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테말라의 염소들
김애현 지음 / 은행나무 / 2010년 10월
평점 :
품절


 

 

 

   김애란도 정이현도 아니다. 김애현. 처음 듣는 이름이라 프로필을 살피는데, 화려한 이력이 눈길을 끈다. 2006년 한국일보, 강원일보, 전북일보에 한꺼번에 당선했단다. '신춘문예 삼관왕'. 작가의 길을 열어주는 다양한 경로가 있는 지금도 '신춘문예'는 작가지망생들에게 '꿈'이자 '별'이다. 하늘의 별을 세 번씩이나 따다니. 그 이력만으로도 작품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 소설가 구효서는 이 소설을 이렇게 소개했다. "이 소설은 우리를 덮친다"고.

 

 

   개그맨 시험을 보기 위해 대기실에 있던 '나'는 엄마의 사고소식을 듣는다. 교통사고를 당한 엄마가 응급실에 있다는 내용. 엄마는 누워 있다. 누워 있기만 한다. 식물인간 상태가 된 것이다. '나'는 "누군가 가슴에 날렵한 메스를 대고 천천히 아래로 선을 긋는 것 같"은 기분이 된다. 살아 움직이는 엄마와 만나기 위해 '나'는 시간을 거슬러 과거를 재생시킨다.

 


   언젠가 나는 두 손이 없는 엄마를 상상한 적이 있다. 두 손이 없는 엄마는 글을 쓸 수도 없고 방송국은 글을 쓰지 못하는 구성작가를 버릴 거였기 때문이다. 그때 내가 엄마를 줍는다는 것이 내 상상의 이유였다. 하지만 곧바로 두 손이 없는 엄마의 모습을 상상하자 끔찍해서 무서워졌다. 며칠 동안 그 상상이 상상만으로도 나쁜 짓이라는 생각 때문에 몹시 괴로웠다. 그러다가 감기에 걸려버렸다. 벌 받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엄마가 챙겨주는 약을 먹지 않았다. 감기는 지독했고 지독한 만큼 나는 용서받는 것 같았다. 늦은 저녁, 집으로 돌아온 엄마가 내 방에 들어와 이마에 손을 얹었다. 엄마의 손은 부드러운 천 같았다. (본문 중에서)


 

   "일만 하는 엄마 등짝만 바라보"며 자란 '나'는 늘 엄마의 관심과 애정에 목마르다. 그 '목마름'은 '엄마의 젖'으로 이어진다. 아기 때 엄마 젖을 먹지 못해 자신에게는 '젖 먹던 힘'이 부족하다는 것으로 '나'의 불만이 굳어진다. 식물인간 상태의, 엄마의 또 다른 부재 앞에서 '나'는 정말로 '젖 먹던 힘'이 필요하게 된다. 아쉬운 대로 인공 젖꼭지를 빨아보기도 한다. 그런 '나'에게 주변인물들은 현실을 회피하지 말라는 충고를 던지지만 '나'에게 와닿지는 못한다. 그때 '나' 앞에 등장하는 인물이 있었으니, 그는 바로 과테말라 '시끌벅적 광장'에서 염소젖을 파는 '호세'이다. 오! 제발. 절 그냥 지나치지 마시길.

 



  호세, 울기부터 하면 안 된다. 무슨 일이든 그 앞에서 침착해야 하는 거라구. 그리고 생각을 해야 해,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를. 도망칠 생각은 아예 마라. 어디로 가든 얼마나 멀리 가든 피하고 싶은 것들은 언제든지 코앞에 있을 테니 말이야. 알아들었냐? (본문 중에서)

 

 

   소설은 액자식 구성을 취하고 있다. 식물인간 상태인 엄마를 지켜보는 '나'의 이야기 안에 '호세'의 이야기가 들어 있다. 방송작가인 '나'의 엄마가 촬영한 다큐에 등장하는 호세는 앞서 언급했듯이 과테말라에서 염소젖을 파는 청년이다. 호세는 다섯 마리 염소와 엄마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자신보다 다섯 마리 염소를 더 아끼는(호세의 생각) 엄마가 늘 불만스러웠던 호세가 엄마의 죽음 앞에서 엄마를 이해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나'의 상황과 무관하지 않은 호세의 이야기는 '나'에게 엄마의 삶과 사랑을 환기시킨다. '나'가 감기를 앓을 때 울던 엄마, 지갑에 '나'의 사진을 넣고 다니는 엄마. 엄마, 엄마. 저 먼 이국의 염소젖 파는 청년은 "누워 있"는 엄마와 '나'를 이어주는 중요한 젖줄이 되어주는 것이다.

 


 나는 두 눈을 감고 젖꼭지를 빤다. 힘이 난다, 힘이 난다, 젖먹던 힘이...... 났으면 좋겠다. (본문 중에서)

 


   소설을 읽는 내내 나는 산란기의 연어를 떠올렸다. 알을 품고, 자신이 태어난 강으로 거슬러 헤엄치는 연어의 이미지. "누워만 있"는 엄마를 만나기 위해 과거로 시간을 거슬러 오르고, 엄마의 주변인물들을 만나며 엄마와의 화해를 시도하는 '나'에게서 회귀하는 연어를 본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시간의 강을 거슬러 올라 '나'는 미처 알지 못했던 엄마의 반쪽을 찾게 된다. 억눌린 불만과 불안을 인정하고 표출하면서(이를테면, 인공의 젖꼭지를 빨거나 누워 있는 엄마의 젖가슴 위에 플라스틱 젖꼭지를 씌우는 행위 같은 것) '나'는 과거와 화해하고 현재에 두 발을 딛게 된다.

 

 

   구효서는 이 작품에 대해 또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발랄한 터치로 슬픔을 빚어내고 덧바르면서 긁어내는 절묘한 현기증적 '모순 필법'은 이 작가의 특장'이라고. 정말 그렇다. 발랄하다. 다소 무거운 소재를 다루고 있는 이 소설은 김애현 특유의 발랄한 표현방식과 생동감 있는 인물묘사로 무거움이 상쇄된다. 소설 중간 중간 삽입된 호세의 이야기도 이 소설의 매력을 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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