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셀 베이커 자서전 : 성장
러셀 베이커 지음, 송제훈 옮김 / 연암서가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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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서전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자서전은 세상에서 알아주는, 알아줄 만한 위대한 업적을 쌓은 이들의 전유물 아닌가. 그러므로 그 위대한 사람들은 자서전을 쓴다. 대개 자서전의 내용도 위대하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그'는 남들과 다르다. 남들보다 월등하다. 그런 사람들의 자서전을 읽으면서 보통 사람들은 절망한다. 이런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남달랐구나. 나 같은 인간은 똥줄 빠지게 노력해도 안 되는 건 안 되겠구나. 이것이 자서전에 대해 내가 가진 편견이다. 그리고 편견은 깨어지라고 있는 것이다. 몇 년 전 읽은 달리(Salvador Domingo Felipe 1904~1989) 자서전은 내 편견을 통쾌하게 박살내 주었다. '달리'답다고 생각했다. 그는 자서전에서도 역시 '달리'였다. 젠체하지 않았다. 재미있고 매혹적인 자서전이었다. 자서전에 대한 내 편견이 조금 말랑해졌다.

 

 






   그래도 역시 대부분의 자서전은 거리감이 들고, 그래서 재미없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런데 기이한 것은 내가 읽은 자서전이 별로 없다는 사실이다. 생각해 보니 정말 그랬다. 편견이란 참 무서운 것이구나. 생각하면서 러셀 베이커의 자서전을 펼쳤다. 달리와 달리 러셀 베이커는 모르는 사람이었다. 미국에서 꽤 알려진 언론인이라는 간단한 정보밖에 없었다. 내가 이 책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자서전의 제목 때문이었다. 성장(Growing up). 반 고흐의 밤하늘과 같은 푸른 바탕에 새겨진 그 심상한 단어와 새 두 마리. 어미로 보이는 새가 눈을 똥그랗게 뜨고 그보다 작은 새를 바라보고 있다. 골똘한 표정이다. 작은 새와 큰 새가 서로를 쳐다보는 것을 쳐다보면서, 나는 그 두 마리의 새가 어쩌면 한 마리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는 자서전을 펼쳤다.

 

 






   잘 자랄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옛말이 있다. 잘 될 사람은 어릴 때부터 남다른 장래성을 보인다는 말이다. 러셀은 남다른 "떡잎"은 아니었다. 소심하고 얌전한 아이. 공부만 잘하는 아이. 하긴 요즘 세상에서는 공부 잘하는 것이 성공의 지름길이지만.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커야 했던 러셀은 어머니의 권유로 새벽 신문배달을 해야 했다. 모두가 잠든 새벽길, 그 적막 속에서 러셀은 세상을 읽고 자기 자신을 읽었다. 가난은 끝이 없었고 러셀의 신문배달도 끝이 없을 것만 같았다. 지독한 가난 속에서 러셀은 장래를 고민했다. 러셀은 대학은 꿈도 못 꾸었다. 그런데 우연히 친구에게서 장학금 제도를 알게 되어 시험을 치른 러셀은 장학금을 받고 대학에 입학한다. 바야흐로 신문배달의 시기가 끝나고 언론인의 문턱에 슬쩍 발을 디디게 된 것이다.

 

 






   대학에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2차세계대전이 발발하고 러셀은 공군에 자원입대한다. 비행훈련학교 시절 연인 미미를 만난다. 미미는 좋은 여자였지만, 러셀의 어머니에게 미미는 '좋은 여자'가 아니었다. 대부분의 어머니들에게 아들의 연인은 "좋은 여자"일 수 없다. 그렇지 않은가? 홀로 아들을 키운, 그냥 키운 것도 아니고, 아들의 출세를 위해 온힘을 기울인 러셀의 어머니에게는 더욱 그랬다. 아들의 연인을 탐탁지 않게 여겼던 어머니. 그러나 그 어머니도 한때는 누군가의 아들의 연인이었다. 할머니 역시 지금 러셀의 어머니처럼 어머니를 적대시했다. 러셀은 미미와 어머니의 관계, 그리고 먼 옛날 할머니와 어머니의 관계를 떠올리면서 생각한다. 인간의 삶은 이상하게도 끝없이 반복되는 것이라고.

