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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민주주의를 말한다 - 시민을 위한 민주주의 특강
도정일.박원순 외 지음 / 휴머니스트 / 2010년 5월
평점 :
소탐(小貪)해서 대실(大失)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나는 어리석게 굴었다. 달성하지 못한 최종 목표에 대한 미련보다 취할 수 없었던 작은 욕망이 더 절절했다. 이렇게 앎과 삶은 불일치한다. 적어도 내 일상은 그렇다. 어쩌면 민주화를 앞당긴 이들의 실수가 이 대목인지도 모른다. 인간의 욕망을 우습게 생각했던 것 말이다. 최종 목표를 달성했다고 착각했기에, 개인들의 작은 욕망은 무시해 버렸던 것. 그러나 나도 우리도 어리석기에 개인적인 작은 욕망들이 얼마나 절절한가. 결과적으로 그 절절함이 우리를 철저히 망가뜨렸다. 욕망하는 대상에게 힘을 실어 주는 행위를 하게 한 것이다.
그럼에도 다행스러운 것이 있다면, 다시 한 번 그 어리석음을 돌아보는 마음이 있고, 고쳐보고자 하는 의지가 유효하다는 것이다. 이는 다시, 민주주의를 말하려고 하는 이 책의 저자들과 내가 오늘 만나는 지점이기도 하다.
"낡은 것은 사라졌는데, 새로운 것이 나타나지 않은 상태"를 [위기]라고 그람시는 말했다. 위기에 관한 명쾌한 정의다. 2010년의 한국은 정치, 경제, 교육 등 사회 전반에 걸쳐 위기의식이 팽배해있다. 이 책에 언급된 12명의 살아있는 지식인들처럼 조목조목 그 위기를 진단할 수는 없다고 치더라도, 우리는 즉자적으로 느낀다. 그런데 좀 다른 의미의 위기가 아닌가 싶다. "낡은 것이 좀 사라지는가 싶었는데, 오히려 더 낡은 것으로 회기하려는 상태!" 따라서, 지금 이 시점에서 민주주의를 말하는 사람들은 이 현상을 깊이 받아들일 필요가 있겠다. 2010년의 한국은 왜 더 낡은 것으로 회기하려 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해 말이다.
지금,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인가, 열거하기에 너무 많다. 그것을 대표하는 무엇을 꼽으라면,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영역의 대결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이 대목 박명림교수의 지적은 날카롭고 옳다. 그는 공공성이 실종되고 국가가 사사화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공공성이 실종된다는 것은 권력이 일부에게 독점되고, 이를 통해 새로운 신분이 부활함을 의미한다.
현재 한국사회의 신분은 돈에 의해, 학벌에 의해 재편되고 있다. 사라졌던 문중이 현대식으로 부활하는 셈이다. 아버지가 기거하는 아파트의 이름으로 혹은 학벌의 이름으로. 이제 수도 서울의 어디에서 태어나고 자라는가, 어떤 사교육을 받고 어느 대학을 나오는가에 따라 밥벌이가 달라지고, 그들 다음 세대의 운명도 달라진다. 일부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렇듯 먹고사는 문제가 공공의 영역에서 해결되지 못하는데 어찌 하겠는가. 새로운 신분제로, 좀 더 상위 신분으로 편입하는 수 밖에. 이렇게 되면 모든 판단이 멈춘다. 단지 자본이 필요하다는 생각, 자본이라면, 경험상으로 토건이라도 해야 한다는 혹은 경제 대통령이 필요하다는 신앙에 가까운 맹종만이 남는다. 그 이익이 누구에게 돌아갈 지는 모른다. 그저 욕망만 남는다. 개인간의 이익 충돌을 막을 수 있는 장치로 공공의 영역, 즉 국가라는 형태가 필요했던 것인데, 공공의 영역이 과두화된 이상, 무엇을 기대할 수 있는가. 욕망하고, 속고, 주변으로 내몰리는, 악순환만이 우리 앞을 완강히 버틸 뿐이다. 이런 사회는 다행인지 불행인지 망한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책에 소개된 지식인들은 각기 다른 분야에서 민주주의의 빠른 후퇴를 말하고 있다. 개별적으로 다른 그림이지만, 전체적으로는 하나의 목소리다. 그 하나의 목소리를 도정일교수의 물음으로 정리하자면 이렇다. " 더 나은 세계란 누구를 위한 더 나은 세계인가?" "나는 누구의 이익을 위해 지금 이 결정을 내리는가?" 이 두 가지 질문은 사적인 그리고 공적인 영역에서, 무엇인가의 시비를 가리고, 선택하고, 옹호해야 할 때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명확한 판단의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우리에게 알게 모르게 주입되는 모든 가치를 의심할 때, 그것에 맞서야 할 때, 이 물음을 기억하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이 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시, 민주주의를 말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퇴행하는 사회를 어떻게 막아야 하는지 대답해야 한다. 그것은 더 낡은 것으로 회기하려는 의도를 가진 자들과 맞서는 일, 그들의 실체를 까발리는 일, 정보화 시대의 리듬으로 현실을 대처하는 일, 그리고 마지막으로 옳은 방식으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일일 것이다. 먹고사는,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유지하기 위해 민주주의는 필요하다. 최소한의 것들을 지키고 보호하기 위해 우리는 연대하고 행동해야 한다. 한홍구교수의 말처럼 "가만히 있으면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