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빛 미스터리, 더 Mystery The 5
이누이 루카 지음, 추지나 옮김 / 레드박스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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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릴 때 말도 안 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것은 맑고 투명하고 눈부신 빛덩어리였다. 일반적인 빛과 다른 점이 있었는데, 무구(無垢)와 조롱이 동시에 느껴지는 미묘한 웃음이었다. 투명하고 창백한 빛무리는 웃음이 만드는 물결 같았다. 윤곽이 없는 얼굴처럼 보이는 그것은 목과 허리 팔 다리 없이 두 그루 밤나무 사이에 동그랗게 떠 있었다. 내가 앉거나 서거나 정확히 내 눈 앞에 떠서 미묘한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어느 날 나는 그것을 가리키며 아빠에게 물었다. 저거 뭐야? 아빠는 아무렇지 않게 그것이 달이라고 말해주었다. 유치원에 들어가기 전이었지만 달이 뭔지는 알고 있었다. 내 눈에 보이는 저것이 아빠 눈에는 안 보인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아챘다. 그때 처음으로 나는 그것이 무서워졌고 그것을 보는 나 자신도 두려워졌다. 그날 이후 나는 그것에 대해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말할 수 없었다. 말이 안 되는 것이었으니까. 눈 없이 입 없이 웃는 말도 안 되는 빛덩어리. 최초의 고독은 그런 형상으로 나를 찾아왔다.

 

    상상으로 그린 아키코의 입술과 실제 입술은 너무나도 동떨어져 있었다. 기형이라고 차마 부를 수조차 없었다. 아키코의 입술은 새의 부리처럼 조그맣고 뾰족한 데다 윗입술에는 흰색과 갈색 줄무늬가 들어간 더듬이 같은 수염이 빼곡하게 났다. 쏙독새의 수염이다. 나는 무심코 뒷걸음질쳤다. 등에 문이 닿았다. 동요하는 나를 보고 아키코는 더 이상 입을 감추지 않았다. 아키코의 눈에서 또 눈물이 넘쳐흘렸다. ㅡ <쏙독새의 아침> 중에서

     다른 사람 눈에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있으면서 없는, 부재의 형식으로만 존재하는 소외된 무엇. 유령을 소재로 하는 공포물에는 그 밑바닥에 고독을 깔고 있다. 거의 모든 유령물에서 주인공은 유령이 아니라 유령을 보거나 느끼는 자이다. 눈에 안 보이는(보고 싶지도 않은) 세계를 감각하는 주인공 역시 유령 취급을 받게 된다. 사람들은 그의 말을 믿지 않고 들으려고도 않는다. 공포 때문이다. 죽음에 대한 공포. 그것은 철저히 혼자되는 것, 즉 고독에 대한 공포이다. 최근에 본 공포물로는 <컨저링>이 기억에 남는다. 유령이 실린 사람이 스스로의 고독(공포)과 사투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나는 눈물을 흘리기까지 했다.

   

   암흑이 녹아든 밤바다에 은하를 이루어 빛나는 갯반디는 정말로 예뻤다. 어째서 예쁠까, 예쁘다고 생각하는 마음은 뭘까. 데쓰히코는 생각했다. 다카시가 보는 세상은 어떤 식일까, 다른 사람이 보는 세상은 어떨까? 내가 아무리 추해도 내가 보는 것까지 추하다고 할 수는 없잖아. 언젠가 다카시는 그렇게 말했다.  ㅡ < 여름 빛 > 중에서

 

