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ia 제20호 - Spring, 2011
아시아 편집부 엮음 / 도서출판 아시아 / 2011년 3월
평점 :
품절


 

 

   《아시아》2011 봄호는 '아시아는 아시아를 어떻게 고민해 왔나'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엮고 있다. "자신의 눈으로 자신을 보자는"《아시아》의 취지를 환기시킨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이 타고르와 안중근의 글이다. '동양과 서양 East and West'의 차이를 다루는 글에서 타고르는 영혼의 본질이나 모든 생명체에 대한 사랑 같은 정신적인 부분을 중시하는 동양의 예를 들며 서양의 기계주의를 비판하고 있다. 동양과 서양이 한데 어우러지지 못하는 것, 서양의 어느 시인이 동서양의 차이점에 대해 논하며 "둘이 절대 만나지 않을 것"이라고 했던 이유로 정신과 물질의 마찰을 들고 있는 것이다. "둘이 만날 것이라는 진정한 조짐은 아직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그 이유는 서양이 동양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 인간성을 보낸 것이 아니라 단지 기계를 보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유럽 출신의 함마르그렌이라는 사람의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 모한 로이의 작품을 읽고 감동해서 인도로 날아와 봉사활동을 했던 이 젊은 유럽인에게 타고르는 적지 않이 감동을 받았던 모양이다. "내가 가장 값지게 생각하는 것은 그의 친절한 봉사의 기억이 아니라 흉악한 시대에 쓰러져 무시하거나 모욕하기 쉬운 사람들에게 그가 전한 존경이라는 귀한 선물"이라면서 무명의 유럽 청년이 전해온 서양의 기사도 예의를 회상하고 있다. 타고르는 이 청년을 통해 동양과 서양의 결속 희망을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이기주의가 바탕이 된 관료적 형식주의와 물질만능주의로 물든 서양에 대한 인상 역시 편견이 아닌가 돌아보게 만든다. 타고르의 주장대로 "분별없는 경멸"을 경계한다면 동양과 서양의 진정한 이해의 길이 더 가깝지 않을까 생각했다. 

   옥중에서 집필된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은 읽는 내내 가슴이 답답했다. 슬픔과 분노 때문에 문장이 꿈틀거릴 정도이다. 죽음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도 조국의 현실을 슬퍼하고 걱정했던 그의 글을 보면서 부끄러운 마음이 솟구쳤다. 내가 소속되어 있는 이 나라에 대한 존경과 애정이 나에게는 결여되어 있는 것 아닌가 모르겠다.

 

 

   "이 사막의 광휘 속에서, 언어를 넘어선 언어를 찾는 탐색인 안전한 글쓰기라는 피난처 속에서, 집단적인 자기 파먹기의 모든 광기를 완전히 지워버리려고 노력함으로써 다시 한 번 '내면의 언어'를 발견하는 것, 그것만이 우리의 비옥한 고향땅으로 남아 있다." 아자데 세이한의 <증언의 시'로서의 자서전>이라는 제목의 첫머리 문장이다. 이 글에서 그는 '나즘 히크메트'의 작품과 유배문학이 처한 독특한 위치에 대해 논하고 있다. 나즘 히크메트는 터키를 대표하는 시인이다. 혁명운동과 공산당 입당으로 그의 삶은 순탄치 않았다. 체포와 석방, 이국에서의 생활. 그의 시는 그래서  '증언의 시'이자 '유배시'로 큰 울림을 주고 있다. <서글픈 자유>라는 시에는 타고르의 기계주의 비판과 일치하는 문장이 있어 눈길을 끈다. "기계로서, 번호판으로서, 연장으로서가 아니라- 사람들로서 우리 살아야 한다!" 이번 호에 실린 히크메트의 세 편의 시는 백석 시인이 번역했다고 한다.

 

 

   이번 호에는 개인적으로 반가운 이름들이 눈에 많이 띈다. 아시아의 큰 관점으로 신동엽의 문학을 새롭게 조명하는 기고란, 신경림 시인의 신작시와 소설가 김종광의 단편. 김종광은 <아홉 살배기 한숨>에서 원인 모를 한숨병에 걸린 어린 아들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가족의 해프닝을 유쾌한 필치로 터치하고 있다. 시크교 폭동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모젤>이라는 작품은 세 편의 단편 가운데 가장 인상적이었다. 퇴폐적이라고 할 만큼 자유분방한 모젤이라는 여인이 허울 뿐인 종교인을 구원하는 내용이다. 사랑하는 여인이 죽음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지만 종교적 형식을 고집하면서 발만 동동구르고 있는 종교인과, 그의 손을 잡아 몸소 행동하도록 이끄는 모젤의 대조적인 모습은 많은 생각을 던져준다. 벌거벗은 몸뚱이로 입에서는 피를 철철 쏟아내면서, 터번을 내미는 손을 뿌리치는 모젤의 한마디가 통쾌하다. "치우세요, 당신의 종교 따위." 강렬한 작품이다.

  

 

   "간절하더라도 '막연한' 것은 언제나 순서가 뒤로 밀린다. 사소하지만 당장 필요한 것이 우리의 일상에서 우선순위를 차지한다. 그래서 삶은 사소한 것들로 가득 채워진다. 진실로 중요한 것은 결국 한 번도 제대로 취급받지 못한 채 일상에 묻혀 버린다. 정말 해보고 싶었던 것은 모두 무덤 뒤의 날들로 미뤄둔 채 마침표를 찍어야 하는 게 인생일지 모른다."

 

 

   책의 머리말 가운데 한 부분이다. 아시아는 아시아를 어떻게 고민해 왔나, 라는 거창한 주제보다도 가장 일상적이고 사소해 보이는 저 문장이 내 마음에 큰 울림을 주었다. 사실 조금 충격적이었다. 단순히 고개만 끄덕이고 지나칠 일이 아닌 것 같다. 왜 우리의 마음은 이토록 '먼 데'만 향해 나아가는 것일까. 경계할 일이다. 신경림 시인의 신작시 <먼 데, 그 먼 데를 향하여>는 그러나 그 '돌아올 수 없는, 그 먼 데'를 향하는 것은 결국 돌아오기 위한 여정임을 시사하고 있다. 사소한 것들로 채워지는 일상, 헛되이 도는 발길은 결국 가장 중요하고 깊은 부분으로 향하는 과정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면 일상의 모든 부분이 귀하고 중요한 가치로 빛난다. 그리고 봄은, 또 이렇게 돌아와 꽃을 피워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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