 

 







   러셀 베이커의 자서전은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날아간 '어머니'로부터 출발한다. 동맥경화로 쓰러진 여든의 어머니는 생의 폭풍에서 벗어나 그녀의 요람기로 돌아갔다. "검정색 긴 스타킹을 신고 봉긋한 소매가 달린 파란 드레스를 입고" 머리에는 나비 모양의 매듭을 묶은 소녀는 61년 전 어느 날의 설렘과 기쁨에 가득 차 있다. "오늘 기분 최고예요. 아빠가 나 오늘 배 타고 볼티모어에 데려 가신다고 그랬단 말이에요."

 









   어머니를 따라 희망 없는 과거 여행을 계속하며 나는 내 과거를 그토록 쉽게 내버린 것이 얼마나 잘못된 일이었는가를 깨달았다. 우리 모두는 과거에서 왔다. 아이들은 자신들을 생겨나게 한 그 과거에 대해 알아야 한다. 아이들은 인생이 아주 오래 전에 사라져 버린 시간으로부터 현재에까지 뻗어 있는, 사람들로 엮어진 동아줄과도 같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며, 인생이란 결코 기저귀에서 수의壽衣를 입기까지의 한 뼘의 여정으로 한정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 (22쪽)


 












   기억이란 참으로 이상하다. 몇십 년이 지난 일도 바로 조금 전의 일처럼 생생하게 느껴지는가 하면 어제 겪은 일이 감감하여 잡히지 않기도 한다. 나이들수록 인간의 기억은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한다. 임사체험자들은 자신이 죽음에 빠져 있었을 때, 마치 영사기에서 흘러나온 것 같은 눈부신 흰 빛 속에서 과거의 경험이 차르륵 빠르게 재생되는 것을 보았다고 증언한다. 사람이 죽었을 때, 남은 자들은 말한다. 그가 돌아갔다고. 돌아가신 할머니가 떠오른다. 할머니는 죽기 몇해 전부터 말言을 잃었다. 숟가락이나 주걱, 빗자루, 내 이름까지도 제대로 말하지 못했다. 할머니는 애써 뭔가를 말했지만 내가 들을 수 있던 것은 옹알이를 하는 어린아이와 같은 웅얼거림이 전부였다. 할머니는 똥 싸는 법도 잊어버렸다. 숟가락으로 밥 먹는 것도, 얼굴을 씻는 것도 다 잊어버렸다. 그러다 어느 날, 돌아갔다. 더이상 잊어버릴 것도, 잃어버릴 것도 없이, 끝없이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 시간마저 잃어버린 그때, 할머니는 영원히 돌아갔다. 인생의 어느 지점에 닿으면 사람은 뒷걸음질을 시작하는 것일까. 자신이 걸어온 길을 되돌아가는 것 아닐까. 자신의 뿌리를 향해, 그림자를 향해, 요람을 향해.

 










   내 기억 속의 고모부는 자신이 태어나던 순간을 기억하는 사람으로 남아 있다. 고모부는 그 얘기를 어느 날 저녁, 애기 고모가 부엌에서 코코아를 준비하고 있는 동안 내게 들려주었다. 고모부는 당신이 태어나던 순간, 당신의 어머니는 기뻐 어쩔 줄 몰라 했고 의사는 "아들입니다"라고 말했다고 했다. 고모부는 특히 그 의사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기억난다고 했다. 방 안에는 여러 사람이 있었는데 모두 당신을 향해 미소를 지어 보냈다. 고모부는 그 사람들의 얼굴도 선명하게 기억했다. 고모부는 그분들에게 미소로 답했다. (236쪽)