    《여름 빛》은 매혹적인 방식으로 유령적인 존재들의 슬픔을 다룬다. 2부로 구성된 이 소설집은 인간의 감각 능력을 소재로 한 여섯 편의 작품을 싣고 있다. 표제작 <여름빛>은 2차 세계대전 말, 세토우치의 어촌으로 피난 온 데쓰히코와 그 마을에서 소외당하는 다카시의 우정을 그린다. 다카시의 얼굴 절반은 "먹물을 들이부은 듯한 새카맣고 큰 반점"이 뒤덮고 있다. 마을 사람들은 그 불길한 반점이 상괭이(쇠돌고래)의 저주라고 생각한다. 다카시가 배 속에 있을 때, 배를 곯던 다카시의 어머니가 해안가에 떠밀려온 상괭이 고기를 먹었기 때문이다. 마을 사람들에게 상괭이는 "신령님의 사자"였다. 아무리 굶주려도 상괭이를 먹는 것은 금기(禁忌)였다. 그 금기를 깨고 태어난 다카시의 흉측한 반점은 그래서 공포의 대상이 된다. 다카시에게는 죽음을 예견하는 능력이 있다. 곧 죽을 사람을 보면 다카시 눈동자 안에 숨겨진 갯반디들이 푸른빛을 깜박이며 반짝거리는 것이다. 다카시의 흉측한 얼굴과 초인적 능력을 마을 사람들은 저주의 확실한 징표로 여긴다. 갯반디의 반짝임처럼 아름답고 구슬픈 정서를 깔고 있는 <여름빛>은 '다름'에 대한 사람들의 공포와 폭력을 섬세하게 포착한 작품이다.

 

     "땅을 차." 하나, 둘, 셋에서 마코토와 다쿠는 뛰어올랐다. 비행기 같은 활주도 없이 시트 등받이에 몸이 젖혀지는 압력도 없이 아무렇지도 않게 마코토는 다쿠와 함께 공중에 떠올랐다. (...) 다쿠가 묻는다. "무섭지 않아?" 마코토는 볼살이 흔들릴 정도로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무서울 리 없잖아." "그럼 이 일대에서 가장 높은 곳까지 가자."  ㅡ < out of tiis world > 중에서

 

    모든 작품들에 초인적인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등장한다. 유령을 보거나(<쏙독새의 아침>), 저주를 내리거나(<백 개의 불꽃>), 타인의 감정이 풍기는 냄새를 맡거나(<바람, 레몬, 겨울의 끝>), 하늘을 날거나(<out of this world>), 무시무시한 식탐을 얻게 되기도(<이>) 한다. 보통 사람은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는... 다다를 수 없는 세계에 발 디딘 자들의 고독이 앓음답게 형상화되어 있다. 이누이 루카가 보여주는 그 세계는 기괴하고 폭력적이지만 불쾌하지 않고 오히려 아름답다. 인간에 대한 이해와 연민이 녹아 있어서 그렇다.

 

    츠마는 여전히 내게 말을 거는 걸 멈추지 않았다. 말은 곧 노래가 되었다. 모르는 선율의 조용하고 종잡을 수 없는 노래였다. 그 나라 동요 같은 것이리라. 듣고 있으면 낯선 숲 속 오지로 가늘게 흐르는 시냇물이 눈앞에 떠오르는 것 같았다. 노래와 함께 녹차 향기가 부드럽게 퍼졌다.  ㅡ < 바람, 레몬, 겨울의 끝 > 중에서

 

