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ia 제20호 - Spring, 2011
아시아 편집부 엮음 / 도서출판 아시아 / 2011년 3월
평점 :
품절


 

 

   《아시아》2011 봄호는 '아시아는 아시아를 어떻게 고민해 왔나'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엮고 있다. "자신의 눈으로 자신을 보자는"《아시아》의 취지를 환기시킨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이 타고르와 안중근의 글이다. '동양과 서양 East and West'의 차이를 다루는 글에서 타고르는 영혼의 본질이나 모든 생명체에 대한 사랑 같은 정신적인 부분을 중시하는 동양의 예를 들며 서양의 기계주의를 비판하고 있다. 동양과 서양이 한데 어우러지지 못하는 것, 서양의 어느 시인이 동서양의 차이점에 대해 논하며 "둘이 절대 만나지 않을 것"이라고 했던 이유로 정신과 물질의 마찰을 들고 있는 것이다. "둘이 만날 것이라는 진정한 조짐은 아직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그 이유는 서양이 동양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 인간성을 보낸 것이 아니라 단지 기계를 보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유럽 출신의 함마르그렌이라는 사람의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 모한 로이의 작품을 읽고 감동해서 인도로 날아와 봉사활동을 했던 이 젊은 유럽인에게 타고르는 적지 않이 감동을 받았던 모양이다. "내가 가장 값지게 생각하는 것은 그의 친절한 봉사의 기억이 아니라 흉악한 시대에 쓰러져 무시하거나 모욕하기 쉬운 사람들에게 그가 전한 존경이라는 귀한 선물"이라면서 무명의 유럽 청년이 전해온 서양의 기사도 예의를 회상하고 있다. 타고르는 이 청년을 통해 동양과 서양의 결속 희망을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이기주의가 바탕이 된 관료적 형식주의와 물질만능주의로 물든 서양에 대한 인상 역시 편견이 아닌가 돌아보게 만든다. 타고르의 주장대로 "분별없는 경멸"을 경계한다면 동양과 서양의 진정한 이해의 길이 더 가깝지 않을까 생각했다. 

   옥중에서 집필된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은 읽는 내내 가슴이 답답했다. 슬픔과 분노 때문에 문장이 꿈틀거릴 정도이다. 죽음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도 조국의 현실을 슬퍼하고 걱정했던 그의 글을 보면서 부끄러운 마음이 솟구쳤다. 내가 소속되어 있는 이 나라에 대한 존경과 애정이 나에게는 결여되어 있는 것 아닌가 모르겠다.

 

 

   "이 사막의 광휘 속에서, 언어를 넘어선 언어를 찾는 탐색인 안전한 글쓰기라는 피난처 속에서, 집단적인 자기 파먹기의 모든 광기를 완전히 지워버리려고 노력함으로써 다시 한 번 '내면의 언어'를 발견하는 것, 그것만이 우리의 비옥한 고향땅으로 남아 있다." 아자데 세이한의 <증언의 시'로서의 자서전>이라는 제목의 첫머리 문장이다. 이 글에서 그는 '나즘 히크메트'의 작품과 유배문학이 처한 독특한 위치에 대해 논하고 있다. 나즘 히크메트는 터키를 대표하는 시인이다. 혁명운동과 공산당 입당으로 그의 삶은 순탄치 않았다. 체포와 석방, 이국에서의 생활. 그의 시는 그래서  '증언의 시'이자 '유배시'로 큰 울림을 주고 있다. <서글픈 자유>라는 시에는 타고르의 기계주의 비판과 일치하는 문장이 있어 눈길을 끈다. "기계로서, 번호판으로서, 연장으로서가 아니라- 사람들로서 우리 살아야 한다!" 이번 호에 실린 히크메트의 세 편의 시는 백석 시인이 번역했다고 한다.

 

 

   이번 호에는 개인적으로 반가운 이름들이 눈에 많이 띈다. 아시아의 큰 관점으로 신동엽의 문학을 새롭게 조명하는 기고란, 신경림 시인의 신작시와 소설가 김종광의 단편. 김종광은 <아홉 살배기 한숨>에서 원인 모를 한숨병에 걸린 어린 아들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가족의 해프닝을 유쾌한 필치로 터치하고 있다. 시크교 폭동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모젤>이라는 작품은 세 편의 단편 가운데 가장 인상적이었다. 퇴폐적이라고 할 만큼 자유분방한 모젤이라는 여인이 허울 뿐인 종교인을 구원하는 내용이다. 사랑하는 여인이 죽음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지만 종교적 형식을 고집하면서 발만 동동구르고 있는 종교인과, 그의 손을 잡아 몸소 행동하도록 이끄는 모젤의 대조적인 모습은 많은 생각을 던져준다. 벌거벗은 몸뚱이로 입에서는 피를 철철 쏟아내면서, 터번을 내미는 손을 뿌리치는 모젤의 한마디가 통쾌하다. "치우세요, 당신의 종교 따위." 강렬한 작품이다.

