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동네 성당의 주임신부님은 멕시코에서 오셨다. 한국에 오신 지 약 7년 정도 지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기간에 비하면 참으로 한국어가 자연스럽다. 물론 가끔 단어 선택이 부적절하여 큰 기쁨(^^) 주시기도 하지만, 그런 소소한 재미를 제외하고는 의사전달에 전혀 무리가 없다. 특히 신부님은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자주 쓰시는데, 그 억양이나 속도에서 느껴지는 명랑함과 경쾌함이 나는 참 좋더라. 여하간, 그래서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신부님처럼 발랄하게 쓰고 싶다는, 좀 더 나아가 매사에 감사할 줄 알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요즘 부러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자주 한다. 그것도 명랑하게! 

그런 나에게, 한 번의 시련 닥쳤으니, 다름아닌 [000 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노?]라는 회장님의 물음이시다. 사실 내가 하고 싶었던, 혹은 할 수 있는 대답은 [그것에 관해 아는 바가 없습니다]였는데, 그렇게 말했다가는 하루 종일 시달릴 것 같기도 하고, 어디 구해놓은 일자리도 없는데 갑자기 짤리면 대출금은 어찌 갚나,하는 생계형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또한, 매사에 감사하기로 작정한 결심에 실금이 가는 것 같기도 하고, 하여 [일단 상황을 잘 모르니 확인하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로 타협을 보고, 어느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접속했다. 

기사는 찾기 쉬었다. 클릭만 하면 되니까. 이것만으로도 일단 감사합니다~!, 여하간 상황을 쭉 보았는데 웃기도 그렇고, 화를 내기도 그렇고, 그러니까 매우 거시기한 상황인 것 같았다. 물론 내가 분노할 사건이 아님에 또 한 번 감사합니다~!,였지만, 그러나, 사건의 본질이 뭣이건, 이 여인은 뭐하라 요맘때 책을 출간해서 나를 수고스럽게 하는 것인가, 뭐 이런 맥락없는 짜증이 3초에 다섯 번 얻어맞는 그런 어처구니없는 속도로 몰려왔다. 역시나 매사에 감사하기는 참으로 피나는 연습이 필요한 일인가 보다.   

회장님은 점심시간에 다시 질문을 던졌다. 밥도 마음 편하게 먹지 못하는 나는야 노예,라는 신분을 잊은 건 아니지만, 먹을 때 건드리면 우리 강아지도 싫어했었는데, 어디 한 군데 확 물어버릴까 하는 빙의를 경험하기도 했지만, 나는 그저 밥을 사먹을 수 있도록 급여를 지급하시는 회장님께 감사합니다~!,라는 마음으로 선선히 답변을 하였다.     

나 : 저는 그것의 사실관계를 전혀 모르겠습니다.
  
회장 : 아, 그거야 그렇지만, 그래도 뭔가 느낌이 있을 것 아닌가?

나 : 다들 돈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회장 : 누가? 그사람?

나 : 그분과 그분의 책을 출판하는 출판사, 그리고 이런 일은 꼭 보도하고 말겠다는 굳은 각오를 한 언론과 언론사에 기생하는 기자들이 아니겠습니까?

회장 : 음모陰謀가 아닐까? 

나 : 음모陰毛가 있겠죠. 그분이나, 그분의 책을 출판하는 출판사나, 이런 일은 꼭 보도하고 말겠다는 굳은 각오를 한 언론과, 그런 언론사에 기생하는 기자들의 신체에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모두 음모陰毛가 있을 것입니다.

회장 : ....................

나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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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니 2011-03-23 14: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하하, 감사합니다 ~ ! 굿바이 님, 오늘 울적한 저를 웃게 해주셨어요.

굿바이 2011-03-23 18:18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이런 경험을 하사하신 회장님께 감사합니다~!
이런 경험이 치니님을 웃게 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어인 일로 울적하셨나요? 울적한 사람들 어디 모여 감사합니다~! 합창대회라도 열어야 겠습니다. 치니님은 혼자가 아닙니다. 저 역시 울적합니다. 그래서 또 감사합니다~!)