    가장 좋았던 작품은 <바람, 레몬, 겨울의 끝>이다. 남다른 후각 능력을 가진 인물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타인의 감정이 풍기는 냄새를 맡을 수 있는 아야코와 동남아 어딘가에서 몸을 팔려온 소녀 츠마가 단단한 철문을 사이에 두고 서서히 마음을 열어가는 과정이 감동적으로 그려진다. 폭력과 죽음 앞에 내던져진 츠마에게서 맡아졌던 희망의 냄새는 암울한 세계에 남겨진 아야코에게, 책을 읽는 모두에게 눈물겨운 위로를 전한다. “제가 쓰는 소설 마지막에는 늘 희망을 남기고자 합니다. 제게 희망이란 세계를 긍정할 수 있는 힘입니다. 오늘 하루는 힘들었지만 내일은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그러니까 일단 내일까지는 열심히 살아보자. '이런 마음'으로 허구의 세계 속에서라도 위로와 구원을 그리고자 합니다.” 이누이 루카가 인터뷰에서 했다는 말이다. 《여름 빛》은 '그런 마음'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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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변태
이외수 지음 / 해냄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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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외수 작가의 소설은 <벽오금학도>를 읽은 것이 전부입니다. 무슨 신선이 등장하고 그림 속을 드나드는 사람이 등장하는 어지러운 이야기였단 것만 기억나네요. 아무나 들어갈 수 없다는 저 그림 속 나라에서 내쳐진 심정으로 책을 덮었을 겁니다. 피곤함만 남은 독서였어요. 호불호를 떠나 다른 작품을 읽어볼 엄두가 나지 않더군요. 헌책방에 갔다 발견한 <괴물>은 벌써 몇 년째 책장 구석에 꽂혀 있고요. 그리고 얼마 전 새 소설 출간 소식을 들었습니다. ​<장외인간> 이후 9년 만에 나온 소설인데요. 갑자기 왜, 읽을 마음이 생겼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읽었습니다.

  

​    열 개의 단편을 수록하고 있는 이 소설집은 채 300쪽도 못 미치는 분량입니다. 중간 중간 삽화가 들어 있고요. 단편보다는 엽편소설이라고 해야 맞을 것 같습니다. <벽오금학도>의 강렬한 인상이 크게 남아서인지 대부분의 이야기가 심심하고 심심하다 못해 진부하게 다가왔습니다. "속는 놈은 사회 부적응자고 속이는 놈은 사회 호적응자야." "그들은 배우자가 보유하고 있는 조건과 배경을 선택해서 결혼하려는 오류를 당연시한다." "이제 인간들은 도덕을 쓰레기 하치장에 오기해 버리고 양심을 시궁창 속에 내던져버렸다." 따위의 직설화법이 이야기 몰입도를 떨어뜨립니다. 도인이나 노인을 등장시켜 세태를 비판하는 식으로 설교조가 두드러지는데요. 소설인지 연설인지 헛갈릴 정도입니다. 주제의식의 과잉이 아쉬워요. 좋은 소설은 독자에게 어떤 여지를 마련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 여지가 결여되었다는 말이죠. 이외수 특유의 촌철살인도 소설에서는 오히려 독이 되는 것 같아요.

 ​  

    주제의식만 살아 있고 인물은 죽어 있다고 할까. 작가의 거센 입김, 콧김 아래 종이인형처럼 얇고 가벼운 인물의 존재감이 겨우 나부끼고 있습니다. 이야기 형식이나 내용 면에서도 소설보다는 우화(재미는 없고 진부한 교훈만 강조하는)에 가깝습니다. 전반적으로 입체감이 떨어진다는 인상. 부분적으로 보면 기발함이나 재미를 줄 소지가 아예 없지는 않지만 소설의 아쉬움을 상쇄하기에는 부족해 보이고요.

​ 

    저는 죄가 없습니다. 단지 대마를 몇 모금 흡연하고 나비가 되는 꿈을 꾸었을 뿐인데 구속시켰습니다. 도대체 제가 저질렀다는 범죄의 피해자가 누굽니까. 한번 데리고 와보십시오. - <완전변태> 중에서

​    표제작 <완전변태>는 대마초 흡연 혐의로 수감된 시인의 이야기입니다. 시인이 수감된 독방에, 환상인지 실재인지 모르겠지만, 나비를 꿈꾸는 애벌레가 등장합니다. 대마초를 피우고 호랑나비가 되는 꿈을 꾸었다는 죄목으로 수감된 애벌레는 시인의 또 다른 자아를 상징하고 있는데요. 시인은 단단한 고치 속 같은 독방 안에서 애벌레와 대화하며 변태 과정을 함께합니다. 이런 설정이라면 인물의 내적 갈등이 심화되는 과정을 그릴 만도 한데, 애벌레의 변태'라는 뻔한 상징으로 그 과정이 생략된 것이 아쉽습니다. 뜬금없이 그것도 진지하게 티팬티를 등장시킨 것도 납득하기 어렵고요. 티팬티를 수집하는 변태도 변태는 변태군요. 썩은 시체 떡밥을 물고 낚인 파로호의 물고기가 된 기분.

