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텔의 도시 사계절 1318 문고 90
장징훙 지음, 허유영 옮김 / 사계절 / 2014년 1월
평점 :
절판


 

 

 

 

 


     표제에서 풍기는 인상과 다르게 이 작품은 청소년 소설입니다. 대만의 교육 현실과 어른 세계의 어두운 이면을 열일곱 소년 우지룬의 시선으로 담아내고 있는데요. 청춘의 순수와 세계의 배반이라는 팽팽한 대립 구도를 열일곱 소년다운 쿨하고 유쾌한 어투로 풀어냅니다. 소설을 쓴 장징훙은 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교사인데요. 그 때문인지 우리나라와도 크게 다를 게 없는 대만의 고등학교 교실의 현장감이 잘 살아 있고, 그 나이 또래 청소년들의 고민이나 심리를 섬세하게 포착해내고 있습니다.  

 


    고1 교과서에 소설이 실려 있다. 손자가 할아버지에게 드릴 물고기를 사서 집에 가다가 실수로 잃어버리는 바람에 할아버지와 손자가 싸우다가 서로 주먹질까지 할 뻔한 이야기다. 소설을 다 읽고 나자 여자 꼰대가 뇌까렸다. "할아버지나 손자나 잘들 한다. 생선 한 마리가 뭐라고. 소였으면 칼 들고 날뛰었겠네." (32쪽)

 

 

     주인공 우지룬은 공부에 취미가 없는 명문고 학생입니다. 어머니와 아버지를 잃고 큰아버지 부부 손에 자란 그는 끝 모르는 공허와 결핍감을 채워줄 어른(또는 영웅)을 기다리면서 시시한 학교 생활을 이어갑니다. 우지룬의 눈에 비친 학교는 그야말로 멍청이들의 세계입니다. 서로를 존중할 줄 모르는 학생과 선생은 조롱과 멸시를 주고받는 것이 일상입니다. 다소 과장된 부분도 없지 않아 있지만, 우리나라의 교실 풍경과도 크게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인성보다는 성적과 등수에만 연연하는 학생과 교사, 그들과는 동떨어진 세계에서 잠을 자거나 게임이나 육체적 유희에 몰두하면서 반항하는 학생들... 자의 반 타의 반 우지룬은 학교 생활을 접고 사회 생활을 시작합니다. "염병하게 깨끗한" 세계로 뛰어든 것이지요.

 

 

     상은 저희들끼리 바쁘게 돌아갔고, 나는 나대로 잠을 잤다. 그 사이로 꿈이 비집고 들어왔다. (...) 비는 이미 그치고 창밖으로 투명한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내가 잠든 사이 바다가 막무가내로 밀고 들어와 있었다. 창밖이 거대한 수족관이 된 것 같았다. 나와 섹스를 위한 방들이 바다를 사이에 두고 서로 바라보고 정원의 소나무와 잣나무, 석등은 바다에 잠겨 물결 따라 천천히 일렁이고 있었다. 나는 보았다. 이 세상이 염병하게 깨끗한 것을. (356쪽)

  

    학교와 집을 벗어난 우지룬은 고급 모텔 데스크에서 안내 일을 하게 됩니다. 학교만 벗어나면 근사한 세계가 펼쳐질 것 같았는데, 학교 바깥의 세계는 또 다른 방식으로 우지룬을 배반합니다. 밤낮 "교배"에만 몰두하는 '어른들의 방'에서 우지룬은 어른들의 숨겨진 면모를 발견하게 되는데요. 코끝을 불쾌하게 자극하며 고약한 냄새를 풍기던 '비밀'들이 구체적으로 얼굴을 드러낼 때, 우지룬은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감춰진 내밀한 방', 은밀하고 어두운 욕망'에 대한 이해와 연민을 느낍니다.

 

     (...) 이런 것들은 나와 큰 관계가 없다. 나는 이미 나 이외의 세상은 물론이고 내 몸과 영혼 속에도 수많은 작은 허점이 존재하고 있으며, 내 안에 나보다 더 겁 많고 졸렬한 놈이 숨어 있다는 것을 조금씩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는 내 속에 있는 그것들을 몇 번 보았다. 그것들은 형체가 없어서 평소에는 잘 보이지 않는다. 나는 낯설고 비린내 나는 바다를 항해하는 배처럼 그들이 놀라 깨어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나아가야 한다. 그것들을 만나면 숨을 죽이고 조용히 배를 돌려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그곳에서 천 년 전부터 깊이 잠들어 있는 괴물과 그 패거리들을 건드리지 않는 것이 제일 좋다. (411쪽)

 

 

      강박적으로 육체적 순결'에 집착하면서 '어른 세계'를 염오하고 거부하던 반항적인 소년이 바깥으로만 나 있던 눈을 자기 안으로 돌리는 과정을 그리는 이 작품은 전형적인 성장소설의 형식을 취하는 한편, '섹스'와 '모텔'이 상징하는 '어른 세계'의 추악하고 냄새나는 실상과 비리를 직설적이고 대담한 화법으로 고발하고 있어 세태소설로도 손색이 없어 보입니다. 다소 묵직하고 우울한 내용을 다루지만 유머 섞인 경쾌한 문장 덕분에 축축 늘어지는 느낌 없이 매끄럽게 읽힌다는 장점이 있네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