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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피넛 1
애덤 로스 지음, 변용란 옮김 / 현대문학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중간은 원래 그런 거야. 스스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보다 숨을 더 오래 참을 때랑 같아. 정신을 잃기 직전, 수면으로 올라오기 직전의 지점이지. 고개를 오르는 마지막 단계, 내려가기 직전에 제일 높은 부분. 모르겠어?" (1권 _ 30쪽)
'중간'에 대한 저 문장은 나를 아뜩하게 만든다. 반복해서 읽어보아도 마찬가지다. 궁극의 한계점, 그 코앞에 아슬아슬 붙들려 있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돌아갈 수도 나아갈 수도 없는 끔찍한 무력감과 분노를. 데이비드 페핀 역시 바로 그 '중간'에 얽매여 있다. 130kg의 거구인 아내 앨리스와 함께다. 세 번의 유산 경험으로 두 사람의 결혼생활은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상태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커다란 구멍 같다. 구멍을 피해 페핀은 다른 여자의 구멍 속으로 도망친다. 한편 앨리스는 집구멍에 홀로 남아, 아니 구멍 자체가 되어 끝없는 허기와 싸운다. 앨리스의 다이어트도 끝이 없다.
"우린 그저 빙글빙글 돌고 있을 뿐이야."(2권 _ 207쪽)
700쪽에 육박하는 이 소설의 중심 뼈대는 이렇다. 결혼생활의 권태가 극에 달한, "그저 빙글빙글 돌고 있을 뿐"인 부부의 이야기. 별로 특별할 것도 놀랄 것도 없는 흔해빠진 소재이다. 굳이 소설로 읽을 필요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흔해빠졌다. 이게 다라면 말이다. 지레 실망할 것 없다. 이 소설의 특별함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미스터 피넛>은 액자식 구성을 취하고 있다. 페핀과 앨리스 부부의 이야기 안에 페핀이 써 나가는 소설이 동시에 진행된다. 독자는 어디까지가 페핀의 환상(소설)이고 어디까지가 부부의 현실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1권 후반부 정도까지는 페핀의 소설이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도 알아채기 힘들다. 작가는 뫼비우스의 띠와 같은 구성을 목표로 삼았다고 했는데, 성공한 것 같다. 데이비드 페핀과 두 형사- 해스트롤과 셰퍼드 부부의 이야기가 뫼비우스의 띠처럼,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긴 악몽처럼 맞물려 있다.
왜 악몽이냐. "그저 빙글빙글 돌고 있을 뿐"이라서 그렇다. 소설에 등장하는 세 남자와 그의 아내들 모두 "그저 빙글빙글 돌고 있"다. 문제는 소통불능.
"나는 당신에 대해서 모르지만, 우리는 뭔가 이야기하고 싶고 행동을 하고 싶어하면서도 그럴 수 없는 또 다른 자아를 언제나 데리고 돌아다니는 듯한 기분이 들어요." (1권 _ 81쪽)
정신적 허기를 채우기 위해 폭식을 하는 페핀의 아내 앨리스, 어느 날 갑자기 침대에 누워 한발짝도 움직이지 않는 해스트롤의 아내 한나, 남편의 습관적 외도에 대한 복수로 청소업체 직원을 유혹하는 해스트롤의 아내 마릴린. 아내들은 이같은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남편에 대한 불평을 터뜨리고 있다. 남편들은 집 밖을 뛰쳐나가 다른 여자 품을 찾거나 아내를 죽이는 상상이나 하고 앉았다. 아내들은 고독하고 남편들은 죄책감에 시달린다. 그러면서 서로의 주변만 "그저 빙글빙글 돌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빙글빙글 돌고 있"는 상태는 끝나지 않을 것처럼 "빙글빙글 돌고 있"다.
아내를 기다리는 해스트롤에게 "결혼은 긴 기다림이었다". 비단 해스트롤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우리의 이야기는 둘째치고 우선 소설 속 등장인물들에게 결혼생활이 '긴 기다림'인 것만은 자명해 보인다. 기다림은 큰 문제가 아니겠지만, 소설의 현실은 잔혹하다. 마침내 남편들이 아내를 기다리게 되었을 때, 아내들은 죽고 없다. 가질 수도 없는 아이를 끊임없이 생각했던 앨리스처럼 페핀은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집'을, 이제서야 찾는다. "하느님, 저를 집에 데려다주십시오."