    손끝에 닿는 감촉이 너무나 부드러워서 나는 하마터면 티팬티를 봉투에 도로 집어넣을 뻔했다. 디자인도 날렵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인간이 티팬티를 만들기 전에는 만물의 영장이 아니었다는 소지의 주장을 나는 그제서야 납득할 수 있을 것 같았다.  - <완전변태> 중에서

​    혹평 일색이라... 어쩐지 이외수 작가님께 죄송한 마음까지 듭니다. '수십 번의 퇴고를 거듭해서 문장 하나를 완성하'신 정성이 책에 담겨 있을 텐데요. 그래도 독자의 입장에서 아쉬운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독자의 세계는 냉정하니까 ^ ^; 다른 소설들을 안 읽어봐서 비교는 못하겠고, 어쨌든 이번 소설집은 실망스러운 것이 사실. 한동안 <괴물>은 계속 책장에 꽂혀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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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잊지 말아요 - 아들이 써내려간 1800일의 이별 노트
다비트 지베킹 지음, 이현경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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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년의 내가 지켜본 가족의 죽음은 놀라울 만큼 고요했고 깔끔했다. 비통함이라고는 끼어들 여지도 없이 완벽해 보이는 평화 그 자체였다. 돌아가셨다, 라고 어른들은 그저 나에게 통보해 주었다. 주무신다, 라고 말하듯이 심상한 어투였다. 아이고 아이고 하던 곡소리도 그래서 연극적으로 느껴졌다. 눈물 없이 우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으니까. 감정 표현에 서투른 폐쇄적인 집안 분위기는 나에게 감정을 내비치는 것이 부자연스럽고 부끄러운 일이라고 암묵적으로 가르쳤다. 오래도록 순수한 감정의 교류가 없으면 자신이 무엇을 느끼는지조차 모르게 되는 때가 온다. 어머니와 할머니의 죽음 앞에서 당시 나는 부끄러움과 유사한 감정을 느꼈다. 나의 불행을, 슬픔을, 고독을 저들의 죽음이 적나라하게 까발리는 것만 같았다. 할머니가 누운 기다란 땅에 작은 산처럼 흙이 덮이고 어른들의 커다란 신발들이 꽝꽝 흙을 다졌다. 두 사람의 죽음보다도 나를 슬프게 하는 것이 바로 그런 조각난 이미지들이다. 땅을 파고 자신의 슬픔을 휙 내던지고 흙을 덮고 오랫동안 꾹꾹꾹 다지던 그때 그 어른들의 고독에서 나는 강한 죽음의 냄새를 맡았다.    

​      내 옆의 사람을 발견하기 위해서 멀리 가야 할 때가 많다. (하이미토 폰 도데러 Heimito von Doderer,1896~1966)

    기억을 잃어가는 어머니의 투병부터 임종 과정을 담은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어머니와 할머니의 죽음을 떠올렸다. 단단해 보이던 작은 봉분들이 거짓말처럼 허물어지고 어머니 할머니와 함께 매장했던 감정들이 깨어났다. 당시엔 감히 입어보지 못했던 외투를 껴입는 기분으로 조심스럽게 목을 넣고 팔을 끼워 본다. 다시 태어난 사람처럼 울음이 터져나왔다. 망각은 살아서 겪는 죽음이다. 기억은 '되살아나는 것'이다.