  

 

   "간절하더라도 '막연한' 것은 언제나 순서가 뒤로 밀린다. 사소하지만 당장 필요한 것이 우리의 일상에서 우선순위를 차지한다. 그래서 삶은 사소한 것들로 가득 채워진다. 진실로 중요한 것은 결국 한 번도 제대로 취급받지 못한 채 일상에 묻혀 버린다. 정말 해보고 싶었던 것은 모두 무덤 뒤의 날들로 미뤄둔 채 마침표를 찍어야 하는 게 인생일지 모른다."

 

 

   책의 머리말 가운데 한 부분이다. 아시아는 아시아를 어떻게 고민해 왔나, 라는 거창한 주제보다도 가장 일상적이고 사소해 보이는 저 문장이 내 마음에 큰 울림을 주었다. 사실 조금 충격적이었다. 단순히 고개만 끄덕이고 지나칠 일이 아닌 것 같다. 왜 우리의 마음은 이토록 '먼 데'만 향해 나아가는 것일까. 경계할 일이다. 신경림 시인의 신작시 <먼 데, 그 먼 데를 향하여>는 그러나 그 '돌아올 수 없는, 그 먼 데'를 향하는 것은 결국 돌아오기 위한 여정임을 시사하고 있다. 사소한 것들로 채워지는 일상, 헛되이 도는 발길은 결국 가장 중요하고 깊은 부분으로 향하는 과정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면 일상의 모든 부분이 귀하고 중요한 가치로 빛난다. 그리고 봄은, 또 이렇게 돌아와 꽃을 피워내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숨겨진 심리학 - 최고의 프로파일러가 알려주는 설득과 협상의 비밀
표창원 지음 / 토네이도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표창원 교수의 신간이다. 범죄심리를 비즈니스에 적용시킨 점이 흥미롭다. 흉악한 범죄자들을 상대하는 프로파일러와 비즈니스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이지만, 저자의 입장은 다르다. 피의자(혹은 증인, 피해자)와 면담을 통해 사건의 진실을 캐내는 고도의 심리전략은 경쟁이 치열한 비즈니스 현장에서도 유용하다는 것이다. 수사 현장과 마찬가지로 비즈니스 현장 역시 상대가 원하는 것과 내가 원하는 것 사이에서 원만한 합의점을 찾아내는 것이 목적이다. 《숨겨진 심리학》은 표창원 교수가 다양한 사건 현장에서 터득한 설득과 협상의 암묵지라고 할 수 있다. 

 

 

   협상의 현장에서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이 '정보'이다. 수사 현장에서 피의자나 증인의 거짓증언은 사건에 큰 혼선을 초래한다. 수사는 원점으로 돌아가고, 그만큼 시간과 인력 낭비가 심해지는 것이다. 비즈니스 현장에서도 마찬가지.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고의적으로 잘못된 정보를 뿌리는 일은 흔하다. 그러므로 자기가 입수한 정보의 '정확성'에 대해서 항상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그러하듯 상대 역시 맹수의 눈으로 나의 정보를 노리고 있다는 것도 잊어서는 안되겠다. 

 

 

   정확한 정보를 입수했다면 이제 본격적으로 설득과 협상의 테이블에 앉아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설득이나 협상의 결과는 '말'을 얼마나 잘하는가에 달렸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다르다. 인간의 의사소통에서 표정, 눈빛, 자세 같은 '몸짓언어'가 차지하는 비중이 55%에 달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고 한다. 말투나 음정, 음색, 빠르기나 높낮이, 호흡 같은 음성 표현이 38%이고, 마지막으로 단어나 문장 표현에 따른 의사 소통은 고작 7%에 머문다고 한다. 입으로는 얼마든지 거짓을 만들 수 있지만, 숨겨진 무의식이 우리 몸을 통해 진실을 드러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협상 테이블에서 '말'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비언어 커뮤니케이션, 즉 '몸짓언어' 역시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상대의 몸짓언어를 관찰하는 동시에 상대에게 신뢰감을 줄 수 있는 몸짓언어를 구사하는 것도 설득의 중요한 요소로 작용할 것이다.

