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변태
이외수 지음 / 해냄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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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외수 작가의 소설은 <벽오금학도>를 읽은 것이 전부입니다. 무슨 신선이 등장하고 그림 속을 드나드는 사람이 등장하는 어지러운 이야기였단 것만 기억나네요. 아무나 들어갈 수 없다는 저 그림 속 나라에서 내쳐진 심정으로 책을 덮었을 겁니다. 피곤함만 남은 독서였어요. 호불호를 떠나 다른 작품을 읽어볼 엄두가 나지 않더군요. 헌책방에 갔다 발견한 <괴물>은 벌써 몇 년째 책장 구석에 꽂혀 있고요. 그리고 얼마 전 새 소설 출간 소식을 들었습니다. ​<장외인간> 이후 9년 만에 나온 소설인데요. 갑자기 왜, 읽을 마음이 생겼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읽었습니다.

  

​    열 개의 단편을 수록하고 있는 이 소설집은 채 300쪽도 못 미치는 분량입니다. 중간 중간 삽화가 들어 있고요. 단편보다는 엽편소설이라고 해야 맞을 것 같습니다. <벽오금학도>의 강렬한 인상이 크게 남아서인지 대부분의 이야기가 심심하고 심심하다 못해 진부하게 다가왔습니다. "속는 놈은 사회 부적응자고 속이는 놈은 사회 호적응자야." "그들은 배우자가 보유하고 있는 조건과 배경을 선택해서 결혼하려는 오류를 당연시한다." "이제 인간들은 도덕을 쓰레기 하치장에 오기해 버리고 양심을 시궁창 속에 내던져버렸다." 따위의 직설화법이 이야기 몰입도를 떨어뜨립니다. 도인이나 노인을 등장시켜 세태를 비판하는 식으로 설교조가 두드러지는데요. 소설인지 연설인지 헛갈릴 정도입니다. 주제의식의 과잉이 아쉬워요. 좋은 소설은 독자에게 어떤 여지를 마련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 여지가 결여되었다는 말이죠. 이외수 특유의 촌철살인도 소설에서는 오히려 독이 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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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제의식만 살아 있고 인물은 죽어 있다고 할까. 작가의 거센 입김, 콧김 아래 종이인형처럼 얇고 가벼운 인물의 존재감이 겨우 나부끼고 있습니다. 이야기 형식이나 내용 면에서도 소설보다는 우화(재미는 없고 진부한 교훈만 강조하는)에 가깝습니다. 전반적으로 입체감이 떨어진다는 인상. 부분적으로 보면 기발함이나 재미를 줄 소지가 아예 없지는 않지만 소설의 아쉬움을 상쇄하기에는 부족해 보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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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죄가 없습니다. 단지 대마를 몇 모금 흡연하고 나비가 되는 꿈을 꾸었을 뿐인데 구속시켰습니다. 도대체 제가 저질렀다는 범죄의 피해자가 누굽니까. 한번 데리고 와보십시오. - <완전변태> 중에서

​    표제작 <완전변태>는 대마초 흡연 혐의로 수감된 시인의 이야기입니다. 시인이 수감된 독방에, 환상인지 실재인지 모르겠지만, 나비를 꿈꾸는 애벌레가 등장합니다. 대마초를 피우고 호랑나비가 되는 꿈을 꾸었다는 죄목으로 수감된 애벌레는 시인의 또 다른 자아를 상징하고 있는데요. 시인은 단단한 고치 속 같은 독방 안에서 애벌레와 대화하며 변태 과정을 함께합니다. 이런 설정이라면 인물의 내적 갈등이 심화되는 과정을 그릴 만도 한데, 애벌레의 변태'라는 뻔한 상징으로 그 과정이 생략된 것이 아쉽습니다. 뜬금없이 그것도 진지하게 티팬티를 등장시킨 것도 납득하기 어렵고요. 티팬티를 수집하는 변태도 변태는 변태군요. 썩은 시체 떡밥을 물고 낚인 파로호의 물고기가 된 기분.

    손끝에 닿는 감촉이 너무나 부드러워서 나는 하마터면 티팬티를 봉투에 도로 집어넣을 뻔했다. 디자인도 날렵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인간이 티팬티를 만들기 전에는 만물의 영장이 아니었다는 소지의 주장을 나는 그제서야 납득할 수 있을 것 같았다.  - <완전변태> 중에서

​    혹평 일색이라... 어쩐지 이외수 작가님께 죄송한 마음까지 듭니다. '수십 번의 퇴고를 거듭해서 문장 하나를 완성하'신 정성이 책에 담겨 있을 텐데요. 그래도 독자의 입장에서 아쉬운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독자의 세계는 냉정하니까 ^ ^; 다른 소설들을 안 읽어봐서 비교는 못하겠고, 어쨌든 이번 소설집은 실망스러운 것이 사실. 한동안 <괴물>은 계속 책장에 꽂혀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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