    "만약 한 사람이 파괴되면, 그러니까 뇌기능이 소진되면 그 사람 전체가 소진되는 것이나 다름없지." 아버지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위쪽에 있는 무화과 나뭇가지에서 말라비틀어진 나뭇잎을 떼어내버렸다. (142쪽) 

 

    기억을 잃어가는 병, 치매를 앓는 사람을 옆에서 지켜본 사람만이 그 고통을 안다. 치매를 앓던 할머니는 집에서 한참 떨어진 다른 동네나 근처 숲길을 헤매고 다녔다. 마루에 앉은 할머니를 두고 나선 등굣길에서 방향을 바꿔 몇 번이나 집으로 돌아오던 기억이 난다. 숨을 고르고 대문을 열어젖히면 할머니의 텅 빈 얼굴이 거기 있었다. 할머니, 어디 가면 안 돼? 나 올 때까지 여기 있어야 해? 어린애 타이르듯 몇 번이나 당부하고 학교에 가던 기억. 병이 진행되면서 할머니는 심각한 어휘력 장애를 보였다. 우리들 이름은 물론 숟가락 젓가락 같은 단순한 단어들도 잊어버렸다. 뜻을 알 수 없는 이상한 말들을 떠듬떠듬 이어가는 할머니가 나는 무서워졌다. 내 이름도 존재도 잊어버린 할머니는 더 이상 내 할머니가 아닌 것 같았다.

​     ​"그런데 넌 누구니?" "엄마 아들이에요." "내 아들이라고?" 엄마는 깜짝 놀라며 나를 바라보았다. "네, 당신이 제 엄마예요." "그러면 좋을 텐데." 엄마는 아쉬워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이에요! 내가 엄마 자식이에요. 엄마가 날 낳았어요." "내가, 너를? 하지만 그러기엔 네가 너무 큰 것 같은데." "물론 처음에 태어났을 때는 아주 작았죠!" (15쪽)

    어떤방식으로든 빠르게 죽어가는(잊어가는) 사람의 시간과 아직 건강한 사람들의 시간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흐른다는 것을 이 책은 보여준다. 전혀 다른 시간과 기억의 간극을 오가는 이들의 모습은 한 편의 부조리극을 연상시킨다. 한 가족에게 닥친 망각과 죽음은 어떤 면에선 축복처럼 비쳐지기도 한다. 어머니의 죽음은 역설적으로 어머니의 (지난) 삶을 부각시키고 시간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한다. 하나의 배경이었던 어머니의 세세한 부분이 클로즈업된다. 갑자기 모든 것들이 다른 관점에서 보이기 시작한다. 아버지는 고해성사하듯 회개하고 아들은 난생 처음으로 사랑을 고백한다. 어머니, 사랑해요. 어머니는 경악하며 묻는다. 당신들은 누구세요?

​    다음날 아침, 공원으로 산책을 갔을 때 엄마는 개구리가 우는 소리를 "옳아, 옳아"라고 해석했다. 호수에 떠다니는 오리들이 꽥꽥거리자 "모두 괜찮아"라고 통역해주기도 했다. 작은 나뭇잎이 길을 가로질러 바람에 흩날릴 때는 동작을 멈추고 안타까운 눈빛을 보냈다. "오, 불쌍해라......" 우리는 그곳에서 떨어진 낙엽을 몇 개 주워모아 장식품처럼 엄마의 주머니에 끼워놓았다. 그러자 엄마는 비교적 푸른빛이 도는 낙엽을 보고는 낄낄 웃으며 말했다. "오, 새파랗게 어린 것이로군. 늙는다는 게 어떤 건지 아직 모를 거야." (147쪽)

    뿌리가 뒤흔들린 식물이 노랗게 노랗게 시들어가는 것을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는 가족의 마음이 전해진다. 희망과 절망이 교차하고 미움과 사랑이 공존하는 시간. 잃어버린 어머니의 기억과 시간은 이제 가족의 몫이 된다. 한 사람의 기억과 시간이 무질서하게, 난폭하게, 수줍게, 낯설게, 미친듯이 범람하고 뒤섞이고 부풀어오르고 빵 빵 터지기 시작한다. 기억을 소진한 어머니는 비가역적으로, 빠르게 죽음의 길로 나아간다.