 

 

   범죄 현장에서의 면담이나 비즈니스 현장의 협상 자리는 그 분위기나 목적 면에서는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결국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라는 것이 저자의 입장이다. 책에는 사건 현장에서 벌어지는 실제 사례들, 특히 피의자 면담 과정이 자주 언급된다. 아무리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도 진실하게 접근하면 끝내 마음의 방어막을 허물고 진실을 털어놓는다. 비즈니스 현장에서도 이 법칙을 적용할 수 있다. 정확한 정보나 유리한 조건을 쥐고 있어도 상대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쉽지 않다. 상대 역시 자기 나름의 유리한 조건과 정보를 쥐고 있으면서 이쪽을 탐색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고도의 심리전략에서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상대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냉정해 보이는 프로파일러의 주장이다. 표창원 교수는《숨겨진 심리학》에서 진실한 존중과 배려를 통해 상대에게 신뢰를 심어줄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실제 사례들과 함께 제시하고 있다. 비즈니스 현장 뿐 아니라 다양한 인간관계에 유용할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노자 - 자연과 더불어 세계와 소통하다, 완역결정판
노자 지음, 김학주 옮김 / 연암서가 / 2011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자연과 더불어 세계와 소통하는 道





  • 만족할 줄 알면 욕을 당하지 않고, 멈출 줄 알면 위태롭게 되지 않으며, 오래도록 자신을 보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제44장 -






   노자의 이름은 무척 친숙하다. 그 사상을 대표하는 무위자연無爲自然 역시 마찬가지. 주입교육의 힘인 것 같다. 공자 인의예지, 노자 무위자연, 맹자 성선설, 순자 성악설. 앵무새처럼 암기했었다. 열넷 열다섯 먹은 우리에게는 최선의 공부법이었던 것 같다. 다른 건 몰라도 공자나 노자의 사상을 그때 제대로 이해하기란 어려웠을 것이다. 이제 나도 나이를 먹었다.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배우고 싶은 것이 많다. 살아갈수록 나의 어리석음을 절감하기 때문이다. 나는 다양한 책 속에서 지혜를 찾으려고 애썼다. 그런데 이상하다. 좀체 나는 지혜로워지는 것 같지 않다. 그것을 증명하는 것이 곤궁한 삶이다. 나는 여전히 삶이 어렵고 버겁다. 습관처럼 또 책을 들었다. 이번엔 노자다.




   요즘 사람들은 공부를 많이 하는 것 같다. 겨우 말을 떼는 시기부터 죽음이 가까운 노년에도 배움을 쉬지 않는 이들이 많다. 그런데 그 배움은 무엇을 위한 것일까. 묻지 않을 수 없다. 배움은 사람들을 지혜롭게 하여 삶을 나아지게 만드는 것이 마땅하지 않은가. 그런데 별로 나아지는 것 같지 않다. 오히려 나빠지는 것 같다. 행복지수는 낮아지고 자살률은 매년 증가하고 있다. 딱한 일이다. 우리는 왜 여전히 어렵게 살고 있을까. 나는 노자에게서 이 문제의 답을 찾을 수 있었다. 공부를 이렇게나 했는데 왜 똑똑해지지 않을까요. 왜 여태 불행할까요. 노자에게 묻는다면, 그는 이렇게 답할 것이다. 바로 그 때문이라고, "학문을 끊어버리면 걱정이 없게 된다"고.



   노자 사상은 '무無'와 '자연自然'에서 출발한다. '아무것도 없다'는 '무無'는 '도道'의 근원적인 상태이다. 그리고 여기서 무위無爲, 무지無知, 무사無事, 무욕無欲, 무아無我의 개념이 발전한다. '자연自然'이란 '스스로 그러한 것', '저절로 그러한 것'을 의미하고, 이것은 '도道'를 따르는 자세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노자 사상, 도가의 기본 가르침이다.