무해한모리군 2011-03-23 1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랑과 저도 이 책 출간 뉴스를 보고 얘기를 했어요.
저는 무신 예술책 내는 출판사 같던데 이런 걸 내냐.. 우습다 이리 말했더니,
신랑은 신작가님이 약자(?)라면서 약자들이 책을 많이 내야한다고 문자로 일단 떡하니 박아놓으면 절대 없앨 수 없는 법이라며 기뻐하더라구요.
신작가님이 약자인지는 모르겠으나 좋은 구경거리기는 한듯 합니다.
룸싸롱에 대해 쓴 강준만선생 책이 갑자기 생각나네요. 강준만선생도 신작가처럼 쓰셨으면 잘 나갔을텐데...

여하간 굿바이님이 오래오래 회사에 다녔으면 좋겠어요.

굿바이 2011-03-24 09:33   좋아요 0 | URL
아~ 약자! :)
정글의 법칙을 잘 아는 분들이 가끔 부럽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강준만교수의 부지런하고 용기있는 글쓰기에 합당한 대가가 있으면 좋겠는데, 잘 모르겠네요, 얼마나 책이 팔리는지....

저는 오래오래 회사를 다닐 수 없을 것 같지만ㅜㅜ, 그래도 이렇게 마음을 써 주셔서 무한 감사합니다~!

흰그늘 2011-03-23 2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굿바이님.. 성당 다니시는가 보군요..?( 아닌가?)..
저는 성당을 다녀 본적은 없는데... 신부님 하시니.. 돌아가신.. '예수원' 의
대천덕 신부님 생각이 나네요.. 한 번 가야지 가야지 하면서도 가보질 못했었거던요..

회장님.. 하시니 '욕망의 불꽃의' 그 회장님이 떠오르네요.. '뭐라카노~~'
음모에 대한 말들에 조금 웃었습니다..^^

굿바이 2011-03-24 09:40   좋아요 0 | URL
네, 성당을 다니기만 한답니다^^! 아주 날라리 신자라고 할 수 있죠~
'예수원'은 저도 듣기만 했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습니다. 여기서 또 들키네요. 날라리 신자~ ㅋㅋ

'욕망의 불꽃'을 검색해봤더니 드라마군요. 음....내용을 몰라서 뭐라 말하기는 그렇지만, 여튼 우리 회장님은 세상사에 관심이 많으시답니다. 어린아이와 같은 호기심? 뭐 그런! ㅋㅋ 좋은 분인데, 그저 절 조금 귀찮게 할 뿐이죠 ㅜㅜ

어찌되었건, 제 글을 읽고 흰그늘길님이 조금이라도 웃으셨다니 역시나 감사합니다~!



風流男兒 2011-03-24 0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하하하 감사하며 살아야죠 ㅋㅋㅋㅋ 센스 역시 돋으시는 우리 누나!! ㅎㅎ

굿바이 2011-03-24 15:02   좋아요 0 | URL
풍류 따블로 돋아주시는 남아님,
웃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누나라고 불러주신 불망지은 감사합니다~!

에디 2011-03-27 1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모> 말씀을 하실 때 분명히, 꼭, 외국인처럼 두손으로 귀엽게 쿼테이션 마크를 그려주셨겠죠?

저도 아주 큰 범주에선 날라리 신자인데요. 어머니는 저를 냉담자 - 제가 너무 재밌어하는 단어입니다 - 로 생각하시고 저는 스스로를 불신자로 생각하지만 가끔 성당에 갈 때가 있어요. 멕시코 신부님이 계시다면 좀 더 자주 갈 것 같은데...

굿바이 2011-03-29 10:46   좋아요 0 | URL
넵! 그런 즐거운 동작으로 회장님의 미움을 한 몸에 받았답니다 ㅜㅜ

봄이 오면, 진짜 봄이 오면, 멕시코 신부님의 '스페인어 강좌'를 수강할까 생각 중입니다. 짱! 재미있다는 소문이 무성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