    엄마는 이미 꽤 오랜 시간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 우리에게 추억을 만들어주기 위해 살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식물을 보살피는 것처럼 우리는 엄마가 시들지 않게 지키고 있다. 이 꽃이 시들도록 놔두어야 하는 것일까? (282쪽)

    갑작스럽게 닥친 상실의 예감, 이별 앞에서 다비트 가족이 느끼는 복잡한 감정과 현실적인 고민들을 이 책은 충실하게 담고 있다. 서로 소원했던 가족들이 기억의 파편을 주워들고 처음 만난 사람들처럼 어색하게 포옹하고 사랑을 나누는 모습이 감동적으로 그려진다. 사랑이나 이별은 언제나 뜻밖에 찾아온다. 우리는 언제나 너무 이르거나 늦다. 그런데 어쩌면 지금 이 순간, 바로 이때가 가장 적절한 때는 아닌가. 다비트 가족의 사랑과 이별을 지켜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이 바로 우리가 사랑을 말할 때라는 것. 안녕, 인사하고 보내줄 때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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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큼 가까이 - 제7회 창비장편소설상 수상작
정세랑 지음 / 창비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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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자란 90년대는 과도기적 번영과 공허가 공존하는 시기였다. 하루 아침에 '국민학교'는 '초등학교'가 되었고 경보음처럼 여기저기서 '삐삐'가 울려댔다. 가수들은 알아들을 수 없는 빠른 랩을 내뱉었다. 편지지에 연필을 꾹꾹 눌러 쓰던 밤이 사라졌다. 이발소와 슈퍼가 문을 닫기 시작했다. '변화'와 '성장'은 익숙한 것들과의 결별, 즉 '상실'을 피할 수 없고, 우리들은 '상실의 시대'를 살았다. 풀이 눕고 땅이 뒤집히고 무서운 속도로 나무들이 쓰러지고 누군가의 고향 마을이 통째로 사라지는 이상하고 서러운 시절을 살았다. 새로 태어나는 것들의 속도를 좇느라 죽어가는 것들을 애도할 시간을 갖지 못했다. 정세랑의 소설 <이만큼 가까이>는 그 시절 깔려 죽고 찢겨 죽은 우리들의 분신, 죽는 것도 모른 채 죽어버린 모든 것들에 바치는 진혼곡으로 읽힌다.

 

    어떤 땅은 살아도 살아도 설다. 풍경이 아름다운 것과는 별개로 설다. 설어서 아름다울 때도 있다. 아이고, 설어라. 나는 할머니를 흉내내며 속으로 말했다. 설어서 서러운가. (본문 중에서)

 

 

     84년생 정세랑은 이 소설에서 세기말의 분위기를 잘 살려낸다. 90년대 말, 이런 표현이 가능하다면, '마의 황금기'를 보낸 여섯 명의 인물들과, 재개발 붐이 한창이던 서울 외곽 소도시의 황량한 풍경이 자아내는 정서가 이야기 곳곳에 녹아있다. 아이도 어른도 아닌 청소년기의 불안과, 농촌이라고도 도시라고도 할 수 없는 신도시의 애매한 존재감. 암울하고 막막한 정서를 깔고 있는데도 불편하지 않다. 정세랑 특유의 경쾌하고 발랄한 목소리 덕분이다.


