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을 먹고 소금강산 기슭에 있는 유적들을 보러 갔다. 지도를 잘못보고 경주시청 앞에서 오른쪽 길로 꺾어 헤메다가 다시 경주시청을 찾아 나와 본능적인 안테나를 믿고 직진, 백률사 진입로를 찾았다. 진입로를 따라 50미터 정도 올라오니 바로 이번 답사길에 가장 보고 싶었던 ‘굴불사지사면석불’이 보였다.
*굴불사와 사면석불
굴불사와 관련 『삼국유사, 三國遺事』기록에 의하면 신라 경덕왕(景德王)이 백률사를 찾았을 때 땅속에서 염불 소리가 들려왔다고 한다. 땅을 파 보니 이 바위가 나와서 바위의 사방에 불상을 새기고 절을 지어 굴불사라 불렀다고 한다. 사면불은 사방세계에 부처님이 계셔 중생들을 구한다는 신라인의 불국토사상을 표현한 것이란다.

(서쪽면의 아미타삼존불)

(동쪽면 약사여래좌상)

(남쪽 삼존입상-훼손이 아주 심하다. 왼쪽에 있는 조각은 아예 송두리채 없어지고,1900년대 초까지도 온전하던 것이 일제 때 이렇게 훼손됐단다)

(북쪽면의 보살상 두분, 오른쪽 보살은 마모가 너무 심해 형체를 알아보기가 쉽지 않다)
*백률사
법흥왕 14년(527), 불교의 전파를 위하여 이차돈이 순교를 자청했을 때, 그의 목을 베자 흰 우유가 솟았고, 잘린 목은 하늘 높이 솟구쳐 올랐다가 떨어졌는데, 바로 그 떨어진 곳이 지금의 백율사 자리였다고 한다. 이를 본 사람들이 슬퍼하여 다음해인 법흥왕 15년(528) 그 자리에 절을 세웠는데 그 절이 자추사로서 훗날 백률사로 이름이 바뀌었다고 한다. 대웅전 올라가는 돌계단 부근에 발견되었다는 이차돈 순교비는 지금 국립경주박물관에 있단다.

(대웅전 올라가는 돌계단과 아담한 대웅전)
올 같이 더운 여름날 경주를 여행하는 것은 어쩌면 무모해 보이기까지 했는데 거기다가 가파른 산길을 올라가려니 일행 한 명은 힘들다고 난리를 쳤다. 집안에 있는 ‘오녀산성 오르는 길이 천계단이 아니라 여기가 천계단.... 어쩌구 저쩌구’. 그래서 ‘답사 끝나고 팥빙수 사주겠다. 거기 가면 탑을 새긴 독특한 바위를 볼 수 있다. 등등’ 의 말로 꾜셔 함께 올라갔다. 사실 오녀산성과는 비교도 안되게 가깝고 쉬운 길이었다. 그런데 조금 올라오다 힘들다고 난리친 일행이 하는 말에 배꼽을 잡았다.
‘이차돈은 하필 왜 이 험한 산 기슭에서 순교를 해가지고. 마 평지서 하지.’
이곳에 올 때는 ‘백률사를 갔다가 대웅전 뒷편에 있는 동천동 마애불을 보러 가자’고 할 생각이었으나 마음을 접었다.
백률사, 올라보니 암자 같다. 아담한 대웅전 건물 한 채랑 뒤에 산신각 하나가 전부다. 쓰임을 알 수 없는 부재들이 입구에 이쪽저쪽에 널려있다. 그래도 애써 올라올 만하다. 그런데 기단이 독특하다. 탑은 없고 바위에 탑을 새겼다.아마도 탑을 세울 자리가 없어 바위에 탑을 세웠을 거란다.

(대웅전 앞 탑을 새긴 바위)

(대웅전은 고려시대 중전한 것이나 기단은 신라시대 건축물의 특징을 담고 있단다.자추사의 흔적인가)
*표암
백률사 진입로 오른쪽 길을 따라 쭈욱 내려가 탈해왕릉에 들렀다. 탈해왕릉 옆에 경주 이씨들의 근원지 표암이 있었다. 박바위 혹은 밝은 바위라 부르는 이 바위가 경주 이씨 시조인 이알평공이 하늘에서 내려온 곳이란다.


*탈해왕릉.
표암 옆에 신라 제 4대왕 탈해왕의 능이 있다. 오전에 답사했던 헌강왕릉과 정강왕릉은 중기에서 신라 중기에서 후기로 넘어가는 시점이라 산 속에 자리잡고 있었지만 탈해왕릉은 초기의 왕릉인 만큼 평지에 있다. 초기 왕릉이 그렇듯이 아무런 장식이 없이 흙을 쌓아올린 봉토무덤이다. 그런데 오른쪽 소나무 한 그루는 능을 향해 절을 하듯 엎드려 있고, 왼쪽 소나무들도 능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있다. 특이하다


* 노동.노서 고분군
제 41대 헌덕왕의 능은 오전과 오후에 봤던 다른 능과 비교하며 보기 좋은 능이었는데 그냥 왔다. 더위에 지친 이들을 위해 팥빙수를 먹으러 가는 길에 노동.노서 고분군을 봤다.
노동 고분군 중 우리 나라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는 봉황대는 작은 동산 같다. 무덤 안에 나무 뿌리가 뻗치면 자손들에게 재앙이 생긴다는데 희한하게 무덤 위에 나무가 크게 자랐다. 누가 뽑지도 않았는지. 이색적인 풍경이다

노서 고분군은 노동 고분군과 도로를 사이에 두고 있다. 이 곳에는 우연히 금관이 발견되었다는 금관총,스웨덴 황태자 구스타프 아돌프 6세가 발구레 참여했다는 서봉총,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이름이 새겨진 그룻이 나왔다는 호우총 등 주인을 알 수 없는 10여기의 크고 작은 고분들이 있다.

의자에 앉아 짙은 연두색 고분 능선과 파란 하늘이 어우러진 풍경을 바라보며 한가로이 쉬다가 ‘고분군 사잇길로 걸어가면 뉘 부르는 소리 있어 돌아보니 ...’를 흥얼거리거 고분군 사잇길을 걸어 나왔다

(함께 간 이들)
강석경은 '경주산책'이라는 책에서 '여름에 경주를 답사한다는 것은 죽음에 가깝다'고 했다. 경주 또한 대구 같이 분지지형이라서 그냥 더운 정도가 아니라 헉헉댈 정도로 덥기 때문이란다. 그런데 경주는 숲이 많아 권내 답사를 느슨하게 잡으면 시원한 그늘에 앉아 쉬기도 하고 숲길을 산책하기도 좋아 여름 답사도 괜찮다.