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 - 자연과 더불어 세계와 소통하다, 완역결정판
노자 지음, 김학주 옮김 / 연암서가 / 2011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자연과 더불어 세계와 소통하는 道





  • 만족할 줄 알면 욕을 당하지 않고, 멈출 줄 알면 위태롭게 되지 않으며, 오래도록 자신을 보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제44장 -






   노자의 이름은 무척 친숙하다. 그 사상을 대표하는 무위자연無爲自然 역시 마찬가지. 주입교육의 힘인 것 같다. 공자 인의예지, 노자 무위자연, 맹자 성선설, 순자 성악설. 앵무새처럼 암기했었다. 열넷 열다섯 먹은 우리에게는 최선의 공부법이었던 것 같다. 다른 건 몰라도 공자나 노자의 사상을 그때 제대로 이해하기란 어려웠을 것이다. 이제 나도 나이를 먹었다.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배우고 싶은 것이 많다. 살아갈수록 나의 어리석음을 절감하기 때문이다. 나는 다양한 책 속에서 지혜를 찾으려고 애썼다. 그런데 이상하다. 좀체 나는 지혜로워지는 것 같지 않다. 그것을 증명하는 것이 곤궁한 삶이다. 나는 여전히 삶이 어렵고 버겁다. 습관처럼 또 책을 들었다. 이번엔 노자다.




   요즘 사람들은 공부를 많이 하는 것 같다. 겨우 말을 떼는 시기부터 죽음이 가까운 노년에도 배움을 쉬지 않는 이들이 많다. 그런데 그 배움은 무엇을 위한 것일까. 묻지 않을 수 없다. 배움은 사람들을 지혜롭게 하여 삶을 나아지게 만드는 것이 마땅하지 않은가. 그런데 별로 나아지는 것 같지 않다. 오히려 나빠지는 것 같다. 행복지수는 낮아지고 자살률은 매년 증가하고 있다. 딱한 일이다. 우리는 왜 여전히 어렵게 살고 있을까. 나는 노자에게서 이 문제의 답을 찾을 수 있었다. 공부를 이렇게나 했는데 왜 똑똑해지지 않을까요. 왜 여태 불행할까요. 노자에게 묻는다면, 그는 이렇게 답할 것이다. 바로 그 때문이라고, "학문을 끊어버리면 걱정이 없게 된다"고.



   노자 사상은 '무無'와 '자연自然'에서 출발한다. '아무것도 없다'는 '무無'는 '도道'의 근원적인 상태이다. 그리고 여기서 무위無爲, 무지無知, 무사無事, 무욕無欲, 무아無我의 개념이 발전한다. '자연自然'이란 '스스로 그러한 것', '저절로 그러한 것'을 의미하고, 이것은 '도道'를 따르는 자세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노자 사상, 도가의 기본 가르침이다.



  •    세상 사람들은 모두 아름답게 보이는 것을 아름다운 것이라 여기고 있지만 그것은 추한 것일 수도 있다. 모두가 착하게 보이는 것을 착한 것이라 여기고 있지만 그것은 착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본시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상대적인 뜻에서 생겨났고, 어려운 것과 쉬운 것도 상대적인 입장에서 이루어지며, 긴 것과 짧은 것도 상대적으로 비교하는 데서 있게 되고, 높은 것과 낮은 것도 상대적인 관념에서 있게 되며, 음악과 소리도 상대적인 소리의 조화의 구별이며, 앞과 뒤도 상대적인 개념의 구별에 불과하다. - 제2장



   모든 것은 텅 빈 것, 곧 무無에서 나왔다는 전제에서 분별심分別心은 무의미한 것이다. 따라서 노자는 자기 위주의 생각을 버리라 하였다. 일반적인 가치판단은 상대적인 것일 뿐 절대적인 것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하나의 가치는 그 반대의 가치도 함께 낳는다고 했다. 사랑이 있으면 미움이 생기고, 착한 것이 있으면 나쁜 것이 생긴다는 말이다. 그러면서 유가에서 내세우는 어짊, 의로움, 지혜, 효도, 자애, 충성 같은 윤리도 '혼란의 산물'일 뿐이라 지적한다.



  • 위대한 도道가 무너지자 어짊과 의로움이 생겨났다. 지혜가 생겨나면서 큰 거짓이 존재하게 되었다. 집안 사람들이 화목하지 않게 되자 효도와 자애가 생겨났다. 국가가 혼란해지자 충신이 생겨났다. - 제18장


   노자는 의식적이고 인위적인 모든 것을 부정하고, 소박하고 자연스럽고 맑고 텅 비고 고요한 상태를 유지하며 살 것을 강조한다. 학문이라는 것도 의식적이고 인위적인 것이다. 이는 혼란을 일으키고 인간 본성을 해치는 일이 된다. 그러므로 "공부하지 않는 것을 공부하는 것으로 삼"으라 하였다.



  • 죄는 욕망을 이루려는 것보다 더 큰 것이 없고, 화는 만족할 줄 모르는 것보다 더 큰 것이 없으며, 허물은 물건을 얻으려고 애쓰는 것보다 더 큰 것이 없다. - 제46장



   의식적으로 잘 살려고 하지 말라는 노자의 가르침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인다면 현실도피적이라 할 수도 있겠다. 너무 비현실적인 것 아니냐고 말이다. 그런데 노자 사상은 비현실이 아니라 초현실, 곧 현실을 뛰어넘은 현실이다. 무위無爲, 무사無事,무욕無欲을 실천하는 것은 시시때때로 변모하는 일시적인 가치세계에서 자유롭고 편안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 위한 것이다.




   노자와 그의 사상에 대해서는 다양한 추측과 의견이 엇갈린다. 분분한 의견과 추측을 정리해 보면, 노자는 기원전 6세기 경 초나라 사람으로 춘추시대 말기 주나라에서 관리직을 맡은 학자였다. 성은 이李이고 이름은 이耳, 자는 담聃이다. 노담老聃이라고도 한다.《사기》중 <노자열전>에는 노자를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 "이이李耳는 무위함으로써 스스로 변화해 가고, 맑고 고요함으로써 스스로 올바르던 사람이었다."


   노자의 저작 시기 역시 불확실하다. 노자 사상은 후세로 전해 내려오면서 많은 사람들의 손을 거쳐 고쳐지거나 덧붙여졌다. 그래서 내용이나 체계에서 혼란이 있는 부분도 있다. 그러나 이 작은 결점이 노자 사상의 핵심을 손상시키지는 못할 것이다. 노자 사상의 핵심은 '만족'이다. 그저 되어가는 대로 받아들이며 흘러가라는 노자의 가르침은 어쩌면 이 어지러운 시대에 가장 현실적인 충고가 아닐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