페핀의 상상대로 아내는 죽었지만, 페핀은 암울하다. 그토록 바라던 '자유'를 획득했는데, 페핀은 왜 암울한 것일까. 페핀이 바라던 '그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에게 주어진 '자유'는, 그가 '자유'라고 '상상'했던 그것은 악몽이 구체화된 암울한 현실을 재현해내고 있을 뿐이다. 페핀은 앨리스에게, 집으로 '돌아가기' 원한다. 여기서 이야기는 끝을 맺는, 것일까. 아니다. 소설에 등장하는 청부 살인업자 '뫼비우스'의 말처럼 "결말이 없"는 것이다. 2권 끝부분에서 페핀은 앨리스에게 돌아가기를 원한다. 그리고 1권으로 돌아오면, 페핀은 다시, 앨리스의 죽음을 상상하면서 "서로의 주변을 그저 빙글빙글 돌고 있을 뿐"인 결혼생활을 이어나가는 것이다. 섬뜩하지 않은가. 가까스로 깨어났다 다시 눈을 감았을 때 다시 이어지는 끈질긴 악몽 같다. 내용뿐 아니라 구성 면에서도 철저하게 악몽을 실현하고 있는 작가의 치밀함이 놀라울 따름이다.
앞서 언급되었던 '뫼비우스의 띠'는 에셔(Maurits Cornelis Escher 1898 ~ 1972) 작품과 함께 이 소설을 구성하는 주요한 요소이자 이해를 돕는 열쇠가 된다. 소설에는 히치콕의 삶과 영화작품들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하는데, '벗어날 수 없는 악몽'의 이미지가 몽환적으로 때로는 희극적으로 이어지는 소설의 분위기와 잘 어우러진다. 그리고 가장 궁금해 할,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미스터 피넛'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겠다. 서스펜스(suspense)를 남겨두겠다.
소설 등장인물 중 셰퍼드 형사는 잘 알려진 영화 <도망자>의 실제 주인공 샘 셰퍼드를 모델로 하고 있다. 1954년 7월 4일 당시 외과의사였던 샘 셰퍼드는 아내 살해 혐의로 체포된다. 샘 셰퍼드의 이야기는 TV드라마와 영화로 수없이 리메이크되어 잘 알려져 있지만, 끔찍한 결혼의 악몽을 그리고 있는 이 소설에서 재구성된 그의 이야기는 또 다른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 뫼비우스의 띠2 (불개미_1963) : 에셔 (Maurits Cornelis Escher 1898 ~ 1972) 作
유니버설 웨이트 타로카드 - 펜타클 2(TWO OF PENTACLES)에는 뫼비우스의 띠를 들고 서 있는 남자가 그려져 있다. 해석은, 관점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지만, 주요 키워드는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상황, 머릿속에서 맴도는 생각'이다. 벗어날 수 없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뫼비우스의 띠'의 이미지와 맞아떨어지는 해석이다. 아무리 좋은 상황이라도 그 상황이 반복된다면 권태로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 카드를 '권태' 카드라고도 부른다. 그런데 어떤 카드든 부정적인 측면과 긍정적인 측면을 함께 지니고 있다. 이 카드를 긍정적으로 해석해 볼 수도 있다. 어떤 상황의 유지(維持). 만족할 만한 상황이라면 이보다 좋은 해석도 없을 것이다. 이전에 놓쳤던 기회가 돌아온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뫼비우스의 띠', 아니 삶의 어떤 순간에도 부정적인 것만 있지 않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권태나 절망의 순환고리 안에 있을 때 긍정적인 부분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대개는 긍정적인 부분을 찾을 생각도 못한다. 나중에는 벗어날 생각도 못하고 "그저 빙글빙글 돌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야말로 진짜 악몽이다. 사람과의 관계도 마찬가지. 악몽을 끝내려면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새로운 지점을 향해 발돋움해야 한다. 문제가 무엇인지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생각했으면 행동해야 한다. 놓쳤던 기회를 만회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이 '뫼비우스의 띠'의 교훈이다.
페핀의 '끝없는' 불행은 자신을 돌아보지 않은 탓이다. 문제를 회피하고 상대를 비난하며 달아나기만 했기 때문이다. 결혼은 자신의 선택이었지 누구의 강요가 아니었다는 것을 잊었기 때문이다. 굴레를 만든 것이 자신이었듯 굴레를 벗어나는 것도 자기 몫이란 것을 몰랐기 때문이다.
"일단 짝을 이루게 되면 그 사람들은 다음에 오는 단계를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을까요? 결혼은 여러분의 인생을 구원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결혼은 길고 긴 이중 살인 행위의 시작에 불과할까요?" (2권 _ 317쪽)
결혼에 관한 이 한편의 악몽은 "그저 빙글빙글 돌고 있"는 모든 관계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