 






   러셀 베이커의 자서전은 특별하다. 자기 자신을 중심에 두는 여타 자서전과 달리 러셀의 자서전에는 주변 인물들 모두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러셀은 자기 삶의 무대를 독차지하지 않는다. 그럴 수도 없지 않은가? 인간은 홀로 성장하는 것이 아니니까. 누구나 사람들 속에서 성장하니까. 주변 인물들에 대한 구체적이고 실감나는 묘사는 이 책을 읽는 매력 중 하나이다. 홀로 된 어머니와 함께 이리저리 친척집을 전전했던 러셀은 거기서 만났던 이웃과 친척들을 생생하게 재현하고 있다. 대공황과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책 치고 이렇게 평온하고 재미있기도 힘들 것 같다. 가난하고 무지한 노동자들에게는 대공황이나 2차 세계대전이 또 다른 의미로 읽힐 수 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러셀 베이커의 문장은, 역자의 공력도 크겠지만, 문법에 크게 어긋나지 않고 간결해서 좋다. 읽기에 거슬리지 않는다. 러셀의 '위대한' 삶이 엉성한 문장 때문에 어그러지지 않은 것이 참 다행이다.

 







   나는 세상의 혼란상을 주로 '전쟁 카드놀이'에서 배웠다. 야구 카드놀이처럼 그것도 풍선껌 안에 들어 있었다. 그 카드에서 일본인들은 중국에서, 이탈리아인들은 에티오피아에서 잔학한 행위를 저지르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었다. 그리고 스페인 내전에서는 부녀자와 아동에 대한 살육이 공공연하게 자행되고 있었다. 나는 이 카드놀이를 통해 일본은 나쁜 놈, 중국은 좋은 놈 그리고 이탈리아는 나쁜 놈, 에티오피아는 좋은 놈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313~314쪽)

 










   러셀 자서전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삶에 순응한다. 양치기가 이끄는 대로 따르고 그 안에서 조용히 풀을 뜯는 것으로 만족하는 순한 양과 같은 삶. 이렇게 말하면 오해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수많은 욕망이 출렁이는 이 세계에서 '순응'은 별로 매력적인 말이 아니다. 그러나 내가 말하는 '순응하는 삶'은 비겁하고 수동적인 삶의 태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삶에 실패한 낙오자가 마지못해, 겨우 붙들고 비트적거리는 비루한 삶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주어진 삶 속에서 자기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것. 그 안에서 가능성을 발견하는 것. 자기 안의 숨겨진 빛을 틔워올리는 일. 그것이야말로 순응하는 삶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매우 자연스럽다. 실로 요즘 사람들은 얼마나 부자연스러운 삶 속에서 허덕이는지! 옆에서 지켜보기만 해도 마음이 갑갑하고 불편해진다. 러셀 자서전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자연스럽다. 그 자연스러움이 나를 감동시킨다.

 









1933년 4월 30일 :


"엘리자베스에게,


당신의 편지 고맙게 받았습니다. 아니요, 당신이 저에게 잘못한 일은 없습니다. 저에게 잘못한 건 공황입니다. 저는 가진거 전부를 세금으로 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끝장입니다. 그 때문에 당신에게 편지쓰지 말라고 하는겁니다. 저는 당신과 편지를 쓰면서 정말 당신을 좋아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우리가 서로를 더 가깝게 만날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젠 저는 돈을 더 빌리 수도 업습니다. 한 푼도 빌릴 수 업습니다. 저는 지금 상황이 조금 좋아지면 덴마크로 돌아갈라고 합니다. 아마 거기서 살겁니다. 모든 걸 잊어주십시오. 저는 이제 희망을 다 잊어버렸습니다. 그래서 돌아갑니다. 거기서 언젠가 다시 돌아오면 당신이 결혼하지 안고 있으면 당신을 도와줄수 있다면 도와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당신에게 좋은 남자를 찾아보십시오. 그리고 올루프를 알았던 걸 잊어버리십시오." (142~143쪽)


