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 시크레토 : 비밀의 눈동자 - The Secret in Their Eyes
영화
평점 :
상영종료


극장을 나와 한참을 걸었다. 걸을 수 밖에 없어 걷고, 걷는 것 말고는 달리 할 것이 없어 걸었다. 이런 마음, 오랜만이다. 이런 마음으로 이렇게 걷는 일도, 드.문.일.이.다. 

이 영화 <엘 시크레토>가 유별나게 시큰거렸던 이유는 비밀을 간직한 그들의 눈동자 때문이 아니었다. 미간 때문이었다. 중얼거리듯, 웅얼거리듯 "모든 것은 다 지나가리라" 고 위무했던 내 마음이 주인공 에스포지토(리카도 다린, 1957년생이라니)의 미간을 보는 순간 가감없이 찢겼다.  
그 이후, 비밀의 눈동자,라는 제목을 무시하고, 나는 에스포지토의 눈과 눈 사이, 더 정확히 눈썹과 눈썹 사이, 무엇으로도 속일 수 없는 미간을 응시한다. 에스포지토의 미간, 익숙하다. 기억하고 있는 미간이다.  

영화는 어긋남이라는 사랑의 속성을 시간이라는 무상함 속에 구겨넣는다.  
그러니 꼼짝할 수 가 없다. 사진을 보듯, 사건이 남겨진 추억을 본다. 사진 속에서 미래를 모르고 밥통처럼 웃고있는 사건들은, 푸른 맥처럼 뛴다. 그러나 그것을 추억하는 일 밖에 할 수 없는 현재의 나는, 맥없이 자맥질한다.

<엘 시크레토>는 돌보지 않는 사랑, 아니 돌볼 수 없는 사랑을 이야기함에 있어, 일급이다.  
물론, 나처럼 누군가의 미간을 기억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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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10-11-23 1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봐야겠네요 :)

굿바이 2010-11-24 09:30   좋아요 0 | URL
음, 봐도 괜찮을 것 같아 :)

치니 2010-11-23 14: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저도 역시. 그냥 패스하려고 했는데.

굿바이 2010-11-24 09:31   좋아요 0 | URL
음, 혹여 제 말만 믿고 보셨는데, 쫌 꽝이다 싶으시면, 말씀하시옵소서. 까이껏 책임집니다 ㅋㅋㅋ

poptrash 2010-11-23 15: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쩐지 요즘 읽고 있는 정영문 소설의 한 대목이 생각나요.

"그런데 그럴 때면 이것은 죽은 누군가를 그리워하며, 비록 그가 죽긴 했지만 죽은 그를 마음속에 살아 있게 하는 추억의 한 방식이 아니라, 추억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상태에서도 나 자신을 계속해서 살아가게 하는 한 방식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굿바이 2010-11-24 09:35   좋아요 0 | URL
실존을 앞서는게 있을까 싶어요. 살고 또 살아야한다면 뭐라도 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그런 생각이 듭니다.

風流男兒 2010-11-23 1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놔 저 저거 저번주에 볼까말까 하다 안봤는데, 역시 봤어야 했어요!! ㅋㅋ

굿바이 2010-11-24 09:37   좋아요 0 | URL
음, 경험상 할까말까 하다가 안한 것들은 후회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아. 51:49 정도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