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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무론 - 인문연대의 미래형식
김영민 지음 / 한겨레출판 / 2008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사회적 생존을 위한 관계 맺기에서 얻은 것과 잃은 것을 복식부기해 보면 손실이 더 크다. 개인적인 성향의 문제도 있겠지만, 돌이켜 보면 생산적인 관계는 극히 드물었다. 그럼에도, 어리석음이 고질병인, 더 나아가 그 어리석음을 반복하는 아둔함마저 겸비한 나는 여전히 "세속의 어둠을 배경으로 외로이 빛나다가 때로는 다른 별들과 합쳐 어두운 밤하늘을 수놓는 별자리"(진중권) 가 되는 그런 관계를 꿈꾼다.
물론, 2008년 '별자리 연대'를 꿈꾸며 시작한 일은 실패로 돌아갔다. '열정을 이해관계적으로 분배하고 조율하라'(A. 허쉬만)는 빌어먹을 조언을 무시한 결과였고, '호의와 호감'이 '신뢰'를 호출할 것이라고 혼자 그냥 그렇게 믿었던 탓이다. 결국 모두 내 탓인 셈이다. 그럼에도 생존을 위해 여전히 관계를 벗어날 수는 없었기에, 결국 명민함이라 착각한 평범한 자기방어와 냉소만 키워왔다. 그런 내 미련함에 찬물을 끼얹어 다시 정신을 차리게 한 이가 있으니 바로 김영민이다. 그러니 그의 글은 두고두고 쓰고 두고두니 달다.
경험으로 미루어 보면, 김영민의 <동무론>은 정신적으로 여전히 유아인 그래서 늘 관계 맺기에서 칭얼거리는 이들에게 벼락과도 같은 책이다. 친구, 연인이라는 이름의 타자와의 관계에서 [사적 호의]와 [사회적 신뢰]를 혼동하는 [세속]의 한 특징을 일갈하는 그는, 호의와 신뢰를 준별하는 태도를 기르라고 조언한다.
"대부분의 호의가 어떤 식이든 넓은 의미의 이기심과 연루해 있다는 사실은 거의 분명하고 또 피할 수도 없어 보인다." (p.30), "세속이 슬픈 이유는 악(惡) 때문이 아니다....슬픔은 적들의 횡포 탓이라기보다 오히려 친구들의 선의와 그 무모함이, 연인들의 호의와 그 어리석음에, 가족들의 애착과 그 타성에 얹혀 생긴다." (p.265) 라는 그의 말은 그늘 한 점 없는 광장으로 우리를 끌고 나온다. 공사가 사통하고, 모든 관계의 그믈망이 어느 20대 청년들의 88만원짜리 일자리마저 싸그리 포획하는 시절을 우리는 견디고 있다. 분노와 열패감이 태풍처럼 무자비하게 우리들을 강타한다. 그러나 정작 우리 자신의 소소한(?) 연정은 포기할 수 없는 이 일상은 또 얼마나 슬픈 지옥인지.
그렇다면 그가 말하는 연대란, 좋은 [동무]란 무엇인가? "좋은 '동무'란, 사사화된 정리의 늪 속으로, 그 한 패거리의 움직임 속으로, 축축하고 뜨겁게 저락하는 '친구'를 불러세우는 일견 메마르고 '서늘한' 행위속에서 (부사적으로) 자생"(p.211) 하는 것이며,
"그것은 같은 관습에 몸을 의탁하는 짓으로써 상식과 도덕의 알리바이를 내세우지 않는 관계, 이념과 진보를 빌미로 같은 언어와 사정(私情) 아래 집결하지 않는 관계"(p.217) 라고 그는 동무의 의미를 정리하고 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한 치도 틀린 것이 없는 그의 지론은 기어이 멀다. 그것은 기어이 닿을 수 없는 것을 사랑,이라고 부른다며 강기슭에 주저 앉은(?) 김훈의 마음과 같은 것일까. 나 역시 기어이 닿을 수 없는 관계를 동무,라고 부른다며 세속의 오늘을 붙들고 주저 앉고 싶은 심정이기에 말이다.
<동무론>은 책의 제목이 시사하는 것처럼 인문연대의 미래형식으로서의 동무,를 군더더기 없이, 그러나 온몸으로 압통을 느끼게 사방에서 조여온다. 오해의 소지가 있을까봐 한 마디 거들자면, 그가 말하는 동무나 연대는 그저 약소자끼리의 연대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약소자라는 사실 그 자체 때문에 연대하려는 것은 유력자의 사회구성체 형식과 그 메커니즘을 답습하려는 권력의지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p.373)고 지적하고 있다.
비트게인슈타인의 말처럼, 앎이 아니라 의심이 사유인 것을 인지한다면, 우리는 우리가 안다고 믿었던, 좋은 관계라 믿었던 모든 관계들을 의심하고 부정하는 일로부터 이 슬픈 세속을 헤쳐 나가야 한다. 그것은 "호의가 에고이즘과 사통하고 선의가 나르시시즘의 미끼로 전락하는 그 속절없는 무능 속에" 포획당하지 않고 사회적 신뢰를 다시 취할 수 있는 기회이자 시작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책의 첫 장부터 나를 붙들어 세웠던 그의 글로 이 책에 보내는 감사를 마무리한다.
"인사가 채 끝나기도 전에 상처는 예감되지만, 그 상처의 길을 막을 수 없다는 게 인간의 운명이다. 마치, 어두운 방 안에서 깨달은 것을 밝은 길 위에서 놓치듯, 말이다. 구조와 패턴의 인과성은 환하게 보이더라도, 개인의 이치를 설명하는 인과율은 어디에도 없는 것. 아, 개인은 영원히 어리석다. 실은, 너를 만나는 일이 재난인 줄 알고 만난다. 그리고 그 재난이 어떤 종류의 반복인 사실도 환하게 안다. 정작 내가 모르는 것은, 그 재난을 회피할 정도로 내가 내게 행복을 허락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p.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