 






   어린 아이들은 결코 뒤돌아보지 않는다. 그들은 앞만 본다. 눈앞에 펼쳐진 저 미래의 빛 속으로 들어가고 싶어 안달한다. 얼른 어른이 되고 싶어한다. 어른이 되고 싶은 열망 속에서 아이는 빠르게 성장한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러셀 베이커의 자서전을 읽으면서 생각했다. 어른의 조건은 단순히 육체적 성장만은 아닐 것이다. 그러면 무엇일까. 표지 그림을 장식하는 두 마리의 새. 앞서 나는 그것이 두 마리가 아니라 한 마리, 단독의 존재일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어른이 된 자아와 그 안에 살아있는 과거의 자아. 그것이 '성장'이 함축하고 있는 바가 아닐까. 어느 순간부터 인간은 뒤를 돌아보게 된다. 길게 늘어진 자신의 그림자를 가늠하기 시작한다. 과거를 돌아보는 것, 그것은 인간의 본능 같은 것이 아닐까. 아이를 자라게 하는 것이 앞으로 뻗어나가고픈 열망이라면, 어른을 성장시키는 것은 뒤를 돌아보는 일이 아닐까. 자기 피와 뼈를 이루고 있는 시간과 그 속에 살아있는 사람들. '나'를 키운 것은 그 모든 지나간 것들 속에 있음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진정한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일. 그것이 저 표지 위의 새들과 《러셀 베이커 자서전, 성장》이 일깨워주는 아름다운 가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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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릭 - 열개의 목소리, 하나의 이야기 문학동네 청소년 5
닉 혼비.데이비드 알몬드 외 지음, 이은정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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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한 사람의 죽음은 그것으로 끝이 되는 것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지 않는다. 아무도 모르게 죽어간 누군가의 흔적이라도 이 우주 어느 한 자리에는 새겨져 있을 것이라 믿는다. 파도를 일으키는 바람결에, 물보라 속에, 들풀을 지탱시키는 흙, 그 흙을 적시는 이슬, 안개, 빗방울, 구름. 그리고 한 사람의 죽음은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키기도 한다. 이런 관점에서 생각하면 '죽음'은 이별이 아니라 '새로운 만남'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클릭》은 한 사람의 삶과 죽음이 독자적인 것이 아니고 다양한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우주의 한 조각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매기, 모든 것을 되돌려 주렴.

 

  ㅡ 할아버지가.

 

 


   세계적인 포토저널리스트 조지 킨 헨슐러가 이야기의 중심에 있다. 이야기 시작부터 조지는 이미 죽은 사람이지만, 그의 죽음은 오히려 새로운 만남의 시작이 된다. 조지는 죽으면서 매기(손녀)와 제이슨(손자)에게 의미심장한 유산을 남긴다. 제이슨은 유명인의 친필 서명이 들어간 사진 앨범. 매기는 일곱 개의 조개껍데기와 함께 "모든 것을 되돌려" 달라는 메시지를 받게 된다. 매기는 조개껍데기의 출처를 알아내고 그것들을 되돌려 놓기 위해 여행을 시작한다. 한편 제이슨은 자신이 친아들이 아니라는 충격적인 사실과 맞닥뜨리게 된다. 혼란스러운 감정과 상처 속에 허우적거리던 제이슨은 할아버지가 남긴 구식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기 시작한다. 카메라 렌즈를 통해 들여다보는 세상은 제이슨에게 또 다른 시야를 열어주는 계기가 되어준다.