  •    세상 사람들은 모두 아름답게 보이는 것을 아름다운 것이라 여기고 있지만 그것은 추한 것일 수도 있다. 모두가 착하게 보이는 것을 착한 것이라 여기고 있지만 그것은 착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본시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상대적인 뜻에서 생겨났고, 어려운 것과 쉬운 것도 상대적인 입장에서 이루어지며, 긴 것과 짧은 것도 상대적으로 비교하는 데서 있게 되고, 높은 것과 낮은 것도 상대적인 관념에서 있게 되며, 음악과 소리도 상대적인 소리의 조화의 구별이며, 앞과 뒤도 상대적인 개념의 구별에 불과하다. - 제2장



   모든 것은 텅 빈 것, 곧 무無에서 나왔다는 전제에서 분별심分別心은 무의미한 것이다. 따라서 노자는 자기 위주의 생각을 버리라 하였다. 일반적인 가치판단은 상대적인 것일 뿐 절대적인 것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하나의 가치는 그 반대의 가치도 함께 낳는다고 했다. 사랑이 있으면 미움이 생기고, 착한 것이 있으면 나쁜 것이 생긴다는 말이다. 그러면서 유가에서 내세우는 어짊, 의로움, 지혜, 효도, 자애, 충성 같은 윤리도 '혼란의 산물'일 뿐이라 지적한다.



  • 위대한 도道가 무너지자 어짊과 의로움이 생겨났다. 지혜가 생겨나면서 큰 거짓이 존재하게 되었다. 집안 사람들이 화목하지 않게 되자 효도와 자애가 생겨났다. 국가가 혼란해지자 충신이 생겨났다. - 제18장


   노자는 의식적이고 인위적인 모든 것을 부정하고, 소박하고 자연스럽고 맑고 텅 비고 고요한 상태를 유지하며 살 것을 강조한다. 학문이라는 것도 의식적이고 인위적인 것이다. 이는 혼란을 일으키고 인간 본성을 해치는 일이 된다. 그러므로 "공부하지 않는 것을 공부하는 것으로 삼"으라 하였다.



  • 죄는 욕망을 이루려는 것보다 더 큰 것이 없고, 화는 만족할 줄 모르는 것보다 더 큰 것이 없으며, 허물은 물건을 얻으려고 애쓰는 것보다 더 큰 것이 없다. - 제46장



   의식적으로 잘 살려고 하지 말라는 노자의 가르침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인다면 현실도피적이라 할 수도 있겠다. 너무 비현실적인 것 아니냐고 말이다. 그런데 노자 사상은 비현실이 아니라 초현실, 곧 현실을 뛰어넘은 현실이다. 무위無爲, 무사無事,무욕無欲을 실천하는 것은 시시때때로 변모하는 일시적인 가치세계에서 자유롭고 편안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 위한 것이다.




   노자와 그의 사상에 대해서는 다양한 추측과 의견이 엇갈린다. 분분한 의견과 추측을 정리해 보면, 노자는 기원전 6세기 경 초나라 사람으로 춘추시대 말기 주나라에서 관리직을 맡은 학자였다. 성은 이李이고 이름은 이耳, 자는 담聃이다. 노담老聃이라고도 한다.《사기》중 <노자열전>에는 노자를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 "이이李耳는 무위함으로써 스스로 변화해 가고, 맑고 고요함으로써 스스로 올바르던 사람이었다."


   노자의 저작 시기 역시 불확실하다. 노자 사상은 후세로 전해 내려오면서 많은 사람들의 손을 거쳐 고쳐지거나 덧붙여졌다. 그래서 내용이나 체계에서 혼란이 있는 부분도 있다. 그러나 이 작은 결점이 노자 사상의 핵심을 손상시키지는 못할 것이다. 노자 사상의 핵심은 '만족'이다. 그저 되어가는 대로 받아들이며 흘러가라는 노자의 가르침은 어쩌면 이 어지러운 시대에 가장 현실적인 충고가 아닐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스터 피넛 1
애덤 로스 지음, 변용란 옮김 / 현대문학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중간은 원래 그런 거야. 스스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보다 숨을 더 오래 참을 때랑 같아. 정신을 잃기 직전, 수면으로 올라오기 직전의 지점이지. 고개를 오르는 마지막 단계, 내려가기 직전에 제일 높은 부분. 모르겠어?" (1권 _ 30쪽)


 

   '중간'에 대한 저 문장은 나를 아뜩하게 만든다. 반복해서 읽어보아도 마찬가지다. 궁극의 한계점, 그 코앞에 아슬아슬 붙들려 있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돌아갈 수도 나아갈 수도 없는 끔찍한 무력감과 분노를. 데이비드 페핀 역시 바로 그 '중간'에 얽매여 있다. 130kg의 거구인 아내 앨리스와 함께다. 세 번의 유산 경험으로 두 사람의 결혼생활은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상태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커다란 구멍 같다. 구멍을 피해 페핀은 다른 여자의 구멍 속으로 도망친다. 한편 앨리스는 집구멍에 홀로 남아, 아니 구멍 자체가 되어 끝없는 허기와 싸운다. 앨리스의 다이어트도 끝이 없다.

