말 궁금했다. 그래서 그의 책을 3권 사서 처음 읽은 책이 바로 '구해줘'.  

그런데 이 책. 정말 프랑스 소설인가? 작가는 분명 프랑스 작가지만 이야기는 미국의 이야기다. 미국의 뉴욕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프랑스 작가가 썼다. 그럼 이건 미국소설인가? 프랑스 소설인가? 책을 다 읽고난 지금의 느낌은 이 책은 철저히 미국소설이다. 

한편의 헐리웃 영화를 보고 난 것과 비슷한 느낌의 소설. 영상세대에 맞는다는 가장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생판 모르는 남녀가 첫눈에 반해 사랑에 빠지고 행복할 것만 같던 그들에게 얘기치 못한 사건이 터지고 그 사건이 다른 사건과 연결되고 약간은 비현실적인 캐릭터가 등장하고.... 말 그대로 우리가 익히 보아 온 헐리웃 영화의 공식을 그대로 따른다. 그래서 좀 식상하다. 그러나 식상하다고 한 구석으로 던져 버릴 수 없는 재미가 있다. 책을 놓는 순간까지 다음 내용이 궁금해지고 두 사람의 운명이 궁금해진다. 그리고 그 속에 담은 메세지는 가볍지 않다. 

겉으로 보기엔 평범해 보이지만 각각의 상처를 안고 사는 두 남녀가 우연히 만남 누군가에게 한눈에 반하고 그 감정은 단순한 애정을 넘어서 서로의 상처를 치유할 유일한 희망으로 다가온다. 그러니까 그들은 서로에게 '구해줘'를 외치고 있다. 입으로는 '사랑해'를 말하지만 그 속에는 '구해줘'라는 말이 포함되어 있다. 그렇기에 줄리에트는 모든 위험을 무릎쓰고 비행기에서 내린 것이고 샘은 줄리에트를 위해 그렇게 미친듯이 뛰어다닌 것이다. 그들의 행동은 단순히 사랑으로 이해될 수 없는 것이고 서로에 대한 '구원'이었기에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서로가 서로를 구하게 되는 것이고 이는 그들을 위한 해피엔딩이 아니라 어쩜 그들과 너무나도 닮아있는 우리 모두를 위한 '구원'의 해피엔딩일 것이다. 

그들(?-아직도 인정하지 못하는 절대자들)이 그레이스를 환생시킨 목적이 진정 줄리에트였는지 아직도 알지 못하겠다. 어쩌면 줄리에트가 비행기에서 내리는 순간 이미 구원을 받은 것이고 그레이스를 환생시킨 목적은 그녀의 주디와 주디에 의해 죽을 수 밖에 없었던 수많은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만약 그녀가 환생하지 않았다면 주디는 끔찍한 사고의 주범이자 희생양이 되었을 것이고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갈 수 밖에 없는 운명일 것인데 그레이스의 환생으로 인해 구원을 받을 수 있었기에 그레이스의 진정한 임무는 그것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신의 섭리라면 나도 할말은 없다. 

개인적으로 신의 존재는 믿지 않는다. 그러나 세상에는 불가사의한 일이 많이 일어난다는 것도 인정한다. 그래서 그레이스의 존재가 거부감으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비현실적이라는 것은 분명 지적해야 겠지만.... 단 하나의 비현실적인 캐릭터로 자신의 생각을 풀어내는 작가의 재주가 놀랍고 눈을 뗄 수 없게 전개해 나가는 힘이 책안에 가득하다. 이 작가도 일단은 마음에 든다. 

'운명론'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한다. 사람의 운명이 정해져 있다는 생각. 어린 시절엔 정말로 말도 안되는 생각이라고, 요즘같은 과학의 시대에 무슨 되지도 않는 생각이냐고 무시해 버리고 살았는데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요즘은 생각이 바뀌고 있다. 나는 절대로 아버지처럼 살지는 않겠다고 다짐하고 아버지의 모습에 반대로만 행동했는데 결국은 내가 아버지의 나이에 아버지와 다른 듯 닮은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내가 아는 그리고 알았던 많은 사람들 또한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모습으로 살아가거나 내곁을 떠나고 있으니 말이다. 그들이 삶에 얼마나 애정과 열정을 들였는지 잘 아는 내가 보기에 그들이 처한 상황들은 너무나 억울하니까 말이다.  

어쩌면 운명은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바뀔 수 없는 것, 변할 수 없는 것. 그게 분명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결과가 그렇게 된다해도 손놓고 따라가기엔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 뭔가 싸워보고 손을 들어야 하지 않는가? 그래서 난 오늘도 최선을 다하며 살고 있다. 자신의 여자를, 자신의 구원을 지키기 위해 목숨마저 아끼지 않는 샘 갤러웨이처럼.... 

P.S : 솔직히 30대 후반 아저씨가 읽기엔 좀 그렇다. 아마도 20대 초반의 아가씨들이라면 열광할 만한 소설이다. 그래서 아마도 베스트셀러가 되었겠지만... ^^

P.S 2 : 우리나라에만 있을 줄 알았던 '저승사자'의 개념이 프랑스 작가에게서 나온다니 참 신기하다. 우리시대의 저승사자의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에서 강풀의 '아파트'에 나오는 저승사자가 생각난다. 서로에게 영향을 받은 것이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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