 

 


할아버지는 고발하려고 사진을 찍은 게 아니야. 할아버지는 비극을 이해하려고 애쓰셨지. 할아버지의 사진은 정말 아름답고 참혹할 뿐만 아니라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져. 할아버지는 혼돈 속에서, 잘은 모르겠지만, 질서, 인간애 같은 걸 발견하셨어. (본문 중에서)


 

 



   죽은 사람은 누군가의 기억 속에도 산다. 포토저널리스트인 조지는 수십 년에 걸쳐 다양한 나라를 여행했다. 크고 작은 전쟁과 수많은 이벤트들. 카메라 렌즈를 매개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몇 장의 사진을 들여다보며 사람들은 그를 추억한다. 일곱 개의 조개껍데기를 돌려놓기 위한 여행을 하면서 할아버지의 흔적과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매기는 미처 몰랐던 할아버지의 새로운 삶을 이해하게 된다. 평생에 걸쳐 할아버지가 남긴 과업을 풀어나가면서 매기는 조개껍데기에 담긴 할아버지의 깊은 뜻을 헤아린다. 이 커다랗고 아름다운 우주 안에서 우리는 작은 점에 불과하다는 것, 그러나 이 작은 점들이 모여 하나의 우주를 이루고 있다는 것, 그러므로 모든 삶은 그 자체로 귀중하다는 것이 할아버지가 남긴 무언의 유산이었다. 위대한 유산이라 할 만하다.

 

 

   《클릭》은, 한 사람의 흔적이 다른 사람의 삶에 뜻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감동적인 방식으로 전달하고 있다. '조지 킨'이라는 인물을 중심에 두고 여러 명의 작가들이 이어 쓴 모자이크 소설이다. 각 이야기들은 독립적이면서 또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전혀 다른 시점과 인물이 등장하지만 부자연스럽지 않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사진으로 맺어진 '조지 킨'과의 기억이 중심에 있기 때문이다.

 


   엄마는 얼굴이 그려진 돌멩이를 하나 들어 자신의 얼굴에 대고 모든 것, 하다못해 평범한 해변에 굴러다니는 평범한 돌 하나를 가지고도 얼마든지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안녕."

   엄마가 돌멩이에 그려진 까만 머리 남자아이에게 속삭였다.

   "안녕."

   돌멩이도 명랑하고 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본문 중에서)

 




   각각의 이야기에는 작가의 개성이 잘 살아 있다. 하나의 인물을 두고 이토록 다양한 색을 지닌 이야기들이 펼쳐질 수 있다니, '이야기'의 힘을 새삼 실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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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테말라의 염소들
김애현 지음 / 은행나무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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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김애란도 정이현도 아니다. 김애현. 처음 듣는 이름이라 프로필을 살피는데, 화려한 이력이 눈길을 끈다. 2006년 한국일보, 강원일보, 전북일보에 한꺼번에 당선했단다. '신춘문예 삼관왕'. 작가의 길을 열어주는 다양한 경로가 있는 지금도 '신춘문예'는 작가지망생들에게 '꿈'이자 '별'이다. 하늘의 별을 세 번씩이나 따다니. 그 이력만으로도 작품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 소설가 구효서는 이 소설을 이렇게 소개했다. "이 소설은 우리를 덮친다"고.

 

 

   개그맨 시험을 보기 위해 대기실에 있던 '나'는 엄마의 사고소식을 듣는다. 교통사고를 당한 엄마가 응급실에 있다는 내용. 엄마는 누워 있다. 누워 있기만 한다. 식물인간 상태가 된 것이다. '나'는 "누군가 가슴에 날렵한 메스를 대고 천천히 아래로 선을 긋는 것 같"은 기분이 된다. 살아 움직이는 엄마와 만나기 위해 '나'는 시간을 거슬러 과거를 재생시킨다.