 



  "우린 그저 빙글빙글 돌고 있을 뿐이야."(2권 _ 207쪽)


 

   700쪽에 육박하는 이 소설의 중심 뼈대는 이렇다. 결혼생활의 권태가 극에 달한, "그저 빙글빙글 돌고 있을 뿐"인 부부의 이야기. 별로 특별할 것도 놀랄 것도 없는 흔해빠진 소재이다. 굳이 소설로 읽을 필요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흔해빠졌다. 이게 다라면 말이다. 지레 실망할 것 없다. 이 소설의 특별함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미스터 피넛>은 액자식 구성을 취하고 있다. 페핀과 앨리스 부부의 이야기 안에 페핀이 써 나가는 소설이 동시에 진행된다. 독자는 어디까지가 페핀의 환상(소설)이고 어디까지가 부부의 현실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1권 후반부 정도까지는 페핀의 소설이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도 알아채기 힘들다. 작가는 뫼비우스의 띠와 같은 구성을 목표로 삼았다고 했는데, 성공한 것 같다. 데이비드 페핀과 두 형사- 해스트롤과 셰퍼드 부부의 이야기가 뫼비우스의 띠처럼,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긴 악몽처럼 맞물려 있다.

 

 

  왜 악몽이냐. "그저 빙글빙글 돌고 있을 뿐"이라서 그렇다. 소설에 등장하는 세 남자와 그의 아내들 모두 "그저 빙글빙글 돌고 있"다. 문제는 소통불능.



   "나는 당신에 대해서 모르지만, 우리는 뭔가 이야기하고 싶고 행동을 하고 싶어하면서도 그럴 수 없는 또 다른 자아를 언제나 데리고 돌아다니는 듯한 기분이 들어요." (1권 _ 81쪽)


 

   정신적 허기를 채우기 위해 폭식을 하는 페핀의 아내 앨리스, 어느 날 갑자기 침대에 누워 한발짝도 움직이지 않는 해스트롤의 아내 한나, 남편의 습관적 외도에 대한 복수로 청소업체 직원을 유혹하는 해스트롤의 아내 마릴린. 아내들은 이같은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남편에 대한 불평을 터뜨리고 있다. 남편들은 집 밖을 뛰쳐나가 다른 여자 품을 찾거나 아내를 죽이는 상상이나 하고 앉았다. 아내들은 고독하고 남편들은 죄책감에 시달린다. 그러면서 서로의 주변만 "그저 빙글빙글 돌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빙글빙글 돌고 있"는 상태는 끝나지 않을 것처럼 "빙글빙글 돌고 있"다.

 

   아내를 기다리는 해스트롤에게 "결혼은 긴 기다림이었다". 비단 해스트롤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우리의 이야기는 둘째치고 우선 소설 속 등장인물들에게 결혼생활이 '긴 기다림'인 것만은 자명해 보인다. 기다림은 큰 문제가 아니겠지만, 소설의 현실은 잔혹하다. 마침내 남편들이 아내를 기다리게 되었을 때, 아내들은 죽고 없다. 가질 수도 없는 아이를 끊임없이 생각했던 앨리스처럼 페핀은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집'을, 이제서야 찾는다. "하느님, 저를 집에 데려다주십시오."

 

 

   페핀의 상상대로 아내는 죽었지만, 페핀은 암울하다. 그토록 바라던 '자유'를 획득했는데, 페핀은 왜 암울한 것일까. 페핀이 바라던 '그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에게 주어진 '자유'는, 그가 '자유'라고 '상상'했던 그것은 악몽이 구체화된 암울한 현실을 재현해내고 있을 뿐이다. 페핀은 앨리스에게, 집으로 '돌아가기' 원한다. 여기서 이야기는 끝을 맺는, 것일까. 아니다. 소설에 등장하는 청부 살인업자 '뫼비우스'의 말처럼 "결말이 없"는 것이다. 2권 끝부분에서 페핀은 앨리스에게 돌아가기를 원한다. 그리고 1권으로 돌아오면, 페핀은 다시, 앨리스의 죽음을 상상하면서 "서로의 주변을 그저 빙글빙글 돌고 있을 뿐"인 결혼생활을 이어나가는 것이다. 섬뜩하지 않은가. 가까스로 깨어났다 다시 눈을 감았을 때 다시 이어지는 끈질긴 악몽 같다. 내용뿐 아니라 구성 면에서도 철저하게 악몽을 실현하고 있는 작가의 치밀함이 놀라울 따름이다.