    어느날은 운동화 끈으로 땋아 만든 팔찌를 내밀었다. "이거 뭐야?" "여분 끈 어차피 안 쓸 거 같아서 만들었어." 내가 학교에 가고 없는 시간, 하주가 혼자 운동화 끈을 꼬고 있었을 걸 생각하니 웃음이 났다. 굳이 묻지는 않았지만 여분 끈은 두개니까 하나 더 만들었을 텐데 그럼 커플 팔찌네, 나는 귀가 뜨거워졌다. 귀가 뜨거워진 날은 후드를 쓰고 잤다. 비밀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머릿속의 따뜻한 공기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본문 중에서)

 

    열일곱 열여덟 딱 그 나이 또래의 귀여운 감성이 톡톡 터지는가 하면, 능청스러운 유머가 불쑥 튀어나와 깨알 같은 재미를 선사하기도 한다. 독자의 마음을 요리하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쉽게 읽히고 아기자기한 맛이 난다. 다소 무겁고 거북한 내용도 없지 않은데, 그 무거움을 끌고 가는 힘이 놀라울 만큼 세다. 한없이 가라앉지 않고 오히려 단단한 수면을 박차고 나아가는 씩씩함이 엿보인다. 말랑하면서도 단단한 젤리 같은 탄력이 이야기를 힘 있게 끌고 간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건, 때로 죽은 것이 주완이가 아니라 나일 때도 있다는 것이었다. 그날 개를 쫓아간 건 주완이가 아니라 나였다. 어깨가 뜨거워지는 느낌과 함께 마지막으로 느낀 건 미풍, 삽 끝, 더러운 흙 맛. 나는 발견되기도 하고 발견되지 않기도 했다. 발견되지 않은 경우 오래오래 땅 밑에 있었다. 그 느낌에 빠지면 삼일이고 사일이고 잤다. 아무도 나를 깨우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더욱 죽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문 중에서)

 

 

   그러니까, 그 시절 우리는 몇 번이나 죽었다. 죽은지 모르게 죽고 알면서도 죽고 태어나면서 죽고 죽으면서 태어났다. 산산조각났고 캄캄한 우주로 흩어졌다. 오래된 친구와 이별하듯 '옛날'과 빠르게 이별했다. 헤어지는 줄도 모르고 헤어졌다. 친구의 무덤에 풀이 돋기도 전에 잊어버렸다. 잊어버리고 잃어버렸다. 그것이 당시 '마의 황금기'를 보낸 우리들의 진실이다. 한순간에 익숙한 이름과 풍경과 속도를 잃어버린 우리들은 우주의 미아였다. 잃어버리고 잊어버리는 것이 생존법이던 그 시절을 다른 사람은 몰라도 우리들은 기억하고 있다. 잊어버린 채로 기억하고 있었다. 이 소설은 섬세한 손길로 그런 기억의 뿌리를 어루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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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텔의 도시 사계절 1318 문고 90
장징훙 지음, 허유영 옮김 / 사계절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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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제에서 풍기는 인상과 다르게 이 작품은 청소년 소설입니다. 대만의 교육 현실과 어른 세계의 어두운 이면을 열일곱 소년 우지룬의 시선으로 담아내고 있는데요. 청춘의 순수와 세계의 배반이라는 팽팽한 대립 구도를 열일곱 소년다운 쿨하고 유쾌한 어투로 풀어냅니다. 소설을 쓴 장징훙은 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교사인데요. 그 때문인지 우리나라와도 크게 다를 게 없는 대만의 고등학교 교실의 현장감이 잘 살아 있고, 그 나이 또래 청소년들의 고민이나 심리를 섬세하게 포착해내고 있습니다.  

