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여행기(3)-보라카이에서 첫째날-
스테이션 2쪽에 도착했을 때 11시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거리에는 한국인들로 넘쳐난다. 아침밥을 안 먹었더니 배가 아주 고프다. 이상하게 나는 아침을 안 먹으면 점심을 먹어도 하루종일 허기가 진다. 숙소를 먼저 구해놓고 밥을 먹으려고 했는데 계속 따라 붙는 사람들이 있어 그 분들도 따돌릴겸 주린 배도 채울 겸 일단 식당에 들어가 밥을 먹기로 했다. 옆 식탁에 밥을 먹고 있는 한국인들에게 물어보니 닭고기로 만든 소스를 끼얹은 밥이 먹을 만 하단다. 그래서 그걸 시켜 먹었다. 약간 느끼해서 썩 입맛이 당기지는 않았지만 배가 고파 꾸역꾸역 먹었다.
배도 부르고 숙소를 예약하려고 밖으로 나갔다. 그런데 우리를 따라 다니던 사람들, 아직도 안가고 기다리고 있다. 우리 따라 걸으며 이곳저곳을 추천한다. 일단 무시하고 ‘씨월드’라는 한국인이 경영하는 다이빙 샾에 들러 주변에 잘만한 숙소를 물었다. 그런데 잘 모른다면서 옆에 게스트 하우스 하나 있던데 거길 가보란다. 그래서 잡은 곳이 ‘씨월드’ 바로 옆 골목 안쪽에 있는 GP'S게스트 하우스, 일반 민박집 형태인데 하룻밤 숙박비가 1인당 500페소다. 우리 나라 돈으로 만원정도. 시설도 깨끗하고 조용하다.

우리가 보라카이에서 묵었던 게스트 하우스
그런데 배가 슬슬 아프고 머리도 아파온다. 아침겸 점심으로 먹은 밥이 얹힌 모양이다.
머리가 깨질 것 같이 아프고 속이 매스껍다. 오후 내내 사방구석을 헤맬정도로 많이 아팠다. 다행이 저녁무렵 정신이 든다. 보라카이 저녁 노을이 아주 아름답다는데 노을이 지고나서 어둠이 내려앉을 무렵에야 밖에 나가 밥을 먹었다. 한국음식으로. 오후에 트라이시클 빌려서 섬 한바퀴 돌아보려고 했는데 일정이 꼬인다. 가는 날이에나 해야될 것 같다.
밥을 먹고 한국인이 경영하는 다이빙 샾에 들러 내일 할 해양스포츠 예약을 했다. 정희는 다이빙 신청 하고 나는 아일랜드 호핑을 하려고 여기저기 알아봤다. 처음 알아본 집에서는 30달러 달라고 했는데 이 집은 50달러를 달란다. 처음 알아본 집에 신청을 하러 갔더니 이미 마감이 됐다고 다음 날에나 하란다. 다음 날은 마닐라로 가는 날이라 12시쯤에 출발을 해야되는데. 그래서 50달러를 달라는 집에 다시 가서 신청을 하고 거리 구경을 했다.
보라카이는 아담하다. 스테이션 2를 중심으로 해서 1과 3으로 가는 길이 좌우로 일직선으로 나 있다. 한쪽은 바다고 , 한 쪽은 상점이나 숙박업소들이 이어지는데 그냥 난들난들 걸어서 구경하며 1,과 3쪽을 걸어 다녀도 좋다. 바로 앞이 바다라 바람이 세서 그런지 건물들 천정이 야트마하고 상점들도 올망졸망하다. 날씨가 좋아 밤에 바닷가에 산책을 다니는 사람들도 많다. 스테이션 2에서 스테이션 1쪽으로 걸어가면서 보니 바닷쪽으로 원주민들이 조개 껍질이나 산호, 코코넛 열매 대나무, 바나나, 야자수 잎 같은 것을 이용해서 수공예품을 만들어 파는 좌판이 즐비하다. 가게도 똑같은 곳이 하나도 없다. 밤이되면 독특한 소품들을 이용해서 자기들만의 개성을 한껏 드러낸다. 그래서 가게들 구경하며 산책하는 것도 재미있다. 개성 만점 가게들과 기념품을 만들어 팔고 있는 좌판을 찍으려니 내 디카로는 안된다.
바다를 따라 걷다가 엄마와 딸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목걸이, 팔찌 같은 걸 만들고 있는 좌판에서 목걸이를 샀다. 조개나 산호를 이용한 것들인데 참 예쁘다. 무지개 빛 나는 조개 껍데기 메달이 달린 목걸이를 1개당 30페소를 달라는 걸 5개에 100페소에 샀다. 우리가 흥정을 하고 있으니 패키지로 왔다는 사람들 네댓명이 지나가다가 가격을 물어본다. 우리가 개당 20페소에 흥정을 해 놨으니 사라고 하니 싸다고 10개씩 사 간다. 낮에 정해진(패키지니까) 가게에 가서 흥정했을 때보다 무지하게 쌌을 테니까. 오! 그런데 좌판 주인이 우리 한테 고맙다고 팔찌를 한 개씩 준다. 아주 작은 고둥을 연결해서 만든 팔찌다.고마워라. 한국 분들에게도, 가게 주인에게도 좋은 일 하고 우리는 선물까지 받고 괜찮네.
정희는 ‘온니, 모리 땋으세요’하는 유명한 꼬마에게 50페소를 주고 양쪽 머리를 각각 3갈래씩 닿았다. 이 꼬마 머리를 얼마나 잘 땋는지 순깜짝할 사이에 한 가닥을 닿는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신발을 벗어들고 모래밭을 걸었다. 참 좋다. 신혼 여행지로 보라카이가 각광을 받는 이유를 알겠다. 모래성을 쌓아 조각해 놓고 불을 밝힌 아이들이 소원을 빌고 가라고 붙잡는다.

원주민 아이들 모래 조각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이 성안에 불을 밝힌다
끝없이 이어지는 모래밭을 연인들이, 가족끼리 손을 잡고 거닐고 있다. 나도 연인이 생기면 손을 잡고 함께 이 고운 모래를 밟으며 걸어보고 싶다. 바닷가를 걷다가 나와 가게에 들어가 밤바다를 보며 산미겔을 마셨다. 보라카이에서 맥주를 마시며 밤바다와 하늘을 보는 것도 색다른 기분이다. 정희가 찐득찐득한 바닷바람이 싫다고 해서 들어가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