 

 

   앞서 언급되었던 '뫼비우스의 띠'는 에셔(Maurits Cornelis Escher 1898 ~ 1972) 작품과 함께 이 소설을 구성하는 주요한 요소이자 이해를 돕는 열쇠가 된다. 소설에는 히치콕의 삶과 영화작품들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하는데, '벗어날 수 없는 악몽'의 이미지가 몽환적으로 때로는 희극적으로 이어지는 소설의 분위기와 잘 어우러진다. 그리고 가장 궁금해 할,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미스터 피넛'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겠다. 서스펜스(suspense)를 남겨두겠다.

 

 

   소설 등장인물 중 셰퍼드 형사는 잘 알려진 영화 <도망자>의 실제 주인공 샘 셰퍼드를 모델로 하고 있다. 1954년 7월 4일 당시 외과의사였던 샘 셰퍼드는 아내 살해 혐의로 체포된다. 샘 셰퍼드의 이야기는 TV드라마와 영화로 수없이 리메이크되어 잘 알려져 있지만, 끔찍한 결혼의 악몽을 그리고 있는 이 소설에서 재구성된 그의 이야기는 또 다른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 뫼비우스의 띠2 (불개미_1963) : 에셔 (Maurits Cornelis Escher 1898 ~ 1972)


 

 

   유니버설 웨이트 타로카드 - 펜타클 2(TWO OF PENTACLES)에는 뫼비우스의 띠를 들고 서 있는 남자가 그려져 있다. 해석은, 관점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지만, 주요 키워드는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상황, 머릿속에서 맴도는 생각'이다. 벗어날 수 없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뫼비우스의 띠'의 이미지와 맞아떨어지는 해석이다. 아무리 좋은 상황이라도 그 상황이 반복된다면 권태로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 카드를 '권태' 카드라고도 부른다. 그런데 어떤 카드든 부정적인 측면과 긍정적인 측면을 함께 지니고 있다. 이 카드를 긍정적으로 해석해 볼 수도 있다. 어떤 상황의 유지(維持). 만족할 만한 상황이라면 이보다 좋은 해석도 없을 것이다. 이전에 놓쳤던 기회가 돌아온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뫼비우스의 띠', 아니 삶의 어떤 순간에도 부정적인 것만 있지 않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권태나 절망의 순환고리 안에 있을 때 긍정적인 부분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대개는 긍정적인 부분을 찾을 생각도 못한다. 나중에는 벗어날 생각도 못하고 "그저 빙글빙글 돌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야말로 진짜 악몽이다. 사람과의 관계도 마찬가지. 악몽을 끝내려면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새로운 지점을 향해 발돋움해야 한다. 문제가 무엇인지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생각했으면 행동해야 한다. 놓쳤던 기회를 만회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이 '뫼비우스의 띠'의 교훈이다.

 

 

   페핀의 '끝없는' 불행은 자신을 돌아보지 않은 탓이다. 문제를 회피하고 상대를 비난하며 달아나기만 했기 때문이다. 결혼은 자신의 선택이었지 누구의 강요가 아니었다는 것을 잊었기 때문이다. 굴레를 만든 것이 자신이었듯 굴레를 벗어나는 것도 자기 몫이란 것을 몰랐기 때문이다.

 



   "일단 짝을 이루게 되면 그 사람들은 다음에 오는 단계를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을까요? 결혼은 여러분의 인생을 구원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결혼은 길고 긴 이중 살인 행위의 시작에 불과할까요?" (2권 _ 317쪽)


 

    결혼에 관한 이 한편의 악몽은 "그저 빙글빙글 돌고 있"는 모든 관계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청년정신 - 진정한 혁명과 기적은 한 사람의 내면에서 시작된다
박성길.이완 지음 / 분필"느낌나누기" / 2011년 3월
평점 :
품절


 


   올 겨울, 서른이 되었다. 그 뿐이다. 나이만 처먹은 것이다. 내가 꿈꾸던 서른 살은 이런 것이 아니었다. 내 탓이다. 나는 '개꿈'만 꾸고 자빠져 있었던 것이다. 생각만 열심히 했다. 그리고 돌아서면 금세 타성에 젖어 맴을 돌았다. 제자리걸음이었던 셈이다. 수많은 좋은 책을 읽으면 뭘 하나. 마음이 느끼어 일어나지 않으면 그만이다. 부끄러운 내 나이의 공허를 깊이 반성하는 중이다. 

