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진아
비가 퍼붓고 눈이 쏟아져도 남녘에 네가 있어 얼마나 든든했던지.
칠순을 훌쩍 넘긴 노부부를 네게 맡기고 돌아서는 염치없는 자식은, 나보다 의젓한 네가, 고맙고 또 고마웠었다. 그렇게 13년이라는 세월, 돌아보면, 사는 일이 네게도 고역이었다는 사실을, 어찌 몰랐겠니.
너를 훔치려고 담을 넘은 개도둑이 너에게 독극물을 먹이고, 칼로 목언저리를 베어 끌고 가려던 새벽, 언제나 새벽 4시면 너와 바닷가 산책을 나가시는 아버지가 마당에 나올 때 까지, 독극물을 먹고도 끌려가지 않으려고 사투를 벌이고,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어서도 버티다가, 아버지가 현관문을 열고 뛰어 나오시는 것을 보고 마당에 쓰러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얼마나 기겁을 하고 또 살아주어서 얼마나 감사했는지 너는 모를 것이다. 그렇게 네가 병원에 실려가 위세척을 받고 깨어나기를 3일. 그러나, 그때 나는 몰랐다. 네가 깨어나기만 하면 다 잘 될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이별의 시작이었구나.
이후, 독극물이 퍼진 장기에 종양이 생기고, 피부에 발진이 생기고, 복수가 차기 시작하면서, 병원을 수시로 드나들어야 했고, 약으로 그 시간들을 버텨냈으니, 그 일이 있은 후 5년은 네가 덤으로 버텨낸 시간이 아니었을까 싶다. 몇일 전 더는 음식을 먹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하혈을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래도 내가 내려갈 때까지 버텨달라고 했는데, 오늘 너의 혼백이 흰 눈처럼 쏟아지는구나, 세상이 희여도 너무 흰 상여로구나.
눈송이 같은 내 사랑, 잘가라, 예기치 않은 어떤 날 불쑥 네가 없다는 사실이, 함께 하지 못한 아쉬움이, 봄 눈처럼 속절없이 내 마음을 흔들어도, 그렇게 또 나는 살아갈 것이고, 어느 날에는 또 희미해 질 것이지만, 눈송이 같은 내 사랑, 잘가라, 남녘에, 이렇게 흰 울음으로 너를 묻는다.
내 사랑 백진아 잘.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