 


   언젠가 나는 두 손이 없는 엄마를 상상한 적이 있다. 두 손이 없는 엄마는 글을 쓸 수도 없고 방송국은 글을 쓰지 못하는 구성작가를 버릴 거였기 때문이다. 그때 내가 엄마를 줍는다는 것이 내 상상의 이유였다. 하지만 곧바로 두 손이 없는 엄마의 모습을 상상하자 끔찍해서 무서워졌다. 며칠 동안 그 상상이 상상만으로도 나쁜 짓이라는 생각 때문에 몹시 괴로웠다. 그러다가 감기에 걸려버렸다. 벌 받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엄마가 챙겨주는 약을 먹지 않았다. 감기는 지독했고 지독한 만큼 나는 용서받는 것 같았다. 늦은 저녁, 집으로 돌아온 엄마가 내 방에 들어와 이마에 손을 얹었다. 엄마의 손은 부드러운 천 같았다. (본문 중에서)


 

   "일만 하는 엄마 등짝만 바라보"며 자란 '나'는 늘 엄마의 관심과 애정에 목마르다. 그 '목마름'은 '엄마의 젖'으로 이어진다. 아기 때 엄마 젖을 먹지 못해 자신에게는 '젖 먹던 힘'이 부족하다는 것으로 '나'의 불만이 굳어진다. 식물인간 상태의, 엄마의 또 다른 부재 앞에서 '나'는 정말로 '젖 먹던 힘'이 필요하게 된다. 아쉬운 대로 인공 젖꼭지를 빨아보기도 한다. 그런 '나'에게 주변인물들은 현실을 회피하지 말라는 충고를 던지지만 '나'에게 와닿지는 못한다. 그때 '나' 앞에 등장하는 인물이 있었으니, 그는 바로 과테말라 '시끌벅적 광장'에서 염소젖을 파는 '호세'이다. 오! 제발. 절 그냥 지나치지 마시길.

 



  호세, 울기부터 하면 안 된다. 무슨 일이든 그 앞에서 침착해야 하는 거라구. 그리고 생각을 해야 해,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를. 도망칠 생각은 아예 마라. 어디로 가든 얼마나 멀리 가든 피하고 싶은 것들은 언제든지 코앞에 있을 테니 말이야. 알아들었냐? (본문 중에서)

 

 

   소설은 액자식 구성을 취하고 있다. 식물인간 상태인 엄마를 지켜보는 '나'의 이야기 안에 '호세'의 이야기가 들어 있다. 방송작가인 '나'의 엄마가 촬영한 다큐에 등장하는 호세는 앞서 언급했듯이 과테말라에서 염소젖을 파는 청년이다. 호세는 다섯 마리 염소와 엄마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자신보다 다섯 마리 염소를 더 아끼는(호세의 생각) 엄마가 늘 불만스러웠던 호세가 엄마의 죽음 앞에서 엄마를 이해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나'의 상황과 무관하지 않은 호세의 이야기는 '나'에게 엄마의 삶과 사랑을 환기시킨다. '나'가 감기를 앓을 때 울던 엄마, 지갑에 '나'의 사진을 넣고 다니는 엄마. 엄마, 엄마. 저 먼 이국의 염소젖 파는 청년은 "누워 있"는 엄마와 '나'를 이어주는 중요한 젖줄이 되어주는 것이다.

 


 나는 두 눈을 감고 젖꼭지를 빤다. 힘이 난다, 힘이 난다, 젖먹던 힘이...... 났으면 좋겠다. (본문 중에서)

 


   소설을 읽는 내내 나는 산란기의 연어를 떠올렸다. 알을 품고, 자신이 태어난 강으로 거슬러 헤엄치는 연어의 이미지. "누워만 있"는 엄마를 만나기 위해 과거로 시간을 거슬러 오르고, 엄마의 주변인물들을 만나며 엄마와의 화해를 시도하는 '나'에게서 회귀하는 연어를 본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시간의 강을 거슬러 올라 '나'는 미처 알지 못했던 엄마의 반쪽을 찾게 된다. 억눌린 불만과 불안을 인정하고 표출하면서(이를테면, 인공의 젖꼭지를 빨거나 누워 있는 엄마의 젖가슴 위에 플라스틱 젖꼭지를 씌우는 행위 같은 것) '나'는 과거와 화해하고 현재에 두 발을 딛게 된다.