 


   "늙는 것과 성장하는 것에는 커다란 차이점이 있습니다. 만약 당신이 19살이고 1년 내내 침대에 누워있고 생산적인 일을 전혀 하지 않아도, 당신은 20살이 될 것입니다. 내가 87살이고 침대에서 1년 간 머물고 전혀 무언가를 할 수 없어도, 나는 88살이 될 것입니다. 이처럼 누구나 늙어갈 수는 있습니다. 그것은 어떤 재능이나 능력을 필요로 하지 않지요. 이렇게 나이만 먹는다면, 그 나이에 맞는 역량이나 경험 등 그 어떤 것도 가질 수 없습니다. 하지만 성장하는 것은 이와 전혀 다릅니다. 성장하는 건 도전이고, 어떤 어려움이라도 감수한다는 것입니다. 나이 들어 후회하는 것은 실수한 것이 아니라 하지 못해서입니다. 기억하세요. 늙는 것은 필수입니다. 하지만 성장하는 것은 선택입니다." (261~262쪽)


 

 

   87세에 대학에 입학한 미국의 Ross라는 노인이 졸업식에서 한 말이라고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노인의 말보다도 그의 나이에 주목할 것이다. 그 나이에? 라는 반응을 보일 것이다. '그 나이에?'에는 크게 두 가지 뜻이 담길 것이다. 그 나이에 대학에 입학해서 젊은이들과 공부를 하다니 정말 대단하다,라는 긍정적인 반응. 그 나이에 공부는 해서 뭘 해? 쓸데없는 짓이지,라는 부정적인 반응. 자, 이제 노인의 말을 되새겨 보자.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노인의 근사한 표현을 진부하고 뻔한 말로 요약해서 미안하지만, 결국 그 말이다. 노인에게 나이는 장애가 되지 않았다.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필요했던 것은 간절한 마음 하나면 충분했던 것이다. 그러면 누군가는 반박할 것이다. 간절히 바랐지만 실현되지 않았노라고. 나는 그 누군가를 위한 대답으로 이 책을 소개하고 싶다.

 


   진정한 혁명기적은 한 사람의 내면에서 시작된다 _   청 년 정 신

 

 


   왜 사는가. 웃지 마라. 장난이 아니다. 웃어넘기지 말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야 한다. 나는 왜 사는가. 저마다 조금씩 다른 답들이 나올 것이다. 그렇지만 그 답이 지향하는 것은 하나, 행복이다. 뻔하고 단순한 답. 우리는 행복해지기 위해 산다. 그러면 다음 질문을 던져보자. 나는 지금 행복한가.

 

 

    YES. 그렇다,라고 긍정하는 것에서 <청년정신>은 출발한다. 현재 자기 자신과 생활이 불만족스러운가. 주위의 모든 것이 암울하고 사악하고 적대적인가. 되는 일이 하나도 없는가. 그런데 어떻게 긍정적인 마음을 갖고 세상을 대할 수가 있느냐고, 화를 내고 싶은가. 화를 내도 좋고 절망을 해도 좋다. '마음대로' 해도 좋다. 그 '마음'을 갖고 있는 한 세상은 변함없이 암울하고 적대적일 것이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저 높은 지위를 가진 사람들이나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다. 내 마음이다. 불교에서는 '마음' 없이는 이 세상 어떤 것도 존재할 수 없다고 하였다. 지금 내게 있는 모든 것은 내가 부른 것이라는 것이다. 좋은 마음을 가지면 좋은 것이 오고, 나쁜 마음을 가지면 나쁜 것이 온다는 것이 이치라 하였다. <청년정신>의 'YES'도 그와 상통한다. 자기 내면의 긍정으로 세상의 부정적인 것들을 극복하고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청년정신>은  '나'와 세계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한 구체적인 장()을 펼쳐놓는다. 태도, 습관, 실행. 크게 세 장(chapter)으로 나누고 각 장마다 시계를 구조화해서 '청년정신'의 이론을 체계적이고 알기 쉽게 정리해 놓고 있다. 1장 '태도'는 마음가짐을 다루고 있다. 앞서 얘기했던 긍정적 마인드를 지속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들을 제시한다. 여기서 '지속(持續)'이라는 단어에 주목해야 한다. 긍정적인 마인드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책들은 넘쳐난다. 수많은 자기계발서가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있다. 그런데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실천하는 사람은 흔히 볼 수 없다. 책이 잘못된 것일까. 그렇지 않다. 책을 읽는 사람의 태도가 문제다. 책을 읽을 때는 수긍하고 마음을 다잡다가도 막상 책을 덮으면 그 마음과 생각도 함께 덮여 잊혀지고 마는 것이다. 2장에서 이 문제를 해결할 방안이 제시된다. 긍정적인 사고와 마음가짐을 붙들어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좋은 습관'을 들이면 된다는 것. 이어 3장에서는 긍정적인 태도(마음가짐, 말, 행동)를 구체적으로 실현시키기 위해 중요한 사항들을 정리하고 있다. 인상깊었던 것을 하나 얘기하자면 thank you stone, 일명 '감사의 돌'이다. 어떤 사람이 주머니에 작은 조약돌을 넣어가지고 다니면서 주머니에 돌이 만져질 때마다 고마운 것들을 하나씩 떠올린다는 것이다. 대단한 것들은 아니라도 감사할 것들은 늘 있더라고 했다. 책을 읽을 수 있는 눈이 건강한 것도 감사하고 햄버거 살 돈이 있는 것도 감사하고 그 햄버거를 먹을 입이 있는 것도 감사하고, 감사하고 또 감사한다는 것. 항상 고마움을 잊지 않고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유지하기 위한 작은 실천. 작고 보잘것없는 조약돌을 지혜와 감사의 돌로 만들 수 있는 것도 우리 '마음'이라는 것을 되새긴다.

