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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큼 가까이 - 제7회 창비장편소설상 수상작
정세랑 지음 / 창비 / 201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자란 90년대는 과도기적 번영과 공허가 공존하는 시기였다. 하루 아침에 '국민학교'는 '초등학교'가 되었고 경보음처럼 여기저기서 '삐삐'가 울려댔다. 가수들은 알아들을 수 없는 빠른 랩을 내뱉었다. 편지지에 연필을 꾹꾹 눌러 쓰던 밤이 사라졌다. 이발소와 슈퍼가 문을 닫기 시작했다. '변화'와 '성장'은 익숙한 것들과의 결별, 즉 '상실'을 피할 수 없고, 우리들은 '상실의 시대'를 살았다. 풀이 눕고 땅이 뒤집히고 무서운 속도로 나무들이 쓰러지고 누군가의 고향 마을이 통째로 사라지는 이상하고 서러운 시절을 살았다. 새로 태어나는 것들의 속도를 좇느라 죽어가는 것들을 애도할 시간을 갖지 못했다. 정세랑의 소설 <이만큼 가까이>는 그 시절 깔려 죽고 찢겨 죽은 우리들의 분신, 죽는 것도 모른 채 죽어버린 모든 것들에 바치는 진혼곡으로 읽힌다.
어떤 땅은 살아도 살아도 설다. 풍경이 아름다운 것과는 별개로 설다. 설어서 아름다울 때도 있다. 아이고, 설어라. 나는 할머니를 흉내내며 속으로 말했다. 설어서 서러운가. (본문 중에서)
84년생 정세랑은 이 소설에서 세기말의 분위기를 잘 살려낸다. 90년대 말, 이런 표현이 가능하다면, '마의 황금기'를 보낸 여섯 명의 인물들과, 재개발 붐이 한창이던 서울 외곽 소도시의 황량한 풍경이 자아내는 정서가 이야기 곳곳에 녹아있다. 아이도 어른도 아닌 청소년기의 불안과, 농촌이라고도 도시라고도 할 수 없는 신도시의 애매한 존재감. 암울하고 막막한 정서를 깔고 있는데도 불편하지 않다. 정세랑 특유의 경쾌하고 발랄한 목소리 덕분이다.
어느날은 운동화 끈으로 땋아 만든 팔찌를 내밀었다. "이거 뭐야?" "여분 끈 어차피 안 쓸 거 같아서 만들었어." 내가 학교에 가고 없는 시간, 하주가 혼자 운동화 끈을 꼬고 있었을 걸 생각하니 웃음이 났다. 굳이 묻지는 않았지만 여분 끈은 두개니까 하나 더 만들었을 텐데 그럼 커플 팔찌네, 나는 귀가 뜨거워졌다. 귀가 뜨거워진 날은 후드를 쓰고 잤다. 비밀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머릿속의 따뜻한 공기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본문 중에서)
열일곱 열여덟 딱 그 나이 또래의 귀여운 감성이 톡톡 터지는가 하면, 능청스러운 유머가 불쑥 튀어나와 깨알 같은 재미를 선사하기도 한다. 독자의 마음을 요리하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쉽게 읽히고 아기자기한 맛이 난다. 다소 무겁고 거북한 내용도 없지 않은데, 그 무거움을 끌고 가는 힘이 놀라울 만큼 세다. 한없이 가라앉지 않고 오히려 단단한 수면을 박차고 나아가는 씩씩함이 엿보인다. 말랑하면서도 단단한 젤리 같은 탄력이 이야기를 힘 있게 끌고 간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건, 때로 죽은 것이 주완이가 아니라 나일 때도 있다는 것이었다. 그날 개를 쫓아간 건 주완이가 아니라 나였다. 어깨가 뜨거워지는 느낌과 함께 마지막으로 느낀 건 미풍, 삽 끝, 더러운 흙 맛. 나는 발견되기도 하고 발견되지 않기도 했다. 발견되지 않은 경우 오래오래 땅 밑에 있었다. 그 느낌에 빠지면 삼일이고 사일이고 잤다. 아무도 나를 깨우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더욱 죽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문 중에서)
그러니까, 그 시절 우리는 몇 번이나 죽었다. 죽은지 모르게 죽고 알면서도 죽고 태어나면서 죽고 죽으면서 태어났다. 산산조각났고 캄캄한 우주로 흩어졌다. 오래된 친구와 이별하듯 '옛날'과 빠르게 이별했다. 헤어지는 줄도 모르고 헤어졌다. 친구의 무덤에 풀이 돋기도 전에 잊어버렸다. 잊어버리고 잃어버렸다. 그것이 당시 '마의 황금기'를 보낸 우리들의 진실이다. 한순간에 익숙한 이름과 풍경과 속도를 잃어버린 우리들은 우주의 미아였다. 잃어버리고 잊어버리는 것이 생존법이던 그 시절을 다른 사람은 몰라도 우리들은 기억하고 있다. 잊어버린 채로 기억하고 있었다. 이 소설은 섬세한 손길로 그런 기억의 뿌리를 어루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