 

 

   구효서는 이 작품에 대해 또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발랄한 터치로 슬픔을 빚어내고 덧바르면서 긁어내는 절묘한 현기증적 '모순 필법'은 이 작가의 특장'이라고. 정말 그렇다. 발랄하다. 다소 무거운 소재를 다루고 있는 이 소설은 김애현 특유의 발랄한 표현방식과 생동감 있는 인물묘사로 무거움이 상쇄된다. 소설 중간 중간 삽입된 호세의 이야기도 이 소설의 매력을 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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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코지마 하우스의 소동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29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서혜영 옮김 / 작가정신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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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자키 일상 미스터리 시리즈(전3권)' 중 3권이다. ‘일상 미스터리의 여왕’이라 불린다는 ‘와카타케 나나미’의 대표작이라는데, 나는 그의 전작들을 읽어보지 못했다. 추리물을 즐겨 읽지 않아서이다. 추리물은 우리 일상과는 거리가 먼 전개를 따르는 것이 보통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좋아하고 즐기는 모양이지만, 나는 거기서 편안한 공감을 느끼기 어렵다. 그런데 ‘일상 미스터리’라니. 대체 뭔가 궁금증이 일었다. 전작을 읽은 사람들이 하나같이 입을 모아 칭찬하더라. 제목에서 풍기는 분위기도 좋았다. 고전적인 추리소설 제목다운 ‘소동’ 같은 단어에 마음이 들썽였다. 그러면 소동이 벌어지는 섬, 네코지마로 떠나보자. 아, 그전에, ‘하자키’는 ‘하자키 시리즈’의 중심 배경지로, 가상의 해안도시이다. 네코지마는 하자키에 속한 작은 섬이다.

 

 



   일명 ‘고양이섬’이라 불리는 작은 섬 네코지마. 주민은 서른 명뿐인데 고양이는 백 마리가 넘는 고양이 천국이다. 확 트인 바다와 다양한 고양이 관련 상품들로 고양이 애호가들의 발길을 잡는 관광명소. 어느 날 칼 맞은 고양이 사체가 발견되면서 고양이섬의 평화가 깨진다.  고양이의 사체를 조사한 지 얼마 안 되는 시점에서 기이한 사고가 연이어 발생한다. 투철한 직업의식이 결여된 고마지 형사와 빈둥거리는 것이 취미인 나나세 순경은 전혀 별개인 듯한 이 사건들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18년 전 현금수송차 강탈사건과 그때 증발한 거액의 돈이 연관되어 있다는 기막힌 사실을 알게된다.

 

 



   앞서 밝혔듯이 나는 추리물을 많이 접하지 못했다. 그래서 추리물의 기본 공식 같은 건 잘 모른다. 그럼에도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추리물은 적당히 암울하고, 일관되게 진지하며, 사건을 밝혀나가는 등장인물들의 추리는 상당히 명석하다. 이 모든 요소들은 사건을 쫓는 독자에게 궁금증과 떨림을 전한다. 이것이 ‘추리물’에 대한 나의 이미지이다. <네코지마 하우스의 소동>은 읽는 내내 궁금증과 웃음을 선사하지만, 암울함이나 진지함, 사건을 두고 펼쳐지는 명석한 추리 같은 것과는 조금 거리가 멀다. 등장인물들은 엉뚱하고 발랄하며, 사건을 풀어가는 담당형사나 순경에게 명석한 추리나 완벽함은 없다. 이를 테면, 솜으로 들어찬 고양이 사체에서 마약성분을 밝혀내는 부분이 있다. 이것은 과학적인 수사나 논리적 추론에 따른 것이 아니라, 단순히 고마지 형사의 알레르기 반응에서 밝혀진다. 정말 얼결에 드러나는 것이다. 이런 점이 ‘하자키 시리즈’의 매력인 것 같다.