 


    고1 교과서에 소설이 실려 있다. 손자가 할아버지에게 드릴 물고기를 사서 집에 가다가 실수로 잃어버리는 바람에 할아버지와 손자가 싸우다가 서로 주먹질까지 할 뻔한 이야기다. 소설을 다 읽고 나자 여자 꼰대가 뇌까렸다. "할아버지나 손자나 잘들 한다. 생선 한 마리가 뭐라고. 소였으면 칼 들고 날뛰었겠네." (32쪽)

 

 

     주인공 우지룬은 공부에 취미가 없는 명문고 학생입니다. 어머니와 아버지를 잃고 큰아버지 부부 손에 자란 그는 끝 모르는 공허와 결핍감을 채워줄 어른(또는 영웅)을 기다리면서 시시한 학교 생활을 이어갑니다. 우지룬의 눈에 비친 학교는 그야말로 멍청이들의 세계입니다. 서로를 존중할 줄 모르는 학생과 선생은 조롱과 멸시를 주고받는 것이 일상입니다. 다소 과장된 부분도 없지 않아 있지만, 우리나라의 교실 풍경과도 크게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인성보다는 성적과 등수에만 연연하는 학생과 교사, 그들과는 동떨어진 세계에서 잠을 자거나 게임이나 육체적 유희에 몰두하면서 반항하는 학생들... 자의 반 타의 반 우지룬은 학교 생활을 접고 사회 생활을 시작합니다. "염병하게 깨끗한" 세계로 뛰어든 것이지요.

 

 

     상은 저희들끼리 바쁘게 돌아갔고, 나는 나대로 잠을 잤다. 그 사이로 꿈이 비집고 들어왔다. (...) 비는 이미 그치고 창밖으로 투명한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내가 잠든 사이 바다가 막무가내로 밀고 들어와 있었다. 창밖이 거대한 수족관이 된 것 같았다. 나와 섹스를 위한 방들이 바다를 사이에 두고 서로 바라보고 정원의 소나무와 잣나무, 석등은 바다에 잠겨 물결 따라 천천히 일렁이고 있었다. 나는 보았다. 이 세상이 염병하게 깨끗한 것을. (356쪽)

  

    학교와 집을 벗어난 우지룬은 고급 모텔 데스크에서 안내 일을 하게 됩니다. 학교만 벗어나면 근사한 세계가 펼쳐질 것 같았는데, 학교 바깥의 세계는 또 다른 방식으로 우지룬을 배반합니다. 밤낮 "교배"에만 몰두하는 '어른들의 방'에서 우지룬은 어른들의 숨겨진 면모를 발견하게 되는데요. 코끝을 불쾌하게 자극하며 고약한 냄새를 풍기던 '비밀'들이 구체적으로 얼굴을 드러낼 때, 우지룬은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감춰진 내밀한 방', 은밀하고 어두운 욕망'에 대한 이해와 연민을 느낍니다.

 

     (...) 이런 것들은 나와 큰 관계가 없다. 나는 이미 나 이외의 세상은 물론이고 내 몸과 영혼 속에도 수많은 작은 허점이 존재하고 있으며, 내 안에 나보다 더 겁 많고 졸렬한 놈이 숨어 있다는 것을 조금씩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는 내 속에 있는 그것들을 몇 번 보았다. 그것들은 형체가 없어서 평소에는 잘 보이지 않는다. 나는 낯설고 비린내 나는 바다를 항해하는 배처럼 그들이 놀라 깨어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나아가야 한다. 그것들을 만나면 숨을 죽이고 조용히 배를 돌려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그곳에서 천 년 전부터 깊이 잠들어 있는 괴물과 그 패거리들을 건드리지 않는 것이 제일 좋다. (411쪽)

 

 

      강박적으로 육체적 순결'에 집착하면서 '어른 세계'를 염오하고 거부하던 반항적인 소년이 바깥으로만 나 있던 눈을 자기 안으로 돌리는 과정을 그리는 이 작품은 전형적인 성장소설의 형식을 취하는 한편, '섹스'와 '모텔'이 상징하는 '어른 세계'의 추악하고 냄새나는 실상과 비리를 직설적이고 대담한 화법으로 고발하고 있어 세태소설로도 손색이 없어 보입니다. 다소 묵직하고 우울한 내용을 다루지만 유머 섞인 경쾌한 문장 덕분에 축축 늘어지는 느낌 없이 매끄럽게 읽힌다는 장점이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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