 

 

   이전 같으면 그저 그런 뻔한 말이라면서 무감동하게 책장을 넘겼을 것이다. 이번에는 달랐다. 한 단어, 한 문장이 부끄럽게 나를 찔렀다. 피할 수도 없고 피해서도 안 되었다. 나는 성장하고 싶으니까. 성장해 나갈 것이니까. 나이를 부끄러워하며 자빠져 있지 않을 거니까. 나이가 들수록 사람이 너그럽고 온화해지느냐 하면 그게 아니더라. 나이 들수록 더 완고해지고 고집스러워진다. 그래서 말도 더 안 듣는다,던 어느 스님의 법문 내용이 떠오른다. 늙거나 젊거나 자기 아집으로 단단하게 벽을 두른 사람들이 있다. "부러지지 않고 죽어있는 날렵한 가지들"(기형도, 노인들)처럼 "추악한" 존재는 성장하기 어렵다. 땅으로 비유하자면, 거칠고 굳은 땅이다. 좋은 씨앗을 뿌려도 온전히 품어내질 못한다. 그 땅은 바로 우리 '마음'과 같다. 어렵고 힘든가. 짜증이 나는가. 그러면 이렇게 말해보자. 생각만 말고 말로 해보자. That's good! 이것은 ~을 할 기회야. 이것이 '청년정신'이다. 눈앞에 주어진 어떤 것도 고맙게 받아들이고 성장의 기회로 삼아 자신의 삶을 발전시켜나가는 것.

 


   어떤 유치원 교사가 아이들을 모아놓고 물었다.

  "얘들아 잘 사는 것이 무엇일까?"

  한 아이가 대답했다.

  "부라보콘을 쌓아놓고 내가 먹을 수 있는 만큼 맘껏 먹는 것입니다."

  그러자 선생님이 다시 물었다.

  "얘들아, 정말 잘 사는 것이 무엇일까?"

  아이들이 대답이 없자 선생님이 말했다.

  "정말 잘 사는 것은 부라보콘을 두 개 사서, 하나는 내가 먹고 하나는 옆에 있는 친구에게 주는 것이란다." (248~249쪽)

 


   누구나 행복을 지향하지만, 그 행복의 조건은 저마다 다르다. 내가 유치원 교사라면 나는 '정말 잘 사는 것'에 대해 정의내리지 않았을 것이다. 가르치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은 영어나 수학처럼 가르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저 유치원 교사는 관계에서의 소통과 사랑을 얘기하고 싶었던 것 같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고, 그 말은 혼자서는 온전히 행복해질 수 없다는 말이다. 행복. 읽거나 생각만 할 것이 아니다. 나도 행복해질 수 있다. 지금 행복한가. YES 그렇다,라고 답하는 것에서 행복은 시작된다.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은 나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가. 그것을 이루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지혜롭게 생각하고 생각을 실행할 때 행복은 실현될 것이다. YES, WEⓡ CAN.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