 

 



<네코지마 하우스의 소동>은 칼에 찔린 고양이, 마약, 끔찍한 사고, 현금수송차 강탈사건 등 무섭고 흉악한 사건들을 다루고 있지만, 엉뚱하고 재미있는 인물 캐릭터들과 자연스러운 일상 묘사가 그 무거움을 상쇄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추리물의 요소가 부족하다고 할 수도 없다. 고양이 한 마리의 사체에서부터 현금수송차 강탈로까지 이어지는 추리 과정에는 억지스러운 요소라곤 찾아볼 수 없다. ‘일상 미스터리의 여왕’이란 이름이 괜히 붙은 건 아닌 것 같다. 추리물에 대한 거부감을 갖고 있던 나에게도 편안하게 읽혔다. 적당한 유머와 약간의 긴장감이 잘 어우러진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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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더지 지식 클럽 - 지식 비평가 이재현의 인문학 사용법
이재현 지음 / 씨네21북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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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우리 현실에서 자유주의를 말하는 것은 여러모로 곤혹스러운 일이다."
    (7쪽)

 

 

   이재현. 책을 읽다 책날개에 기재된 글쓴이 소개 문장을 다시 읽게 된다. 전작을 살핀다. <나는 삐끼다>. 왠지 모를 친근함이 느껴졌다. 막연한 친근감의 이유를 책을 계속 읽다가, 읽다가 어느 순간에 스쳤다. 이름 석 자는 잊고 지냈지만 그의 책은, 한때 독서광 연연하면서 무턱대고 잡아 읽던 때에 스쳤던 기억이 난다. 그제서야 그의 문장 또한 낯설지 않음을 깨닫는다.

 

   <두더지 지식 클럽>은 요즘 내가 읽어가는 책들과는 상이하고, 특이한 구성을 보인다. 고유명사, 혹은 유명인사와의 가상 인터뷰 형식으로 진행되는 기법을 사용하면서 읽는이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글쓰기를 제시하고 있다. 인터뷰에 앞서서 글쓴이는 글의 나아갈 방향에 대한 사전 정보를 친절하게 알려주고, 이후에 앞서 설명한 인터뷰 형식으로 글을 풀어가고 있다.

 

   글쓴이는 '프롤로그'에서 '좌빠', '자빠'에 대한 설명으로 이 책의 방향을 알려주고 있다. 구태여 '두더지'를 내세운 이유가 무엇일까. 읽어가면서 처음 책을 펼쳤을 때의 의문은 순식간에 해소된다. 나는 즐겨 신문을 보고 어디에 불이 났네, 어디에 칼 맞아 죽은 귀신이 나타났네 하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그러나 대부분의 정보는 활자 수준에 머물고 있다. 그래서인지 나는 '시네마 천국'과 같은 영화 소개 프로그램을 즐겨 본다. 친절한 해설자가, 더욱이 유명한 영화평론가가 설명해주는 이야기들의 정연한 설명은 느낌만 가지고 있는 내게, 거의 대부분 내가 느낀 그만한 감정을 구체적으로 풀어주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두더지'는 활자 수준에 머물렀던, 액면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흐리멍덩한 눈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내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었다.

 

   "세상을 읽는 39가지 프레임". 책 소개는 이렇다. 그러나 '39가지 프레임' 그 이상을 글쓴이는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이 겨냥하고 있는 시점은 현재, 우리 사회이다. 실제 '두더지'는 제일 마지막 인터뷰에서, 정말로 두더지와 인터뷰를 하는 장면에서 본격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동시대인으로서 전문 비평가의 눈은 어떻게 우리 사회를 풀어나가는지 궁금하다면, 깨어 세상을 바로보고 싶다면 <두더지 지식 클럽>을 펼쳐보아도 좋겠다. 미처 생각지 못한 새로운 관점이 펼쳐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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