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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 시크레토 : 비밀의 눈동자 - The Secret in Their Eyes
영화
평점 :
상영종료
극장을 나와 한참을 걸었다. 걸을 수 밖에 없어 걷고, 걷는 것 말고는 달리 할 것이 없어 걸었다. 이런 마음, 오랜만이다. 이런 마음으로 이렇게 걷는 일도, 드.문.일.이.다.
이 영화 <엘 시크레토>가 유별나게 시큰거렸던 이유는 비밀을 간직한 그들의 눈동자 때문이 아니었다. 미간 때문이었다. 중얼거리듯, 웅얼거리듯 "모든 것은 다 지나가리라" 고 위무했던 내 마음이 주인공 에스포지토(리카도 다린, 1957년생이라니)의 미간을 보는 순간 가감없이 찢겼다.
그 이후, 비밀의 눈동자,라는 제목을 무시하고, 나는 에스포지토의 눈과 눈 사이, 더 정확히 눈썹과 눈썹 사이, 무엇으로도 속일 수 없는 미간을 응시한다. 에스포지토의 미간, 익숙하다. 기억하고 있는 미간이다.
영화는 어긋남이라는 사랑의 속성을 시간이라는 무상함 속에 구겨넣는다.
그러니 꼼짝할 수 가 없다. 사진을 보듯, 사건이 남겨진 추억을 본다. 사진 속에서 미래를 모르고 밥통처럼 웃고있는 사건들은, 푸른 맥처럼 뛴다. 그러나 그것을 추억하는 일 밖에 할 수 없는 현재의 나는, 맥없이 자맥질한다.
<엘 시크레토>는 돌보지 않는 사랑, 아니 돌볼 수 없는 사랑을 이야기함에 있어, 일급이다.
물론, 나처럼 누군가의 미간을 기억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